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가진 집 자식과 못 가진 집 자식을 차별하는 용어로 '개근거지'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오죽 집이 가난하고 부모가 못났으면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국내여행 한번 못 가고, 자녀가 학교만 다녀 개근상을 받냐는 이야기이다. 즉, '개근 = 거지'가 되는 셈이다. 한때는 '성실의 상징'이었던 개근상이 '거지의 아이콘'이 되어 버렸다고 사람들이 개탄을 한다.
나는 그 거지의 아이콘인 개근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총 6년을 하였다. 사실 지나고 나서 보니까 학창시절 받았던 상 중에 개근상이 제일 쓸데없는 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차라리 감기에 걸렸을 때 집에서 따뜻한 이불이나 뒤집어쓰고 있을걸 그랬다 싶다. 그랬다면 거지는 면했을 텐데...
사실 그때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가족여행은 고사하고 학교에 다니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아침이 되면 스스로 일어나 기계적으로 학교에 갔고, 몸이 좋지 않아도 학교를 쉰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개근을 하였던 거지, 굳이 학교를 다니면서 개근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 아니었다. '얼떨결에 거지'라고 해야 할까?
고등학교 다닐 때는 다들 집안 사정이 고만고만하여 친구들 간에 돈 있고 없는 것 가지고 무시하거나 질투하지도 않았다. 돈 가진 아이가 없는 아이한테 빵과 우유를 사주고, 도시락도 모여서 나눠 먹는 일은 흔하고 당연한 일로 여겨졌었다.
가끔 친한 친구들끼리 모이면 '있는 돈 다 내봐!' 해서, 각자 가지고 있는 돈 다 털어서 모인 돈 액수에 맞게 그날 놀거리를 정하기도 했다. 미리 계획을 세우는 게 아니고 그렇게 즉흥적으로 결정을 해서, 탁구장에도 가고, 빵집도 가고, 돈이 좀 여유가 있는 날에는 영화도 보러 갔다. 누가 돈을 많이 냈다고 뻐기거나 누가 적게 냈다고 타박하지도 않았다. 돈이 별로 없는 날엔 시장통에서 칼국수 한 그릇씩 먹고 깔끔하게 헤어졌다.
한 번은 돈이 제법 모여 영화를 보러 가게 되었는데, 그냥 시시하게 '청소년 관람가' 영화를 보기는 그랬고, 과감하게 '미성년자 관람불가' 성인영화를 보기로 했다. 영화 내용도 기대가 컸지만 야외지도 선생님들의 단속을 피해 가며 성인영화를 본다는 데에 더 짜릿한 스릴이 있었다.
그렇게 하여 고등학교 2학년 때 본 영화가 '깊은 밤 깊은 곳에'라는 영화로, 원제목이 'The Other Side of Midnight'이었다. 그 당시는 국내에 소개되는 외화가 그렇게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고, 특히나 모자이크 없이 배우가 전라로 나오는 영화 장면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의 이야기가 '파격적이다' '화끈하다' 같은 평이 이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잔뜩 기대를 하고 숨을 죽이며 화면에 몰두하였다. 진짜로 여배우가 완전 노출된 전라의 모습으로 베드신을 펼쳤고, 거기서 태어나서 거의 처음 본 여자의 적나라한 둥근 엉덩이는 정말 충격이었다.
그날밤 잠자리에서 계속 눈앞에 아른거리는 엉덩이 때문에 잠을 완전 설쳤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라고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 노는 재미에 빠진 우리는, 또다시 돈을 모아서 한 여가수의 리사이틀을 보러 갔다. 그 당시는 영화관에서 유명가수들이 나오는 쇼를 많이 했는데, 그런 쇼를 전문적으로 하는 '보*극장'이라는 곳이 있었다. 거기서 한참 뜨는 여가수의 리사이틀을 했는데 그걸 보러 갔던 것이다.
좀 통통하면서도 글래머러스한 체구에 곱슬머리 파마를 하고 허스키한 보이스를 가진 그녀는, 데뷔해서 노래가 계속 히트하였고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가수쇼는 대부분이 미성년자 입장금지인 성인쇼였다.
그렇다고 포기할 우리가 아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여가수는 같은 부산 출신으로, 나이가 거의 비슷한 또래였다. 그런데 미성년자 가수는 되고 미성년자 관람은 안된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가 말이다. 웃기는 짬뽕이지.
우리는 머리도 깎지 않고 최대한 기르고 큰 형님 옷으로 위장을 하고 갔다. 머리가 짧은 한 친구는 가발을 썼다. 극장 출입구를 지키는 아저씨는 신경도 안 쓰고 표만 확인하고 들여보내주었다. 괜히 졸았네.. 싶었다. 무대 바로 밑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무대가 높아서 맨 앞자리는 거의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무대를 올려다보아야 했다.
드디어 빵빠레와 함께 커튼이 열리고 조명을 받으며 그녀가 등장하였다. 하얀 라운드 티셔츠에 몸에 딱 달라붙는 핫팬츠를 입고, 굽 높은 검은색 가죽부츠에 짧은 청자켓을 걸치고 있었다.
'삑! 삑!' 박수소리 환호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달덩이 같은 환한 얼굴에 까맣고 긴 꼬불꼬불 파마머리를 출렁이며 그녀가 한참 뜨고 있는 노래를 불렀다. 팔을 위로 찌르고 옆으로 찌르면서 핫팬츠가 터질 듯이 빵빵한 엉덩이를 흔들었다. 옆에서 짪은 핫팬츠를 입고 연신 엉덩이를 돌려대는 여자 무용수들의 모습은 한술 더 떠서, 허벅지 위로 살짝 보이는 엉덩이 라인이 내 눈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헉!"
내 눈 바로 위에 그녀의 탄탄한 허벅지와 그 위에서 빙빙 돌아가는 빵빵한 엉덩이가 있었다. 하체가 어찌나 튼실하게 보이던지, 그녀가 눈앞에서 하체를 흔들어 댈수록, 허벅지와 엉덩이로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은 압박감에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난번 보았던 여배우의 적나라한 엉덩이와 무대 위의 엉덩이가 자꾸 오버랩되며 상상이 되어 더욱 숨이 가빠졌다. 90분 가까이 진행되는 쇼 내내 진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멍한 눈을 뜬 채 흩어지는 정신을 겨우겨우 붙잡고 있었다.
그날밤 둥근 엉덩이들이 동산만 하게 커지면서 가슴을 짓누르는 꿈에 밤새도록 시달려야 했다.
학창시절 가족여행 한번 못 가보고 거지 같은 개근상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학교만 다니지는 않았다. 가족여행을 통해서 얻는 체험학습 못지않게 우리는 볼 거 다 보고 다녔던 것이다.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악몽에 시달리는 날이 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