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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Dec 15. 2022

송년모임에 붙임



며칠 전.. 

퇴직한 회사의 퇴직임원 모임에 나갔다.

매월 한 번씩 식당에서 밥 한 그릇 같이 먹으면서 서로 무탈함에 감사하고, 그래도 왕년에 나름 회사에서 주름잡던 시절 때론 격론을 벌이기도 하고 때론 땀을 흘려가면서 서로 부대끼던 무용담을 나누는 자리이기도 다.


이번 모임은 올해 마지막으로 모이는 송년모임이었던 관계로 회사의 현역 사장도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주었다.



입사하여 줄곧 관리부서에서 근무를 했던 나는 2008년 신설되는 회사의 베트남 공장에 법인장으로 발령을 받고 낯선 땅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생산도 설비도 기술도 몰랐던 내가.. 맨땅에 공장을 짓고 생산설비를 놓고 시제품을 생산하면서 정말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연일 터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 사고에 정말 하루도 맘 편히 잠을 잔 날이 없었다.


그때 내 밑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생산팀장으로 같이 베트남에 발령을 받아 함께 호흡을 맞췄던 사람이 바로 지금의 현직 사장이다.

아침에 출근하여 현장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차 한잔 하러 내 방으로 와서는 한숨을 푹 내쉬는 그를 보면, 또 무슨 일이 터졌나 싶어 가슴이 덜컥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는 입사동기였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청운의 꿈을 안고 입사한 회사에서 30년 넘게 젊음과 열정을 다해 일했다.

임원 타이틀은 내가 훨씬 먼저 달았지만 전무로 퇴사한 반면, 그 동기는 진급은 늦었지만 당당히 사장을 하고 있다.

자랑스러운 동기이다.


남보다 앞서간다고 자만할 것도 아니고 남보다 조금 뒤처졌다고 위축될 것도 없다.



입사동기 사장이 최근의 회사 현황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다.

코로나19 영향으로 특히 중국 공장의 실적이 많이 안 좋아졌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올해 들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져 러시아 공장이 올스톱 상태라고 다.

그나마 베트남 공장의 실적이 좋고 주문량이 꾸준히 늘어 따로 부지를 확보하여 제2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베트남 공장이 중국 공장, 유럽 공장에 이은 후발 주자였지만, 이제는 그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탄탄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 같아서, 베트남 공장에 첫발을 내디딘 원년 멤버로서 뿌듯함을 느꼈다.




살다 보면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계기를 몇 번 맞이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런 선택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하는 후회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비록 그 결과가 나빴을지라도.. 똑같은 선택을 할 거라는 순간도 있다.

물론 그게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변명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 스스로에게는 떳떳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한 일은 내가 가장 잘 안다. 남은 속일 수 있을지라도 나 자신은 속일 수 없다.



선배들 중에서 보면.. 그 나이에 그 지위까지 올라서 놓고 무슨 부귀영화를 더 누릴 거라고.. 바른 소리 못하고 후배들 제대로 이끌어 주지 못하고 비겁하게 산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왕년에 내가 말이지...' 하며 입만 열면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후배들은 다 안다. 누가 진정 회사를 위한 사람이었고 누가 진정 후배들을 아끼는 사람이었는지...



그런 분 중의 한분이 모임자리에서 꼭 내가 앉아있는 자리로 와서 앉는다.

그분을 기리며 기름기 많은 부위로 바싹 구운 고기를 그분 앞에 수북이 쌓아놓는 것으로 소심한 복수를 시전(示展) 하였다.


입에 단 게 몸에는 독이여~!

하.하.하.하.





* 시전(示展) - 무협지에서 무공이나 무예 절기를 펼쳐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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