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와 쥐의 상관관계

그때는 말이쥐~ #6

by 이은호


힘들던 시절 나와 함께 상황실 초번 근무를 마치고 아지트에 숨어, 안주삼아 라면 한 개를 끓여서 몰래 캪틴큐를 나눠마시던 작전상황병 김*천 일병에게 이 이야기를 바칩니다.




내가 군에서 근무했던 지하벙커는 사실은 최전방 보병사단의 사단 상황실이었다.

이에 대한 언급은 군사기밀이라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는데, 워낙 오래전 일이라 또 기억이 분명치 않기도 하다.


당시 상황실은 지하벙커라서 습기가 많아 항상 벽면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선임으로부터 이야기 듣기론 사시사철 365일 항온항습이 되는 최신 시설이라고 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여, 밖에서 보초를 서는 다른 전우들에 비해서 호강했던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상황병에게는 매일 별도의 간식이 지급되어 포동포동 살이 쪘고, 햇볕도 안 들어오는 지하벙커에서 지내는지라 피부가 뽀얘 가지고 있어서, 첫 면회를 오신 어머니께서 달덩이 같은 내 얼굴을 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넌 군대를 온 거냐? 휴양을 온 거냐?"



상황실 앞쪽 벽면에는 상황판이란 게 있었는데, 우리 사단이 방어해야 할 북한지역을 포함한 전방지도와 각종 현황을 표시한 벽면 위에, 투명 아크릴판을 덮고 벽과 아크릴판 사이에 형광등을 여러 개 끼워 넣어 밝게 비추도록 제작되었다.

그리고 이들을 잡아주는 틀이 크게 세 개로 나뉘어 알루미늄 새시로 되어 있었다.


아크릴판 위에 흰색, 노란색, 주황색 등 색연필로 글자나 숫자를 쓰면, 안쪽에서 형광등 불빛이 비추어 글자가 밝게 빛나는 게 제법 멋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글을 쓰기까지 거의 한 달 동안은 사수한테 혼나가며 매일 글쓰기 연습을 해야 했다.


상황판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지하벙커라 습기가 많이 차다 보니까 알루미늄 새시에 물기가 맺힐 정도였는데, 세월의 영향인지 부실공사의 흔적인지 누전이 되어 전기가 조금씩 르는 것이었다.

색연필로 상황정리를 하다가 가끔 손끝이 새시에 닿으면 찌리릿! 전기가 흘러 깜짝 놀라곤 하였다.



지하벙커가 있는 곳은 산 속이라 개구리가 많았다.

그래서 개구리들이 심심찮게 실내로 들어오곤 하였다.

원래 그곳은 보안시설이라 '비밀취급인가증'이란 게 있어야 들어올 수 있는데, 개구리 놈들은 항상 무단출입을 하였다.

입구에 엄연히 초병이 보초를 서고 있는데도 말이다.


보통 초병에게 근무자세를 물어보면 '개미새끼 한 마리도 얼씬 못하게 하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순 허풍이었다.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서 어떻게 발밑에서 폴짝폴짝 뛰어 들어오는 개구리를 본단 말인가!



지하벙커에 들어선 개구리는 폴짝폴짝 뛰면서 '어디 파리새끼라도 없나?' 하며 돌아다니다가, 상황판이 설치된 벽 부근에서 펄쩍 뛰다가 알루미늄 새시에 머리를 부딪히고는, 찌리릿! 전기에 감전되어 뒤로 발랑 나자빠졌다. 사지를 대(大) 자로 쫙 뻗고...


개구리한테는 끔찍한 일이었겠지만, 안 그래도 심심하여 '뭔 사건이라도 안 일어나나?' 하며 손가락을 빨던 우리한테는 그게 정말 재밌는 놀이였다.


개구리를 잡아다가 벽을 향해 세워놓고 개구리 뒤쪽에서 군홧발로 바닥을 탁! 차면, 개구리가 앞으로 펄쩍 뛰다가 새시에 머리를 부딪혀 감전되어 뒤로 발랑 나자빠졌다.

나중에는 바닥으로 흘러내린 물기를 타고 전기가 흘러, 굳이 새시에 부딪히지 않더라도 근처만 가면 찌리릿! 펄쩍 뛰며 나자빠져 사지를 떨다가 기절하곤 했다.

그러다가 한 5분쯤 후 깨어나서는, 자기가 뭘 했는지도 잊어버리고 비척비척 하다가 또 찌리릿! 나자빠지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고 배꼽을 잡았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개구리가 다시 깨어나는 시간이 길어졌고, 결국 못 일어나는 놈도 있었다.


그렇게 세월을 죽이고 있는데, 언제부턴가 개구리가 훼손된 채 발견되곤 하였다. 배가 터지거나 다리가 뜯기거나 해서...



평소에 상황병이 근무하는 곳은 상황판이 설치된 넓은 공간에서 다시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야 고, 상황판이 설치된 곳은 불을 꺼두어 어두워서 무엇이 왔다 갔다 하는지 잘 모르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오는데 벽 쪽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뭔가 있을 것 같은 예감에.. 당시 상황병으로서의 내 감은 정확했다.. 불을 켜고 소리 난 쪽을 봤더니, 쥐 한 마리가 입에 개구리 뒷다리를 물고 뒤로 발랑 나자빠져 있는 게 아닌가?!


감전되어 쓰러져 있던 개구리를 쥐가 물고 가려고 토실한 개구리 뒷다리를 물었다가 저마저도 감전되어 넘어간 것이었다. 정신 빠진 놈!

개구리 뒷다리를 입에 물고 뒤로 발랑 나자빠진 쥐의 모습, 정말 가관이었다.


