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호 Jun 21. 2023

삼각관계의 끝

이야기로 엮는 리더십



회사에 기획팀장으로 새로 입사 한 박 팀장은 젊은 오너 사장의 대학교 동창이었다. 원래는 다른  대기업에 입사하여 나름 인정을 받고 있었는데, 회사의 자금문제로 속해있던 사업 분야가 사모펀드 매각되면서 일이 꼬였다. 그리고 박 팀장은 한직이라고 할 수 있는 계열사의 관리팀장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졸지에 그런 변화를 겪게 된 그는 그 회사에서의 성장에 한계를 느끼고 다른 길을 게 되었다. 그러다가 부친으로부터 사업을 물려받은 대학교 동창을 생각하게 되었고, 마침 그 회사의 전략실장으로 있는 또 다른 동창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혹시 너희 회사에서 근무할 수 있겠느냐고.


대학교 때 세 명이 아주 친하였다. 한 명은 부잣집 외아들로 포르쉐를 타고 다녔고, 두 명은 집이 부자는 아니었으나 머리가 매우 똑똑하였다. 그중 한 명이 학교를 졸업하고 부잣집 동창이 가업을 물려받아 사장으로 있는 중견기업에 입사를 하였고, 다른 한 명은 다른 대기업에 입사하여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그가 바로 박 팀장이었고, 친구 회사에 전략실장으로 있는 장 상무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다.


상무는 박 팀장이 회사에 들어오는 게 탐탁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자기가 친구인 사장의 옆에 딱 붙어서 실세란 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또 다른 친구가 들어온다면 앞으로 판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친구의 부탁을 오너 사장에게 말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나중에 혹시라도 자기가 중간에서 전달하지 않은 걸 알게 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장 상무는 사장에게 박 팀장이 입사타진을 하더라고 알렸다. 붙여 친구를 회사에 자꾸 끌어들이는 것은 회사 내 시선이 곱지 않을 것이라며 자기는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너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누구보다도 자기가 잘 아는 친구였고 똑똑하였기 때문에, 회사운영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보았다. 그래서 오너 사장은 흔쾌히 수락을 하였고, 그런 과정을 거쳐 박 팀장이 회사 기획팀장으로 근무하게 된 것이었다.




박 팀장은 천성이 착했다. 그리고 직원들과 친해지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다. 직원들은 처음에 박 팀장이 사장의 친구라는 사실에 상당한 경계심과 부담감을 느껴 어려워하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보다는 괜찮은 사람이네!' 하고 느끼게 되었다. 박 팀장은 친구 회사에서 정말 열심히 일할 생각으로 서울에 있는 아파트내놓, 온 식구 모두 회사 근처로 이사를 할 정도로 각오가 대단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박 팀장이 회사에 적응을 잘할수록 장 상무는 조바심이 났다. 밖에서 만날 때는 친한 친구사이였지만 회사에서 달랐다. 최대의 경쟁자가 생긴 셈이었다. 어찌 보면 회사 규모도 제법 컸고 사업분야도 넓어 마음먹기 따라 서로 협력해서 일을 하면 될 법도 했지만, 혹시라도 자신이 굴러온 돌에 밀리는 일이 생기지 말란 법이 없었다. 그래서 팀장을 견제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장 상무는 슬슬 박 팀장의 트집을 잡기 시작하였다. 박 팀장의 상사인 관리본부장에게 '그 친구 일 잘하나요?' '문제가 있지 않나요?' 하며 은근히 압력을 넣기도 하고, '사실은 먼저번 회사에서도 일을 잘 못해서 밀려난 거다'라고 험담을 늘어놓기도 하였다. 관리본부장은 입장이 곤란해졌다. 친구끼리 사이좋게 잘 지내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니, 실세인 장 상무를 무시할 수도 없고 괜히 중간에 끼어 어정쩡한 입장이 되고 말았다.




