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사량도에서 함께 세월을 낚았던 지인 두 분과 금정산 산행에 나섰다. 산행이라고 해서 반드시 걸어서 오르라는 법은 없는 법. 편하게 케이블카를 탔다. 그리고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자연미라고는 1도 없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들.
에구, 맨날 저런 곳에서 숨 쉬고 살았으니 가슴이 답답하고 작은 일에도 울화가 치밀지 않을 수 있으랴 싶었다.
지난번 바닷가에서 낚시할 때는 그분들이 고수였지만, 산에서는 그래도 내가 몇 번 다녀본 코스로 안내한다고 안내자를 자처하였다. 그러나 몇 년 만에 오른 산은 많이 낯설었고, 이 길이 그 길인지 그 길이 이 길인지 헷갈렸다. 원래는 남문을 거쳐 날씨가 좋은 날에는 대마도까지 보인다는 망루에 올라 호연지기를 펼칠 생각이었는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남문을 두고 이리로 갔다 저리로 갔다 돌고 돌아, 결국 남문을 세 번이나 들락거리게 되었다. 아마도 옛날 같았으면 수상한 자들로 몰려 성문을 지키는 포졸들에게 끌려갔지 싶었다.
"니들 대체 뭐 하는 자들이기에 자꾸 성문을 들락거리냐?"
날은 덥고 목도 마르고 해서 호연지기는 포기하고, 하기야 다들 늘그막에 무슨 호연지기가 남아있으랴마는. 그냥 산성마을에 온 김에 파전에 산성막걸리나 한잔하자고 의기 투합하였다.
"아지매, 파전은 얇고 바삭하게 구워주고 막걸리부터 주이소!"
덥고 목마르던 차에 목젖을 타고 시원하게 넘어가는 천연누룩으로 발효한 걸쭉한 산성막걸리.
"그래, 바로 이 맛이지!"
파전이 나오기도 전에 막걸리 한 병 쓱. 희한하게도 산에서 먹는 미역나물이 삼삼한 게 맛이 있었다.
드디어 파전이 나오고 본격적으로 고소하고 바삭하게 구워진 파전에 막걸리를 음미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훼방꾼 등장. 바로 까마귀 한 마리. 고놈은 우리가 앉은자리에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는 커다란 나무 가지 위에 앉아 시끄럽게 울어대었다. 심지어 고놈은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쉬지 않고 울어댔는데,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고놈이 이미 파전 맛을 알아버린 것! 그래서 자기 것 남겨놓고 빨리 가라고 울어댄 것이었다.
"내 파전 남겨줘!"
그래, 네가 파전 맛을 아는 산성마을의 터줏대감이었구나. 혹시 모르겠네. 산성막걸리 맛도 알아버린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