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호 Jun 16. 2023

개보다 못한 샐러리맨

이야기로 엮는 리더십



김 과장은 회사 총무팀에 근무하고 있는 입사 십 년중견사원이었다. 학사장교 출신으로 군 소대장 시절에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상남자였다. 그러나 막상 전역을 하고 사회에 나와보니, 때마침 불어닥친 금융위기로 경제가 엉망이 되어 취업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처음엔 번듯한 대기업에 취직하여 전공인 산업공학을 살려 멋지게 사회생활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대기업 입사시험에 몇 번 쓴잔을 마시고 나서는 기대 수준을 낮춰 지방에 있는 중견기업 몇 곳에 노크를 하였고, 그중 한 곳에 겨우 입사를 하게 되었다.


본인의 전공은 살리지 못하고 총무부서에 배치를 받아 회사의 잡다한 업무를 수행하였다. 총무 업무란 게 주로 다른 사람들 뒤치다꺼리 하기에 바쁜 일이다 보니, 과거의 카리스마는 다 죽어버리고 남들 눈치나 살피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가 회장님 사택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돌보는 일이었다. 골든 리트리버였는데 회장 아들이 영국 유학 중에 키우던 강아지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함께 데리고 온 놈이었다. 그러다 회장 아들이 미국 지사에 근무를 하게 되면서 돌봐줄 사람이 없게 되자, 회장이 자기 곁었다.


회장 가족은 서울에 있고 회장본사가 있는 지방에 머물렀는데, 혼자 있기 적적하다 보니까 강아지를 데리고 있길 원했다. 당연히 회장이 강아지를 보살피는 일을 할리는 없었고, 회장은 총무팀장에게 강아지를 잘 돌보라고 지시하였다. 팀장은 개성이 뚜렷한 젊은 직원들에게는 차마  일을 시키지 못하고, 알 것 알만한 김 과장에게 그 일을 맡긴 것이었다. 


김 과장이 하는 일은 단순했다. 아침에 회사 출근해서 일을 좀 보고 나서, 아무도 없는 회장 사택에 가서 올리버(개이름) 산책시키고 이틀에 한번 목욕시키고  주고 나서 복귀하면 되었다. 하지만 군에서 소대장까지 지낸 자신이 비싼 밥 먹고 회사 출근해서 남의 집 개나 돌보는 일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하지만 위에서 시키는 일을 거부한다는 것은 곧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당장 어쩌지 못하고 그 일을 하였다.





그날도 김 과장은 올리버를 데리고 한 시간 정도 공원을 돌며 산책을 시켰다. 주위에 개를 데리고 나온 동네 아줌마들이 '개 참 멋있네요.' 하고 아는 체를 하였지만, 김 과장의 마음은 여전히 못마땅하여 들은 체 만 체하였다. 산책 후 올리버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목욕을 시키고 드라이어로 털을 말려서 거실에 내어 놓았다. 그러고 나서 자기 점심값보다 비싼 고기통조림을 뜯어 사료와 섞어 개에게 내어주고, 김 과장은 개털이 많이 빠져있는 목욕탕 바닥을 씩씩거리며 청소하고 거실로 나왔다.


그런데 웬걸? 강아지가 거실 복도에 오줌을 잔뜩 싸놓은 게 아닌가? 김 과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자기는 아직 밥도 못 먹고 땀 흘려가며  온갖 뒤치다꺼리를 했는데, '아오! 이놈의 개××! 금방 산책하고 목욕까지 시켰는데 비싼 밥 처먹고 거기다 오줌을 싸?'


김 과장은 홧김에 올리버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깨갱!' 그때 마침 서울에 출장을 갔다가 일찍 집으로 돌아온 회장이 그 모습을 보고 말았다. '너 무슨 짓이야? 내가 자식 같이 여기는 올리버에게 매질을 하다니! 그동안 도대체 얼마나 때린 거야!!' 김 과장은 회장에게 꾸지람을 잔뜩 듣고 사택을 나왔다. 그동안 꾹꾹 참으며 강아지를 돌본 일은 모두 허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회사로 돌아온 김 과장은 팀장에게 불려 갔다. 팀장은 회장님이 노발대발했다며 당장 회사를 그만두라고 김 과장을 했다. 김 과장은 할 말이 많았지만 깔끔하게 사표를 써서 팀장 면전에 내던졌다. 어차피 회사에 대한 정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이었고, 남아있어 봤자 앞날이 어떨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김 과장은 팀장에게 한마디 하며 사무실 문을 쾅 닫고 나왔다.


"앞으로 그 개××는 당신이 돌보시오! 에잇 개 같은 회사!"


회사 정문을 나서는 김 과장 머리 위로 봄볕이 따사로이 내리쬐고 있었다.




개는 잘못이 없다. 여건이 안되면서 욕심으로 집에 가두어 놓는 사람이 나쁠 뿐이다. 마찬가지로 직원은 잘못이 없다. 기본 중의 기본인 공과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오너가 나쁠 뿐이다.




* 이 글은 특정회사나 특정인물과 관련이 없는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