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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꼬리 선생님의 사명감

그때는 말이쥐~ #3

by 이은호



당시 지나친 사명감으로 바쁘게 동분서주 하셨던 학년주임 선생님 뒤에서, 바들바들 떨며 여린 몸으로 수거통을 밀고 다니셨던 부담임 김*순 선생님께 이 이야기를 바칩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7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숙제가 있었다.

여름방학 숙제 중에 곤충채집도 아닌.. 바로 '파리 500마리 잡아오기!'

그 당시 생활환경이 너무 불결했던 관계로 환경개선의 일환으로 이런 일들이 행해졌었다.


우리는 파리를 잡기 위해 주로 지저분한 곳을 찾아다녔다.

가끔가다 재수가 좋으면 조금 꾸덕하게 굳은 개똥 위나 취객이 쏟아놓은 음쓰^^ 위에 엄청난 파리떼가 왱왱거리며 앉아있는 걸 발견하는 경우가 있었다. 바로 똥파리 노다지!

럴 땐 살금살금 다가가 잠자리 채로 홱 덮쳐 3~40마리의 파리를 한꺼번에 잡는, 엄청난 행운을 건지기도 하였다. 그러면 친구들은 딥따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곤 하였다.


이렇게 매일 몇십 마리씩 잡은 파리는 성냥갑에 차곡차곡 넣어 두었다가 개학 숙제로 제출하였는데, 어떤 때는 큼지막하게 '' 도장이 찍힌 노트를 상으로 받기도 하였다.



파리 이야기는 잠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애피타이저이고, 오늘의 메인 요리는 그 당시 일 년에 한두 번씩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던 '쥐 잡기 운동' 대한 이야기이다.


먹을게 귀했던 시절에 쥐는 또 왜 그렇게 들끓었던 건지, 식량을 사이에 두고 인간과 쥐 간에 사력을 다한 생존경쟁이 펼쳐졌다.


나라에서는 쥐 잡는 날을 정해놓고 통. 반장을 통해서 쥐약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같은 날 동시에 전국적으로 일제히 쥐약을 놓아 구서작업을 추진했다. 바로 쥐를 상대로 한 전면전이었다.

그리고 그 증표로 학생들은 잡은 쥐의 꼬리만을 잘라 학교에 가지고 가서 검사를 받아야 했다.



내가 중학교 1학년때 담임선생님 별명이 '쥐꼬리'였다.

학년주임이였는데 반별로 돌아다니며 쥐꼬리를 수거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아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

아침에 조례시간에 반장이 지켜보고 있다가 선생님이 오면, '쥐꼬리 온다!' 하며 떠들고 있던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다.


담임선생님은 항상 참나무로 곱게 다듬은 50cm 정도 길이의 몽둥이를 들고 다녔는데, 오랜 세월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해진 그 몽둥이는 특히 쥐 잡는 날이 되면 진가를 발휘하였다.


왜냐하면 쥐꼬리를 제출하지 못한 아이들은 선생님의 몽둥이 맛을 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쥐꼬리 2개 이상은 통과, 1개는 엉덩이 3대, 0개는 엉덩이 6대를 맞아야 했다.

선생님은 다년간 실전 경험을 통하여 다져진 아주 숙련된 솜씨로, 엉덩이와 허벅지의 이어지는 부분을 정확하게 그리고 힘차게 가격하였다.


그때 선생님의 머리는 약간 곱슬이었는데, 앞머리에 기름을 잔뜩 발라 옆으로 빗어 넘긴 게 약간씩 덩어리지게 뭉쳐져, 영락없이 쥐꼬리를 여러 가닥 올려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선생님이 몽둥이 질을 할 때마다 머리 위에 얹어놓은 쥐꼬리들이 흔들려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나도 쥐꼬리를 한 개 밖에 못 구해 그 몽둥이로 3대를 맞았는데, 한 대 맞을 때마다 화끈! 하며 허벅지를 타고 똥구멍을 거쳐 등줄기와 머리끝까지 이어졌던 그 전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 그때를 회상해 보니, 입맛을 다시며 수북하게 쌓인 쥐꼬리를 야릇하게 바라보던 선생님의 빛나는 눈이 생각난다.

당시 그 선생님은 학생들 한테도 원망을 많이 들었지만, 쥐들한테는 철천지 원수였을 것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겪은 선생님 중에 가장 엽기적인 선생님이었다.




쥐꼬리 선생님의 회상


나는 70년대에 중학교 교사를 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1년에 두 번씩 전국적으로 '쥐 잡기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학생들은 집에서 잡은 쥐의 꼬리를 잘라 학교에 제출해야 했다.


당시 나는 학년주임으로 반별로 돌아다니며 쥐꼬리를 수거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고 있어서, '쥐꼬리'란 별명도 얻었다.

책임감이 무척 강했던 나는 그 일을 천직으로 알고 열심히 했다. 때문에 '쥐꼬리'란 별명 역시 나의 존재를 사람들이 알아주는 애칭이라 생각하고 특별히 애착을 가졌다.



쥐꼬리를 제출하지 않은 학생은 길이 50cm의 참나무로 곱게 다듬은 몽둥이 맛을 봐야 했는데, 그 몽둥이는 당시 내가 애지중지했던 것으로 거의 내 분신과 같은 존재였다.


