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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Dec 26. 2022

이사님 별명은 조 주임

이야기로 엮는 리더십



J기업의 총무이사는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이다.

뭐 신의 영역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고 낙하산이라는 의미이다.


원래는 명문 대학교 상대를 나와 제법 규모가 큰 대기업에서 기획실장까지 했던 분이다.

그런데 회사의 주 사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회사 경영이 어렵게 되자 국내 사업장을 축소하고 동남아로 생산기반을 이전하였고, 국내 사업장의 인원을 대규모 정리해고하였다.

업무에 총대를 메었던 사람이 바로 기획실장인데 많은 동료들을 자른 데 부담을 느껴서 인지 스스로도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어 회사를 떠났다.

사장은 사업을 하는 자신의 친구에게 기획실장을 부탁하였고, 그렇게 하여 J기업에 입사하게 된 것이었다.


J기업의 사장은 자기 회사보다 외형이 서너 배는 큰 대기업에서 기획실장까지 지낸 조 이사에 대한 기대가 컸다.

특히 아직까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회사의 관리체계를 대기업 수준으로 끌어올려 앞으로 회사가 성장하는데 그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조 이사가 기획실장으로 있었던 회사와 J기업은 사정이 많이 달랐다.

앞의 회사는 대기업이었고 관리체계가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업무에 능숙한 실무자들이 많았다. 조 이사가 한마디 하면 밑에서 알아서 척척 자료를 만들어 갖다 바쳤고 조 이사는 그 내용을 파악하여 입으로만 옮기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J기업은 달랐다. 관리체계가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도 않았고 따라서 새로이 제도 정비를 맡길만한 업무 기획능숙한 실무자도 없었다.

따라서 조 이사가 직접 제도를 정비해야 할 형편이었는데, 본인도 그다지 실무 경험은 없어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바로 위에 전무가 있었는데 행여라도 굴러온 돌에 자리를 뺏기기라도 할까 봐 조 이사를 여간 경계하는 게 아니었다.

업무 지시를 조 이사를 건너뛰어 실무자에게 직접 하였고 직접 보고를 받았다.


아래위로 왕따 비슷하게 된 조 이사는 윗사람인 전무에게 대들지는 못하고 만만한 아랫사람들을 물고 늘어졌다.

그것도 J기업의 업무에 대해서는 아랫사람보다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었고 다른 시시콜콜한 것들로 따졌다.


예를 들면 뭐 이런 거였다.

"누가 잔업하면서 짜장면을 안 먹고 간짜장 곱빼기를 시켜 먹었어? 그리고 군만두 추가로 시킨 게 누구야?"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직원 하나가 외근을 다녀왔는데 교통비로 택시비가 많이 나왔다며 조 이사한테 불려 가서 꾸지람을 들었다.


며칠 후 조 이사가 물어볼 게 있어서 그 직원을 찾았는데 보이지를 않았다.

"김대리 어디 갔지? 오전부터 안 보이는데?"

"시청에 외근 나갔습니다."


마을버스와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다녀온다고 택시를 이용할 때보다 세배나 시간이 걸려 오후에나 돌아온 그 직원은 외근 교통비 2,120원을 첨부하여 결재를 올렸다. 교통카드 할인까지 정확하게 적용한 금액이었다. 당시 그 직원의 시급은 10,000원쯤 되었다.


"아 이 사람아! 지하철역까지는 택시를 타고 거기서 지하철로 시청엘 가면 빠르지 않은가?"

"전 그런 편법은 쓸 줄 모르는데요?"


그 당시 J기업의 직급체계는 '사원- 주임- 계장-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이사- 상무- 전무- 사장'이었는데, 직원들은 조 이사를 조 주임이라고 불렀다.

직급은 이사이지만 하는 일은 주임만도 못하다는 의미였다.




조 이사는 결국 총무부서에서 더 버티지를 못하고 생산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회사에서는 기존에 없었던 생산관리부서를 신설하여 조 이사에게 맡겼는데, 이게 아주 중요한 자리였다.

영업부서에서 수주해온 오더를 공정별 생산능력을 고려하여 생산계획을 수립, 납기를 단축하고 아울러 생산성도 올려야 하는 막중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부서였던 것이다.


그전까지는 각 생산부서에서 자체적으로 생산을 진행하다 보니, 납기는 무시하고 생산성 위주로만 생산이 진행되기도 하였고, 여러 곳에서 생산해야 하는 오더는 일부 생산품목이 누락되어 고객에게 제때 인도되지 못했다.

결과로 회사에 재고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고객에게 인도되는 납기는 한없이 길어지는 현상을 빚고 있었고 회사가 성장하면서 그러한 문제는 한층 심화되었다.


회사의 생산계획과 공정관리는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여서 머리도 잘 돌아가고 생산 전반을 꿰뚫고 있는 실력 있는 사람을 여럿 필요로 하였는데, J기업의 사정은 그렇지 못하였다.

같이 발령이 난 직원 몇 명과 몇 달을 씨름하던 조 이사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사실 조 이사의 실력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기존의 생산 부서장들이 제도가 바뀌는 것에 대한.. 특히 외부에서 들어온 조 이사가 추진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전혀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조 이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생산현장에서 쓰는 소모품.. 장갑, 토시, 안전화, 빗자루, 대걸레, 비누, 화장지 따위.. 를 공정별로 분배하는 일이었다. 그것도 매일 '더 달라' '안된다' 하는 실랑이의 연속이었다.

생산관리 부서의 가장 중요한 일은 현장 소모품 관리가 되어버렸고, 조 이사는 거기서도 조 주임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J기업 사장은 친구의 체면을 봐서 조 이사를 어쩌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조 이사가 스스로 물러나 주었다.


'실력도 없는 것들이.. 말도 안 듣는 것들이.. 너희하고 함께하느니 차라리 젖소를 키우겠다'며 강원도 산골로 들어갔는데, 이후로 조 이사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욕심, 소심함 그리고 비전의 부족 등이 오늘날 소위 사이비 지도자 가운데 만연되고 있다.
(워렌 베니스)



* 이 글의 내용은 특정회사나 특정인물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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