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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Jan 09. 2023

참모(參謀)의 길

이야기로 엮는 리더십



중견기업인 Y기업의 기획이사직을 맡고 있 이 이사는 대기업에 근무하다가 경력사원으로 입사하였는데, 일처리가 꼼꼼하고 입이 무거워 점차 사장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

경리과장으로 시작하여 차장 부장을 거쳐 사장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기획이사 자리에 오르는 데까지 불과 6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사장은 기획이사를 크게 신임하여 회사일 외에도 개인적인 은밀한 일까지도 맡겼는데, 이를테면 비자금 조성이나 개인재산 관리 등의 업무였다.


 시절에는 요즘과 달라서 회사의 장부기장을 원칙대로 해서 곧이곧대로 세금을 정확하게 납부하는 회사가 많지 않았고, 회사의 오너도 주머니 돈이 쌈짓돈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회사재산과 개인재산과의 구분을 명확히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국세청 전산시스템도 지금과 같이 치밀하지 못해서 그런 것들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고, 정기 세무조사 때 단순하게 회사규모에 따라 세금추징 목표액을 할당하여, 조사인력들은 목표액이 찰 때까지 열심히 조사를 벌이다 목표액이 차면 속도를 늦추며 마무리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까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는 기업인도 일단 세무조사를 받으면 거액의 세금 추징을 당하는 게 예사여서, 아예 미리 구멍을 만들어 놓고 세무조사가 나오면 그걸로 입막음을 하는 꼼수를 부리기도 하였다.


세무조사를 나오면 특히 기업과 오너와의 거래관계에서 오너가 회삿돈을 유용하거나 특혜를 받은 부분이 없나를 유심히 살펴보기 마련인데, 이 이사는 이런 부분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오너 개인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방어를 하였다.


급기야 사장은 개인 장부까지 몽땅 이 이사에게 맡겼고, 이 이사는 자신의 재산인양 성심성의껏 열심히 그것을 관리하였다.




이 이사는 머리가 영민하여 회사 업무도 잘 처리하였다.

그런 그를 시기하여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가끔씩 꼬투리를 잡아 그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이 이사는 남을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않고 철저하게 자기 할 일만 하는 사람이었지만, 가끔씩 자기를 공격하는 사람은 아주 묵사발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군 복무를 방첩부대에서 하였다. 평소에 사람들의 과실이나 잘못된 행적을 꼼꼼하게 기록해 놓았다가, 남이 자신에게 잽을 한번 날리면 기다렸다는 듯이 무차별 펀치를 날려 상대방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었다.

몇 번 그런 일이 있고 나자 회사 내에서는 더 이상 어느 누구도 이 이사를 건드리려고 하지 않았고, 이 이사는 편하게 자기 할 일을 하였다.


그런 이 이사 주변에는 같이 어울리는 친한 동료가 없었고, 그는 오히려 그런 상황을 즐기는 듯하기도 했다.




사장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그는 나름대로의 행동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참모는 절대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참모라 함은 지휘관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정보를 분석하고 조언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각은 달랐다.

어차피 일을 어떻게 하겠다고 하는 것은 사장이 이미 생각하고 있는 바이고, 옆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것은 딴 말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에 동의하고 따르라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 이사는 절대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사장이 재차 물으면 부득불 '사장님 말씀에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정도로 대답하였다.

그러면 사장은 회심의 미소를 띠고 보란 듯이 주위를 둘러보았고 모두들 고개를 떨궜다.


그는 자기 밑의 부하 직원들 편도 절대 들어주지 않았다. 자력으로 커 오는 직원들을 막지는 않았지만, 직원 어려움이나 곤경에 처했을 때 스스로 나서서 직원도와주거나 옹호한다던지 하는 일은 없었다.

그는 어떤 경우라에라도 구설수에 오르지 않도록 자기 관리에만 철저하였다.




세월이 흘러 사장은 회장의 자리에 오르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아들이 사장 자리를 이어받았다.


회장은 아들에게 '회사에서 믿을 사람은 이 무밖에 없다'라고 하면서 그에 대한 신임을 강조하였다. (당시 이 이사는 무로 승진하였음)


신임 사장도 이 무를 신뢰하였으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쉽게 대하기가 여간 껄끄러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명문 대학교 출신인 사장의 주변엔 똑똑한 친구들이 많았다. 그는 그중 몇 명을 영입하여 회사를 한 단계 성장시키고자 하는 야심이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사장의 주위에 모이고 자연스럽게 나이 든 임원들에 대한 물갈이가 이루어졌다.


무는 결국 고문으로 임명되며 현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고문으로서 사장에게 자문을 한다던가 의견을 제시하는 일은 없었고, 회장 일가의 개인재산 관리 업무만 수행하였다.

개인재산 관리는 상당히 은밀하고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사장도 그 업무를 자기 친구에게 맡기지 못했고 이 고문에게 일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 고문은 업무에 대한 부담도 없고 할 일도 별로 없는 개인재산 관리를 하면서, 젊은 임원들이 문안 인사를 올리는 거의 유일한 웃어른으로 대우를 받았다.



이 고문은 자기와 연배가 비슷한 임원들이 상무 전무를 거쳐 부사장까지 승진을 하는 동안 줄곧 이사에 머물다, 전임 사장이 회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즈음 상무로 승진하는데 그쳤다.

이 고문은 그게 회사생활을 하는 내내 최대의 불만이었으나, 전임 사장은 오랫동안 자신의 지근거리에서 참모로 쓰면서 그를 승진시키지 않았다.

사장이 보기에 그는 남을 이해하거나 배려하려는 마음이 부족하고 직원들을 이끄는 리더십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해서 참모 말고는 딱히 맡길 보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덕분 대다수 임원들이 60세 전후로 퇴직한데 비하여 이 고문은 75세까지 자리를 지키다 물러났다.



침묵은 금이다.
특히 조직사회에서 어설프게 스스로를 드러낼 필요가 없다. 다만 품속에 칼 한 자루쯤은 품고 있다는 느낌만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 이 글의 내용은 특정회사나 특정인물과 관련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용 중 기업회계나 세무조사에 관한 사항도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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