난 그 모습을 자세히 보려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런데 쥐가 움찔하며 일어서더니 비틀비틀 내가 있는 방향으로 기어 오는 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내 눈과 쥐의 새까만 눈이 마주쳤다. 까만 눈동자 주위로 붉게 핏발 선 쥐의 눈에 소름이 쫙 끼쳤다.

나는 놀라서 엉겁결에 군홧발로 다가오는 쥐를 걷어차 버리고 말았다.


뭐 메시급까지는 아니지만 그 급박한 순간에서도 내 발길질이 정확해서, 쥐의 앞다리와 배 부분에 정확하게 들어갔고, 그놈은 몸이 붕~ 떠서 날아갔다.

그런데 하필이면 마침 문을 열고 나오던 일직사령(계급이 중령으로 우리가 볼 때는 매우 높으신 분)의 얼굴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아! 역시 군에서 달련된 몸은 달랐다.

그 짧은 순간에 일직사령은 반사적으로 머리를 숙여 날아오는 적의 육탄공격을 피했던 것이다.


피웅-!


쥐는 일직사령의 머리 위를 지나 방 안으로 날아갔다.


상황실에는 야간당직이 상황병 외에 일직사령, 일직부관, 상황장교 이렇게 세분의 장교가 근무를 섰다.

이중에 제일 할 일(?)이 없는 분이 일직부관으로 주 업무가 '야식추진'이며, 이 임무만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

물론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는 사정이 다르고 아무 일 없이 조용한 날의 경우였다.


그날도 일직부관은 일찌감치 야식추진을 마치고,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는 듯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다.



쥐새끼는 일직사령을 지나 추진력을 잃고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그리고 잠을 자고 있는 일직부관의 팔뚝과 머리사이의 틈으로 정확히 내리 꽂혔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정확하게 양궁으로 치면 '텐(10점)'을 기록하는 점수였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깜짝 놀란 일직부관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비상! 비상! 폭격이다!"


그 당시 우리 GP와 적 GP 사이에 총격전이 있어서 긴장이 한참 고조되던 시기였다.

잠결에 일직부관은 지하벙커가 적군의 폭격을 받은 줄 알았던 것이었다.



나는 그 일로 일직부관에게 밤새도록 기합을 받아야 했다.

안 그래도 할 일없이 잠만 자던.. 게다가 잠도 다 달아난 일직부관에게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쥐한테 뒷다리를 뜯긴 개구리처럼.. 군홧발에 차인 쥐새끼처럼...




일직부관의 변(辯)


! 너!

내가 일직부관할 때, 그 녀석?!

살아있었구나!!


난 그날 이후 거의 매일 쥐꿈을 꾼다.

쥐가 폭탄이 되어 쏟아져 내리고, 그 밑에 깔려 한참을 허우적 대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잠을 깨곤 해...


아- 쥐 없는 세상이 그립다!ㅜㅜ




일직사령의 회고


난 최전방 보병사단의 통신대대장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당시 야간에 한 번씩 사단 사령부의 상황실에서 당직근무를 섰는데, 평일에는 사단 직할대의 영관급 장교가, 휴일에는 사단 참모부의 영관급 장교가 일직사령을 맡았다.

일직사령은 야간 시간에 사단의 최고책임자 역할을 해야 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보통 비상사태란게 모두가 잠든 야심한 시간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일직사령은 근무 중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했으며 특히 북쪽 전방의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했다.


어느 날, 상황장교로는 북에서 파내려 오는 땅굴을 찾아내는 일이 주 업무인 정보참모부의 탐지장교와, 일직부관으로는 보급대에서 주부식 보급업무를 맡고 있는 보급장교와 함께 야간 근무를 선 적이 있었다.


상황장교는 유사시 사안별 행동요령을 정확하게 숙지하고 실제상황을 챙겨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자리였으나, 일직부관의 경우는 딱히 할 일이 없어 야간 근무자들의 야식추진이 끝나면 꾸벅꾸벅 조는 일로 시간을 채웠다.



소속 부대장한테 듣기로는 일직부관인 조 대위가 원래 군수사령부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책임을 지고 있는 식량 보관창고에 장부와 실물재고 간 수십 톤의 차이가 생겨 문책성 인사로 사단 보급대로 쫓겨왔다고 했다.

당시 대위는 자기 잘못이 없으며 쥐가 다 먹어치운 거라는 어설픈 변명을 늘어놓았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대위는 쥐에 대한 노이로제가 있어서, 보급대에 와서도 쥐만 보면 눈에 핏발을 세우고 사병들을 닦달하였다고 했다.

아예 간이침대를 창고 안에 두고 잠을 잤는데 어디서 부스럭 소리가 나면, 잠결에도 '냐옹~ 냐옹~' 하며 잠꼬대를 했다고 했다.


그런 그가 사단 상황실에서 야간근무를 서던날, 철부지 상황병이 발로 찬 쥐새끼에 머리를 빗맞았는데.. 사실 그때 내가 날아오는 흉기를 손으로 쳐냈어야 했는데.. 설마 그게 뒤에 있던 조 대위한테 날아갈 줄은 몰랐다.


그로 인해 대위는 머리에 이상이 생긴 건지 아님 PTSD에 걸린 건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의병 전역하고 말았다.



훗날 보급부대장으로부터 전해 들은 소식은, 조 대위가 시름시름 앓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쥐새끼가 싫어요!'를 외치고 나서 산속으로 들어가 토굴을 짓고 산다고 했다.


요즘 티브이를 보면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건강회복 프로가 있는데, 언젠가는 조 대위가 건강한 모습으로 쥐꼬리를 들고 등장하지 않을까 하여 매주 빼놓지 않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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