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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툼 레이더

그때는 말이쥐~ #5

by 이은호



이제 쥐 이야기의 무대는 군대로 넘어갑니다. 군인이 된 저와 쥐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요? 같이 한번 들여다 볼까요?

빽.투.더.아미~ Go!




난 군생활을 최전방 지하벙커에서 시작했다. 이른바 두더쥐 생활!


그 지하벙커 천장에는 외부와 연결되는 환기통이 몇 개 있었는데, 환기통 입구는 천으로 막혀 있었고 그 위에 흰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환기통임에도 불구하고 입구가 왜 막혀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여름철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어디선가 꼬리꼬리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였다.

며칠을 두고 의심이 갈만한 곳을 구석구석 수색하였는데 도저히 냄새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위를 보게 되었는데, 눈에 띈 것이 바로 환기통이었다.

'혹시...'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의심장소, 환기통을 수색하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내 자리의 바로 위에 위치한 환기통!


'진원지가 저기가 아닐까?'


난 행정반에서 철제 사다리를 빌려와 펼쳐놓고 한 칸 한 칸 밟고 올라갔다. 그리고 천으로 덮인 환기통 입구를 손으로 툭툭 쳐보았다.

왠지 물컹물컹한 것 같기도 하고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찝찝한 기분!


'음.. 아무래도 여기가 수상하군!'


환기통임에도 왜 막혀있는지, 왜 아무도 그걸 모르는지, 난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비장한 심정으로 커터 칼을 뽑아 들었다.



칼날을 길게 뽑아 동그란 환기통 입구의 한구석을 푹! 찔렀다. 그리고 천 조각을 원형으로 돌려서 사악~ 베었다.

검도 유단자가 단칼에 목표물을 베는 듯한 유려한 동작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지점에서 멋지게 폼을 잡고 상대가 쓰러지기를 기다리듯 멈췄다.


'헉!'


순간 악취가 확 풍기면서, 베어 낸 원형의 거의 마지막 지점에 멋지게 정지해 있는 커터 칼날을 타고 시커멓고 찐득한 액체가 내 손으로 흘러내렸다.


난 마지막 힘을 주어, 마치 적의 숨통을 끊듯 천을 완전히 베어냈다.

그러자 툭! 하고 시커먼 물체 하나가 내 오른쪽 귀를 스치며 어깨를 맞추고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어서 뭔지 모를 액체가 빳빳하게 세운 군복 카라로 뚝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조금만 영점이 좌측으로 갔으면 내 얼굴로 떨어질 뻔하였다.


'철퍼덕~!'


바닥으로 떨어져 대(大)자로 뻗어 있는 건 죽은 지 꽤 오래된 듯한 한 마리 쥐였다.

반쯤 썩은 몸에 배가 반원형으로 그어져 있었고, 뱃속 내용물이 흘러나와 바닥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었다.



지하벙커 위 숲 속에서 알콩달콩 뛰놀던 쥐들 중 정말 엽기적인 놈이, 최소한 발 두 개 이상을 동시에 헛디뎌 환기통에 빠진 게 분명하였다.

환기통의 입구가 'ㄱ'자 모양이어서, 들어갈 때는 자유지만 스스로 나올 수는 없었다.

아마도 거기서 찍찍거리다 서서히 굶어 죽었으리라 싶었다.



손이며 어깨에서 나는 쥐 썩은 냄새에 일주일이 넘게 아주 혼이 났다.

비누로 아무리 닦아도 그 냄새가 가시지 않아, 여러 날을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고 잠을 잤고 왼손으로 밥을 먹어야 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제일 오랫동안 숨도 참고 코도 막고 지냈던 기억이다.


그 이후로 나는 절대로 구멍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전임 부대 소대장의 회상


군에서 근무할 때의 이야기이다. 당시 난 최전방 지하벙커 소대장이었다.

아마도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확실하진 않지만...


지하벙커 위 숲 속에서 뛰놀던 제법 예쁘장한 쥐가 한 마리 있었다.

인적이 드문 적막한 전방에서 그놈은 우리의 친구가 되었다. 일종의 애완쥐라고나 할까?

그 녀석도 우리가 무섭지 않은지, 꼬리를 흔들며 건빵을 얻어먹곤 하였다.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그 생쥐 녀석에게 건빵을 주고 있었는데, 건빵을 던진다는 것이 그만 손에 낀 졸업반지가 빠져버렸다.

그 왜 빨간 루비 박힌 쓸데없이 무겁고 보기 싫은, 장교 똥배짱 티 내는 그 졸업반지 말이다.


'아뿔싸!'


그 생쥐 녀석이 건빵과 함께 그 반지를 날름 삼켜버렸다.



"이리 온~ 친구야! 뱉어봐~"

처음에는 살살 달랬으나, 오래가지 않아,

"야~ 토해! 토해! 야~ 임마!"하고 성화를 부리게 되었다.

그놈이 내 말을 알아들을 정도면 건빵이나 얻어먹고 있었을까? 고양이 등을 타고 다니지...


상황은 심각하게 변했고, 나는 그 쥐를 움켜쥐고 선임하사에게로 갔다.

"선임하사, 이 놈 반지 좀 토하게 해 봐요. 죽이지는 말고..."

"알겠습니다. 소대장님!"


그러나 군에서의 문제는 언제나 상존하는 법!

선임하사는 내무반장에게 시키고, 내무반장은 상병 말호봉에게 시키고, 상병 말호봉은 일병 선임에게 시키고, 일병 선임은 이등병 중에 제일 나이 많은 취사병에게 시켰다.


죽이지 말라는 말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가능하면 죽이지 말고."

"죽여도 될 거야, 아마."

"죽여서라도 빼 내!"


이렇게 일본 역사교과서 마냥 왜곡되어 가던 명령은, 결국 나이 많은 취사병에게 갔을 때에,

"예, 제가 식칼로 확 도려내서 신속히 반지를 찾겠습니다."

이렇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로부터 1시간 15분 후,

반지는 찾았지만 그 예쁘장한 생쥐는 배가 반원형으로 그어져 내장을 드러낸 채 죽어 있었다.

"크흐흐흑! 불쌍한 녀석... 좋은 녀석이었는데...."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죽은 자식 뭐 만진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소대회의를 열어 죽은 쥐의 처리문제를 의논했다. 그 당시 난 민주적으로 소대를 운영하였다.

결론은, '이왕 죽은 친구, 장사라도 잘 지내줘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난 생각하였다.

비록 죽었지만 우리의 친구였다. 먼 곳에 묻는 것보다는 전우애로 곁에 두면서 호흡을 같이하리라... 호흡을 같이하자... 호흡을?!?!

순간적으로 떠오른 곳이 있었다.


'환기통!'


당시 지하벙커 천장에는 외부와 연결되는 환기통이 몇 개 있었다.

우리는 그중 한 곳에 생쥐를 곱게 뉘었다. 장례식은 소대장(葬)으로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며칠 후,

전우애로는 버티기 힘든 정말 엽기적인 냄새가 지하벙커를 진동하였다. 끈적끈적한 물기까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그래도 '한번 전우는 영원한 전우'라고 그놈을 그냥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소대회의를 열었다.

돌머리도 맛대면 콩이 갈린다고,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 아이디어에 따라 환기통을 천으로 막고, 그 위에 흰색 페인트 칠을 하여 깨끗하게 봉쇄하였다.

드디어 우리의 애정했던 전우가 편히 누울 수 있는 온전한 안식처가 완성된 것이었다.



한 달 후,

우린 다른 부대와 근무 교대하고 후방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전우의 기억은 차츰차츰 잊혀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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