박 팀장이 직원들과 회식을 하는 날이었다. 마침 최근에 복잡한 프로젝트 하나를 잘 마무리 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홀가분한 기분으로 맛있게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씩 마시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박 팀장은 이럴 때 사장이 직원들에게 한마디 격려라도 해주면 직원들의 사기가 한층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였다. 박 팀장은 친구에게 화상 통화를 걸었다. 그리고 간단하게 배경설명을 한 후, 직원들을 쭉 비춰주면서 한마디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사장은 갑작스러운 통화에 당황하였지만 짧게 직원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통화를 끝냈다. 직원들은 환호와 박수를 치며 좋아하였고 박 팀장은 기분이 뿌듯하였다.


사실 이렇게 오너 사장이 젊은 직원들과 직접 소통하는 것은, 박 팀장이 전에 근무했던 대기업의 CEO가 즐겨 썼던 방법이었다. 그 회사에서는 사장의 그런 소통방식이 젊은 직원들에게 잘 먹혀들어가 사장의 인기가 꽤나 높았다. 그래서 박 팀장은 순수한 마음에 전에 근무했던 회사의 경험을 그대로 옮겨보았던 것이었다.


박 팀장은 내친김에 오너에게 메일을 썼다. 사장이 젊은 직원들과 직접 소통하기 어려우면 자신이 메신저 역할을 하겠다는 것. 그리고 사장과 직원들 사이에 가교역할을 할 것이니 언제든지 필요하면 자기를 불러 달라고 하였다. 자기 딴에는 자신의 순수한 의지를 피력한 셈이었다.




박 팀장의 의도는 순수했으나 받아들이는 오너 사장은 그게 아니었다. 박 팀장이 보낸 메일을 장 상무에게 그대로 토스하고 또 회식장소에 화상통화로 갑작스럽게 호출당한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야기를 들은 장 상무는 쾌재를 불렀다. 안 그래도 박 팀장이 오너 사장과 각별한 친구 사이라고 자랑을 하고 다니고, 사장을 뒤에 호가호위(狐假虎威) 한다는 소문이 돌아서 걱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확인해 보니 먼저번 회사에서도 능력부족으로 잘린 것이라고 했다.


사장은 펄쩍 뛰었다. 박 팀장의 상사인 관리본부장을 불러 박 팀장의 업무능력에 대해서 물었다. 그러나 아직 입사한 지 세 달밖에 지 않은 박 팀장을 평가하기에는 일렀다. 관리본부장은 사실대로 말했다. '아직 업무능력을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최소한 육 개월은 지켜보아야 한다. 현재 본인은 열심히 노력 중이다.'라고 대답했다. '훌륭하다' '일 잘한다'는 대답을 기대했던 사장은 관리본부장의 말이 곧 '능력이 부족하다'라고 받아들였다.


'능력도 없으면서 나를 등에 업고 호랑이 행세를 하려고 들어?'


사장은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단호했다. 회사에 2인자는 필요 없었다. 오너 자신과 '나머지들'이면 족했다. 결국 사장은 관리본부장으로 하여금 박 팀장을 쫓아내도록 하였다. 친구들 다툼에 엉뚱한 관리본부장이 손에 피를 묻히고 말았다.


친구 회사에서 영문도 모르고 쫓겨난 박 팀장은 먼저 다니던 회사의 계열사로 다시 복귀하였다. 그곳 사장이 박 팀장의 선배였고 박 팀장의 능력을 잘 알고 있는 사이였다. 그나마 내놓았던 서울의 아파트가 아직 팔리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걸로 친구들 간의 정은 끊어졌지만 박 팀장은 큰 교훈을 얻었다.



친한 친구사이에 돈거래가 이루어지면 대개는 친구를 잃게 된다. 마찬가지로 친구 사이가 상하관계로 바뀌면 역시 친구를 잃기 쉽다. 친구는 그냥 친구 사이로 남는 게 답이다.





* 이 글은 특정회사나 특정인물과 관련이 없는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개보다 못한 샐러리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