쥐꼬리 2개 이상은 통과, 1개는 엉덩이 3대, 0개는 엉덩이 6대를 때렸다.

뭐 내가 때리고 싶어서 때린 건 아니고 정부시책에 적극 따라야 하는 교육 공무원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했을 뿐이었다.


난 교육자로서 학생들 훈육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여 엉덩이와 허벅지의 이어지는 부분을 최대한 정확하게 그리고 힘 있게 가격하였다.

반마다 돌아다니며 수많은 아이들을 훈육하려면 꽤나 고됐지만, 땀을 뻘뻘 흘려가며 그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일을 위해 평소에 체력단련도 하고 보약으로 몸보신까지 해 가면서 말이다.



당시 나의 머리는 약간 곱슬이었는데, 쥐꼬리 담당 선생님답게 미장원에 가서 특별 코디를 하였다.

앞머리에 기름을 잔뜩 발라 옆으로 빗어 넘기고, 약간씩 덩어리지게 뭉치게 하여 영락없이 쥐꼬리 여러 가닥을 올려놓은 것처럼 머리모양을 꾸몄다.


교장선생님은 내 머리 모양을 보시고 무척 좋아하셨으며, 이번일만 잘되면 학생주임으로 승진시켜 주겠다고 굳게 약속을 하셨다.

덕분에 나는 크게 고무되어 쥐꼬리 수거에 더욱 매진할 수가 있었다.


사실 쥐꼬리 머리 모양에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몽둥이 질을 할 때마다 애써 완성한 머리카락이 흔들려서 흘러내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머리카락이 흔들릴 때마다 고개를 까닥까닥 흔들면서 리듬감 있게 박자를 맞추어 최대한 머리카락이 헝클어지는 걸 막았다.

그 어려운걸 훌륭하게 해 내어 10개 반을 다 돌고 나서도 거의 구할 이상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수북하게 쌓인 쥐꼬리를 보면서, 학생주임도 이제 '따놓은 당상이다'라는 생각에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다음번엔 교감 승진을 위해서 쥐꼬리를 두 배 이상 늘려서 수거할 것을 다짐하였다.


세월이 흘러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쥐를 잡아야 하는 학생들이 원망도 많이 했을 것이고, 쥐새끼들한테는 아마도 원수 이상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요즘은 몸이 허해졌는지 자고 있는 나한테 쥐가 달려들어 머리채를 물고 늘어지는 꿈을 자주 꾼다.




교장 선생님의 회고


나는 70년대에 중학교 교장을 지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많이 있었다.


그 당시 주변환경이 너무 불결하였기 때문에 각 학교별로 주변환경을 특별히 방역하라는 명이 교육청에서 하달되었다.

그러나 학교 재정이 궁핍하여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 몸으로 때워야만 했다.

는 선생님들에게 협조를 부탁하였, 머리 좋은 선생님 한분이 아이디어를 내어 학생들에게 '파리 500마리 잡아오기'란 과제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다른 하나는 일 년에 한두 번씩 '쥐 잡기 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는데, 학생들로부터 잡은 쥐의 꼬리를 제출받아야 했다.

이 실적은 특히 교육청 주관의 학교 평가에 중요항목으로 반영되었기 때문에 교장인 나로서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행사였다.


다행스럽게도 선생님 중에 별명이 '쥐꼬리'인 학년주임이 있어서 등을 두드리며 적당히 격려해 주자, 그 선생은 어깨가 우쭐하여 길이 50cm 정도의 참나무 몽둥이를 학생들에게 마구 휘두르며 쥐잡기에 열을 올렸다.

지금 같았으면 대번에 경찰서에 신고가 들어갈 사건이겠지만, 그 당시엔 체벌이 권장되던 시절이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선생님들 사이에선, 어떻게 하면 본인이 크게 힘들이지 않고 학생들을 따끔하게 혼내줄 수 있는지, 노하우가 공유되기도 했다.



그 선생님의 머리는 약간 곱슬이었는데, 쥐꼬리 담당 선생답게 꾸민다고 앞머리에 기름을 잔뜩 발라 옆으로 빗어 넘기고 약간씩 덩어리지게 뭉쳐, 영락없이 쥐꼬리를 여러 가닥 올려놓은 것 같은 모양으로 출근하였다.

나는 그 꼴이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밖에 안 나왔는데, 그걸 그 선생님은 내가 좋아하는 줄 알고 더 기고만장 날뛰었다.


게다가 학생들 앞에서 수북하게 쌓인 쥐꼬리를 보면서 입맛을 다시는 모습을 보고, 저러다가 무슨 사달이 날텐데 걱정이 되었지만, 교육청의 학교평가를 생각하며 모르는 체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내가 그 중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는 동안은 선생 덕분으로 쥐꼬리 고민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학교평가도 잘 받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그 선생님 이야기를 우연히 전해 들을 수 있었는데,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 쥐를 잡는다고 한밤중에 캄캄한 골목길을 몽둥이를 휘두르며 돌아다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선생님은 학생들한테도 원망을 많이 들었겠지만 쥐들한테는 원수 이상이었을 것이고, 결국 쥐들의 악령이 씌어 정신을 놓아버렸다는 게 정설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 선생님이야말로 시대가 낳은 희생자가 아니었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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