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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Apr 10. 2023

홈베이킹에 진심일 이유가 있다

뜻밖의 만남에 건네는 작은 선물



취미생활로 홈베이킹을 한다.

지인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빵을 굽기도 하고 순전히 내가 먹기 위해서 굽기도 하고 예외적으로 지인의 주문을 받아 굽기도 한다.

홈베이킹을 하는 동안에는 모든 근심걱정을 잊고 작업에 몰입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즐겁다. 그럴듯하게 만들어져 나오는 완성품을 보며 작은 성취감을 맛보기도 한다.


집에서 가끔씩 하는 홈베이킹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바로 재료의 잔량 처리 문제이다.

베이킹 재료를 보관하고 있는 박스를 열어보면 쓰다 남은 각종 재료들이 즐비하다. 한 번씩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과감하게 정리하지만 좀 지나면 잔량들이 또 생겨난다.

특히 유제품이나 변질되기 쉬운 재료들은 재사용이 곤란할 때가 많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전에 치즈케이크를 만들고 남은 크림치즈랑 생크림이 들어있다. 그리고 쓰다 남은 백옥앙금도 보인다.


저걸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이것저것을 섞어 새로운 빵을 만들어보자 싶었다.

우리나라 음식이 좋은 점이 식은 밥이 남으면 김치볶음밥을 해 먹으면 되고, 나물반찬이 남으면 비빔밥을 해 먹으면 된다.

그게 또 의외로 맛있다. 이것저것 남아있는 베이킹 재료를 섞었을 때 작품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냉장고에서 크림치즈, 백옥앙금과 버터를 꺼내 놓았다. 실온에서 굳기를 좀 풀어주기 위해서다.

그러고 나서 아침식사를 하고 커피 한잔 하면서 이내 저래 열받는 뉴스를 좀 보다가 베이킹을 하자고 주방으로 갔다.

크림치즈를 확인하기 위해서 비닐 포장을 펼치니 아뿔싸! 곰팡이가 피었다. 애고 아까워라! 비싼 재룐데...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과감하게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직행!


그렇게 크림치즈가 사라지자 베이킹의 방향을 잃었다.

백옥앙금으로 뭘 해? 상투과자나 만들어? 그러기엔 남은 백옥앙금 양이 너무 적었다. 들이는 노력대비 기대되는 산출물이 턱없이 적다.

그러면? 에이 관두자! 의욕이 떨어졌다. 꺼내두었던 백옥앙금과 버터를 도로 냉장고에 넣고 다시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켰다.

도심 아파트단지 한복판에서 주부를 납치해서 어찌했다는 범인 일당이 잡혔단다. 멀쩡하게 생긴 놈들이 어찌 저런 짓을.. 열이 바쳐 티브이를 껐다. 에이~ 베이킹이나 하자!



냉장고에서 버터를 다시 꺼냈다. 가끔씩 즐겨 만들어 필요한 재료가 항상 준비되어 있는 시나몬 파운드케이크를 만들 참이었다.


건조 중에 달라붙은 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건포도를 흐르는 물에 씻어서 물이 빠지게 체망받쳐 두고, 빵틀에 깔 유산지를 크기에 맞게 오렸다.

그러고 나서 호두 분태를 오븐에 넣고 살짝 굽고 나머지 재료를 계량하여 준비 끝! 레시피를 적어둔 노트를 보고 혹시라도 빠진 재료가 없나 한번 더 확인했다.


이제부터는 그동안 많이 만들어 보았던 대로 기계적으로 작업하기이다.

버터 풀어주기 -> 설탕 소금 넣고 크림화하기 -> 계란 분할하여 넣어가며 크림화하기 -> 가루재료 넣고 섞기 -> 호두 건포도 넣고 섞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하여 반죽을 완성하였다.


준비된 빵틀에 390g 정도로 반죽을 나눠 담고 윗면을 정리해 준 다음, 미리 예열해 둔 오븐에 넣고 구우면 완성이다.

원래는 중간에 윗면이 살짝 굳을 때 꺼내서 세로로 길게 칼집을 내서 가운데가 일자로 벌어지며 예쁘게 올라오게 해야 하는데, 귀찮아서 미리 반죽에 젓가락으로 세로줄을 는 것으로 대신했다.

결과 윗면 모양이 예쁘게 터지지 않았으나 '내만내먹'이므로 개의치 않는다. 단, 예외적으로 주문을 받을 때는 최선을 다해서 예쁘게 만든다.


다 구워진 빵을 식힘망에서 식힌 후 모양을 위해 윗면에 아이싱 데코를 다. 아이싱이 굳으면 비닐포장을 하여 완성!

파운드케이크는 냉장고에 넣어서 하루정도 숙성 후 먹으면 더 맛있다.




저녁밥때가 되었다. 하루 세끼 꼬박꼬박 밥때를 챙기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다.

누워서 빈둥거리다가 집 앞 길 건너 식당에서 한 끼 때우자고 결론을 내리고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바람이 제법 쌀쌀하게 불었다. 지난주에 화사하게 활짝 피었던 벚꽃은 이미 모두 떨어지고 때 아닌 을씨년스러운 풍경이었다.


식당에는 우리같이 한 끼를 때우기 위해 온 손님들이 많아 빈자리가 없어 대기표를 뽑았다. 우리 뒤로도 손님들이 줄줄이 와서 순식간에 대기팀이 열 팀이 넘었다. 그나마 한발 일찍 오기를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차례가 되어 자리를 안내받은 뒤 돼지국밥을 시켰다. 그 식당은 돼지갈비와 대패삼겹살이 맛있는데 그냥 단품으로 기로 했다.


식사를 마쳐가는데 아는 얼굴이 식당으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전 직장동료로 꽤나 가깝게 지냈던 사이로 휴가 때 부부동반으로 해외여행도 함께 다녔던 지인이었다. 얼마 전에 역시 퇴직을 했다고 전화가 와서, '조만간 한번 봅시다' 하고 말했는데 이렇게 집 앞 식당에서 만나다니...


사는 곳도 제법 거리가 있는데 부부가 역시 밥이나 먹자 하고 나왔다고 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나중에 식사 끝내고 같은 건물에 있는 카페에서 보자고 하며 먼저 일어났다.

아내는 카페에서 기다리고 나는 급하게 집으로 가서 낮에 만들어 놓은 파운드케이크 하나를 들고 나왔다.

'아~ 이렇게 반가운 사람을 만나려고 오늘 오랜만에 베이킹을 하였구나!' 싶었다.



카페에 넷이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남자들끼리는 워낙에 오랜 기간 동안 직장동료로 친하게 지냈고, 부부동반으로 해외여행도 여러 번 가서 여자들끼리도 언니동생하며 지내는 사이라 하고 싶은 말이 많았었나 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거의 세 시간 가까이 웃고 떠들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지난 여행 때 함께하며 즐거웠던 추억을 더듬으며 한번 더 가자고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다음을 기약하며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어졌다.


헤어지며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지인한테 건네는 파운드케이크 하나!

바로 내가 홈베이킹에 진심일 이유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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