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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Dec 23. 2022

사장님의 관심사

이야기로 엮는 리더십



총무업무를 맡고 있는 김이사는 사장님의 호출을 받고 5층에 있는 사장실로 급하게 뛰어 올라갔다.


"김이사, 저것 좀 보소! 들은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이제야 어슬렁거리며 출근하는교? 저런 정신 가지고 일을 어떻게 할라카는지.. 쯧쯧~!"

오늘도 사장님은 직원들의 출근시간을 두고 김이사한테 한바탕 설교를 늘어놓았다.


사장님은 회사의 거의 초창기 멤버이다.

그 시절에는 다 그랬듯 회사 일밖에 모르고 살았던 분이다. 휴일도 한 달에 두 번, 첫째 주와 셋째 주 일요일만 쉬었고 기본적으로 하루에 11시간 이상을 일했다.

모두가 똑같은 회색 작업복에 검정 작업화를 신고 마치 오와 열을 딱 맞춘 군대 제식훈련처럼 조금이라도 튀어서는 안 되는 그런 시절을 꿋꿋하게 버텨내신 분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런 성실함의 대가로 월급쟁이 사장이 되었고, 그런대로 잘 굴러가는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딱히 입을 댈 건 절도(節度)규율(規律) 말곤 없었다.


5층 사장실에서 창문을 통해 내다보면 회사 정문으로 사람이 들어와 건물 현관으로 이르는 길이 적나라하게 잘 보인다.

평소 근면성실을 생활신조로 삼고 살아오신 사장님은 매일 아침 출근시간보다 한 시간은 일찍 나오셔서, '오늘은 누가 제일 먼저 나오나?' '오늘은 누가 지각을 하나?' 체크하셨고 출근시간이 끝나가면 김이사를 호출하기 바빴다.



"지각하는 직원들이 더러 있어도 또 정시에 퇴근하는 직원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들 퇴근시간이 지나고 한 시간은 더 일을 하고 밤늦도록 남아서 야근하는 직원들도 많습니다. 그러니 조금씩 늦는 거는 그냥 각 부서장에게 맡기심이..."

직원들을 두둔하는 김이사의 답변에 사장님은 불쾌하신 듯 나무랐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김이사! 퇴근시간은 모르겠고 출근만큼은 적어도 10분 전까지 나와서 딱 옷 갈아입고 일사불란하게 앉아서 일할 준비를 해야 하는 거 아니요?"




"김이사, 쟤좀보소! 지가 무슨 보스턴 레드삭스 광팬이라도 되는 양 빨간 양말을 신고 있잖소?"

"쟤는 또 노랑 양말을 신고 있네... 쟤 혹시 골수 진보주의자 아니요?"

"저 친구 머리 좀 보소! 노랗게 물들인 게 도대체 머리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네~ 쯧쯧..."


세월이 흘러 개성이 강한 젊은 직원들이 계속해서 입사를 하는데 사장님은 여전히 과거의 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듯했고, 그 스트레스를 김이사가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었다.



연초 신입사원이 입사하여 연수를 마치고 근무할 부서로 발령을 받는 날, 사장님은 신입사원 한 명 한 명에게 사령장을 주시고 근엄한 목소리로 훈시를 하셨다.


"이제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해서는 안됩니다.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과감히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각자 개성이 뚜렷한 젊은이들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변화와 혁신에 앞장서시길 당부드립니다."

사장님의 말씀을 듣던 김이사의 입에 가벼운 미소가 흘렀다.

'그렇다고 그 말 믿고 튀면 바로 찍힌다!'


"김이사, 자네는 오늘 아침 내가 이야기할 때 왜 웃었나?"

점심식사 후 티 타임을 하면서 사장님이 김이사에게 물었다. 역시 사장님은 예리하셔서 살짝 스쳤던 김이사의 미소를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순간 당황한 김이사는 잠시 머리를 굴리고 나서 대답하였다.

"사장님 말씀이 너무 주옥같으셔서요. 신입사원들도 사장님의 말씀에 각오를 새롭게 하였을 겁니다."




"어젯밤 11시까지 회의 자료 준비하고 퇴근했는데 아이가 아파서 병원 응급실 갔다가 새벽에 잠이 들었는데 그만 늦고 말았습니다."

"출근길에 가벼운 접촉사고가 생겨서 수습한다고 늦었습니다."

"오늘 새벽까지 거래처 사람들 접대한다고 집에 늦게 들어갔는데 겨우 세 시간 자고 출근하는 길입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고 직원수가 500명이  넘다 보니 매일 지각하는 사람들이 몇 명씩 나왔고, 김이사가 한 명씩 불러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부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정말 가끔씩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김이사는 고민하였다.

회사 규칙이라는 게 다수를 고려해서 만들어져야지 소수를 제재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면 안 된다. 그렇다고 사장님 말씀을 무시할 수도 없고 사장님 등쌀을 배겨낼 자신도 없었다.



"사장님, 새로운 규정을 만들어 왔습니다. 직원들이 지각하면 그 시간만큼 월급에서 공제하는 겁니다. 근무시간을 지키도록 시간관념을 회사 전체에 철저히 심겠습니다."

"그거 잘 되었구만! 진작에 그렇게 하지..."


김이사는 급여지급규정을 수정하였다.

지각하는 시간만큼 공제를 하되 그동안 지급하지 않던 퇴근시간 이후 일이 있어 잔업을 하는 것에 대해서 잔업수당을 지급하는 것으로 보완한 것이다. 단, 잔업보고서를 작성하여 부서장 결재를 받도록 하여 불필요하게 회사에 남아 있는 것을 지양토록 하였다.

일이 있으면 잔업수당을 받고 일하고 일이 없으면 정시 퇴근해라.. 회사에 시간관념을 철저히 심겠다는 사장님의 지론(?)을 반영한 김이사의 각오다.


거기에 지각은 기본급 기준으로, 잔업수당은 기본급에 각종 수당을 포함한 총급여 기준으로 계산하여 직원들에게 유리하게 적용하였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직원들이 공제보다는 추가로 수당을 더 챙겨가게 되었고, 김이사는 더 이상 출근시간에 사장실로 불려 가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지각하는 직원들은 있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더는 입을 댈 구실을 찾지 못한 사장님 속만 언짢아졌다.




"김이사, 요즘 젊은 직원들 윗사람을 만나도 인사를 잘 안 하던데.. 집에서 다들 그렇게 가르치나?"

한동안 뜸했던 사장님의 호출을 받고 사장실을 들어서는 김이사에게 사장님이 말했다.


김이사는 잠시 머리를 굴리고 나서 대답하였다.

"사장님, 인사 안 할 때마다 월급에서 1,000원씩 깔까요?"



* 리더십이 타인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기계발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위치에 있는 사람 대부분은 그 노력을 하지 않는다.
(제임스 헌터)



* 이 글의 내용은 특정회사나 특정인물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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