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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Dec 19. 2022

삶에 맛을 잃다



맛, 사람이 미각(味覺)을 잃으면 어떨까? 사는 게 재미가 없어진다. 요즘 내가 그랬다.

눈으로 음식을 보면 경험치로 대강 어떤 맛이 날 거라고 예상을 하게 되는데, 막상 입에 넣고 씹으면 식감은 익숙한데 아무 맛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먹는데서 의미를 찾을 수 없었고 그냥 굶어 죽지 않으려고 삼켰다. 사는 게 재미가 없었다.



지난 11월 말에 코로나에 걸렸다.

4차 백신까지 마쳐서인지 우려했던 것보다는 증세가 심하지 않았다. 인후통이 좀 심하고 기침 나고 몸살 기운이 있는.. 그냥 몸살감기 정도의 증상이었다.

그것도 확진된 첫날과 4일 차 약을 추가로 받는 날 호흡기 전문병원에서 별도로 수액을 맞았더니 한결 견딜만했다.



문제는 코로나가 아니었다.

격리기간이 끝나갈 무렵부터 미각이 점점 둔해지더니 이내 음식 맛을 못 느끼게 되었다. 단, 물을 마시면 쓴맛이 났다.


격리기간이 끝난 다음날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한테 물으니 코로나 후유증이라고 다.

사람마다 후유증이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길게 가는 사람은 6개월도 간다며 겁을 주었다.

6개월? 그래 가지고 어찌 살라고?!


의사 선생님이 후유증 다스린다며 몸의 증상을 꼬치꼬치 묻더니 일주일치나 약을 처방해주면서, 꼬박꼬박 다 먹지 말고 증상 봐가면서 먹으라고 다. 이제 더 이상 코로나를 이유로 찾아오지 말라는 소리로 들렸다.


집에 와서 받아온 약을 먹고 물을 마셨다. 썼다.

믹스커피를 한잔 타서 마셨다. 아무 맛이 없다.

이런 덴장!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의사 선생님 지시대로 약은 이틀만 더 먹고 끝냈다.

몸에 힘이 없고 컨디션은 별로 였지만 더 이상 아픈 곳은 없었다.

스스로 코로나 완치 판정을 내렸다.


그나저나 여전히 음식 맛을 다.

고기를 먹어도 고기 맛을 모르고 짜장면을 먹어도 짜장면 맛이 안 다. 이러다 영원히 살(고기) 맛을 잃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뭐 딱히 이것저것 먹는 걸 즐기는 취향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는 못산싶었다.



며칠이 더 지났다.

아침에 일어나 시원하게 물을 들이켜는데.. 어라? 그다지 쓴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히 쓰겠지 했는데 끝에만 살짝 느껴지는 것이었다.

라면을 끓였다. 라면 특유의 얼큰한 감칠맛이 눈으로 느껴졌다.

한 젓가락 입에 넣었다. 일단 식감은 예상했던 정도이고.. 맛은? 어라?! 익히 알던 그 맛이 살짝 느껴지는 것이었다.

얏호~!



며칠이 더 흘렀다.

맛이 조금씩 살아났다. 맛도 더 이상 쓰지 않았다.

여전히 음식을 예상하는 맛이 100% 혀로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얼추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 맛을 느낀다고 간사하게도 살 맛도 조금씩 살아났다.


이제 사는 게 다시 조금씩 재밌어지고 있다.

6개월은 무슨~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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