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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Aug 16. 2023

사장님의 성과지표



"내년부터 사업별 개인별 성과에 연동한 연봉제를 실시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회사의 주된 사업별 성과지표는 현금흐름 투자수익률(CFROI, Cash Flow Return on Investment)이 될 것입니다."


6개월 동안 회사 인사분야 컨설팅을 진행한 컨설팅 회사 대표가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에서 예상치 못한 발표를 하였다. 당시 기획팀장 업무를 맡고 있던 나로서는 인사제도가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도대체 들어보지도 못한 'CFROI'라는 것을 그것도 사업별로 어떻게 계산해 낼지가 큰 관심사였다.


"질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CFROI라는 것을 어떻게 계산하지요? 계산 툴이 있습니까?"


"예... 그 그건... 저희가 하는 건 아니고..."

내 질문에 컨설팅 회사 대표는 말을 흐리며  앞자리에 앉아계신 우리 사장님 얼굴만 쳐다보았다.


"산출 방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요."

사장님께서 대신 대답하셨다.


'어떻게 계산해 낼지 완성도 안된 상태에서 그런 발표를 하지?' 나는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설명회 자리를 물러나왔다.




며칠이 지난 후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그 CFROI라는 것을 그것도 사업별로 구분하여 계산해 내는 일이 우리 팀의 과제로 떨어졌는데, 우리 팀이라고 해봤자 결국은 내가 해결해야 하는 일이 되고만 것이다.


"전통적인 매출액과 영업이익으로는 회사의 성과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현대 기업경영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현금흐름이 중요하고 현금흐름이야말로 진정한 미래지향적인 성과지표입니다."


사장님께서 책 한 권을 내게 건네주시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이 책을 읽어 보시고 회사 ERP System을 잘 활용하여 사업별로 CFROI의 계산 방안을 찾아보세요."


그렇게 달랑 책 한 권을 받아 들고 사장실을 나와서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사장님께서 주신 책,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쓴 '가치창조 경영'에는 CFROI의 개념과 중요성에 대한 설명만 나와있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계산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허~ 난감하네!"


나는 할 수 없이 서점에 들러 현금흐름에 관한 책 대여섯 권을 사서 독에 들어갔고, 다른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아 외국계 회사에서 사용하는 탬플릿 하나를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책에서 본 개념과 실제 계산상의 인과관계 그리고 우리 회사에의 적용방안 등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기업체에서 사업의 성과로 많이 사용하는 '영업이익'이라는 지표에는 크게 두 가지의 점이 있었다. 하나는 '시간의 경과에 따른 가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투하자본에 대한 효율성이 간과된다'점이었다.


제품을 생산해서 판매하는 제조업체를 예로 들면, 현금 → 원재료  제품  재고자산  매출채권  현금 등으로 자산의 형태가 변하게 된다. 사업을 위해서 투하된 현금이 한 바퀴 돌아서 다시 현금의 형태로 돌아오는 데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며, 처음 투하된 시점의 현금의 가치와 한 바퀴 돌고 온 시점의 현금의 가치는 다르다는 것이다. 즉, 작년에 투자된 100원에 비하여 일 년이 지난 올해의 100원의 가치는 기본적으로 이자율 또는 물가상승률만큼 떨어지게 된다. 이것은 재고자산이나 매출채권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사업을 위해 투하된 공장건물, 기계설비 등 모든 자산에 똑 같이 적용되는 개념이다.


CFROI는 이러한 시간의 흐름에 따른 가치의 하락을 고려한 개념이다. 사업활동에 투하된 영업활동 자산에 할인율을 적용하여 현재가치로 환산하는 '현가(現價)' 개념을 용하고, 영업이익이 아닌 실제로 창출된 '현금흐름'을 계산함으로써 사업활동의 본질적인 가치 창출을 중요시하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드디어 회사 전체와 각 사업별 CFROI를 계산해 내게 되었다. 사장님께 계산상의 제약조건과 한계, 계산치에 대한 유효성 등에 대해서 먼저 보고를 드리고 컨펌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하였고, 각 사업부별로 사업부장님과 팀장들을 대상으로 각 사업부의 특성을 고려한 별도의 교육을 실시하였다. 매월 사장님께서 주재하시는 월간 경영회의에 각 사업별 CFROI 결과를 보고하고 개선점 등을 토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소수의 선진 일류기업에서 사용하는 지표 그리고 경영학자들의 논문에 나오는 그 성과지표가 우리 회사에도 먹혔을까?


내가 아무리 설명하고 설명해도 개념 자체가 어렵고 계산해 내는 과정이 너무 복잡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결과치만 보고 '아! 그렇게 나왔구나?' 할 뿐이었다. 그들에게는 당장 눈앞에 직면한 생산, 불량, 재고, 매출, 수금 등이 관심사이지, 숫자를 이리 꼬고 저리 꼬아서 나온 결과치 4.56이니 5.28이니 하는 것이 전혀 현실성이 없고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중요한 건 회사의 대부분의 생산기반을 공유하는 제조업체 특성상 각 사업부에서 독자적으로 CFROI의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여지가 별로 없다는 점이 큰 제약요소였다. 지표를 개선하려면 분자인 현금흐름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분모에 해당하는 투하자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중요한데, 그 투하자산의 대부분이 각 사업부가 아닌 회사에 결정권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각 사업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재고 축소, 수금 독려 같은 기본적인 활동 외에는 '영업이익'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고, 역시 영업이익이 CFROI를 개선하는 가장 큰 factor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나마 사업의 형태가 오랜 세월에 걸쳐 정형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재고나 수금 문제도 만만치 않아, 각 사업부에서는 매출과 영업이익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사업별 CFROI라는 성과지표에 연동한 보상제도는 고사하고, 머잖아 회의 자리에서 '아! 그렇군요?' 하고 숫자만 확인하고 넘어가는 일종의 요식행위에 불과한 일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수박 겉핥기식으로 CFROI를 경외스럽게 바라보다 언제부턴가 회의자료에서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사장님의 야심 찬 성과지표는 새로운 인사제도를 등에 업고 회사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선진 경영기법으로 거창하게 시작하였으나 그렇게 짧은 생을 마감하였고, 회사의 성과지표는 다시 '영업이익'이라는 원시지표로 회귀하게 되었다.



오늘의 교훈...

학자들이 연구하거나 발표하는 논문들이 학술가치가 있을지라도 현실에는 맞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다. 그것이 컨설팅 회사를 먹여 살릴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회사에는 막대한 혼란과 비효율을 가져오기도 한다. 자신에 맞는 옷을 입어야 맵시도 나고 활동하기에도 좋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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