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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Jul 06. 2023

킬러문항이 망국을 이끈다?



우리나라에는 노벨상 수상자가 없다. 그러면 앞으로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아니다. 절대 불가능은 없다고 하니까 그 가능성을 0.0000001% 정도로 해두자.


노벨상 수상자가 왜 안 나올까? 바로 킬러문항 때문이다. 요즘 교육계에 킬러문항 죽이기가 화두이다. 그런데 과연 킬러문항이 문제일까? 킬러문항만 없애면 사교육비가 확 줄고 소수 정예자에게만 열려있는 일류대 문이 확 넓어져 어중이떠중이 다 들어가게 될까?


이미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은 힘을 잃은 지 오래다. 시간만 때우고 있다가 상급학교로 가기 위한 졸업장을 얻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교육의 목적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교육의 목적은 공교육이건 사교육이건 '더 좋은 대학 가기'에 있다. 더 좋은 대학에 가면 남들을 짓밟고 일어서서 더 많은 부를 축적할 가능성이 월등히 높아지기 때문이다.


만약에 교육의 목적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남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소양과 능력을 가르치는 것'에 두고 정책을 펴고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남들은 어떻게 되든 말든 그들을 짓밟고 올라서서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재주를 연마하는 것 말고.


그래놓고 사람들은 더불어 사는 사회니 남에 대한 배려니 하는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직원들 간에 경쟁을 시키고 철저히 상대평가를 하면서, 어이없게도 팀웍을 강조하는 개뼈다귀 같은 소리를 다.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주위 모두를 경쟁상대, 이겨야만 하는 상대로 만들어 놓았는데, 그들이 커서 협력이니 팀웍이니가 될까?



사실 이런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사고 풍조는 결코 교육계의 문제가 아니다. 못살던 시절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오로지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이 시행된 결과이다. 결과로 중소기업의 경제 생태계는 아예 설자리를 잃었고 소수의 거대기업이 군림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성공을 '돈'으로 보고, 모든 가치의 기준을 돈으로 평가하게 하는 사회적 기준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그러한 풍조는 독버섯이 되어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퍼져나갔다.


R&D 투자도 당장 돈이 되지 않는 것은 하지 않는다. 학자도 돈이 되지 않는 연구는 하지 않는다. 결과로 모방과 응용기술은 뛰어나지만 기초기술은 형편없다. 기초과학도 형편없다. SCI급 논문 발표도 형편없다. 돈이 되지 않는 기초과학 연구에 힘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노벨상이 나올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 그동안 올바른 지도자들이 있었다면 그나마 편중된 사회를 바로잡는 노력들을 했을 텐데, 아쉽게도 단 한 명도 그런 지도자가 나오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비극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구구단이며 수학 공식이며 문제를 빨리 풀 수 있는 재주를 익히는데 몰두한다. 손가락 발가락을 구부려가며 머리를 쓰는 과정을 먼저 거쳐야 하는데,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중추신경에서 반사적으로 답이 튀어나오는 꼴이다. 반면에 깊은 사고 능력은 퇴화된다. 유럽 선진국에서는 학부모가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에게 구구단 같은 요령을 가르치면, 선생님에게 불려 가서 혼난다고 한다. 자녀들의 창의적 사고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리나라 문화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노벨상 수상에 근간이 되는 창의적인 사고나 연구를 할 수가 없는 것은 자명하다.



우리나라는 망해가고 있다. 곳곳에 시그널이 뜨고 있는데 다들 모르는 체하고 있다. 하기야 어차피 지구상에서 인구소멸로 가장 먼저 없어질 나라라고 하니 굳이 아등바등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작금의 사태를 보면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더 잘 이용하고 있다. 대부분이 더 좋은 대학을 나왔으니 더 남을 짓밟고 경쟁에서 이겨왔을 것이고, 누구보다도 더 그러한 방법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내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이 잘못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오히려 남이 잘 못되게 하는 것이 경쟁에서 더 효과적이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상대방을 비방하고 헐뜯고 깎아내린다. 상대방이 내세운 정책은 무조건 반대를 하고 희한한 논리를 내세워 국민들을 선동질한다.


우리나라는 킬러문항이 문제가 아니다. 입시제도가 문제가 아니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돈을 숭배하는 풍조와 그것을 얻기 위한 일등주의를 걷어내야 한다. 그것의 근간은 바로 철학이요 인문학이다. 어려서부터의 교육을 공부기계를 만드는데 몰두할 것이 아니라 인간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조금 덜 똑똑해도 된다. 아니 이미 우리나라 아이들은 넘칠만큼 똑똑하고 영악하다. 교육과정을 국영수 비중을 대폭 축소하고 철학과 인문학 비중을 대폭 늘려야 한다. 먼저 인간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교도 지금의 1/5쯤으로 줄여야 한다. 어차피 학령인구가 줄어 서서히 없어지기는 하겠지만 가급적 쫄딱 망하기 전에 빠르게 시행하는 게 좋다. 대신에 기술학교를 대폭 늘려서, 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대학교로, 일이 좋은 사람은 기술학교로 보내야 한다. 대학교를 안 나와도 세상을 행복하게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나라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프게도 킬러문항의 뒤에 숨겨져 있는 우리 사회의 돈, 일류대학 숭배 풍조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이미 너무 깊고 너무 널리 퍼진 독버섯이다. 다 같이 망국(亡國)을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이 글은 작가지극히 개인적인 푸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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