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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Sep 04. 2023

'정확하게'가 답이 아닐 수도 있어요



회사에서 실무자 시절 나의 주특기는 사업분석, 경영분석, 원가계산 그런 것들이었다. 그리고 2000년 초 회사에 ERP System을 구축할 때 나는 관리회계(CO, Controling) 모듈러를 맡아 회사의 원가계산 체계 및 수익성 분석의 기틀을 만드는 일을 하였다. 그때 사장님으로부터 지시받은 사항이 원가계산의 정밀도를 높여 제품의 원가를 정확하게 계산하라는 것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큰 소리로 대답을 하고 나왔지만 '정확하게'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제품의 원가를 정확하게 계산한다고 과연 그게 맞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원가계산은 수익성 분석의 기초자료가 되는 것으로, 사업의 수익성 분석을 통하여 경영자가 의사결정을 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원가계산은 원칙적으로 '정확하게' 해야 하는 게 맞다.


예를 들어 이런 가정을 해 볼 수 있다. A제품을 만드는 공정에 열 명의 작업자가 근무하고 있다. 하루 총생산량이 110개인데, 작업자의 임금은 200만원에서 300만원까지로 다양하다. 하지만 생산성에는 큰 차이가 없다. 이럴 경우 각 개인별 인건비를 적용하여 제품원가계산을 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전체 인건비를 평균으로 적용하여 원가계산을 하는 게 맞을까? '정확하게'가 머리에 꽂힌 사람은 개인별로 구분하여 각 개인별 실제 인건비가 적용된 제품원가를 계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위의 표에서 보듯이 다른 조건은 다 같다고 보았을 때, 인건비의 전체평균을 적용하여 계산하면 A제품의 개당 제조원가가 868천원이 된다. 반면에 인당 인건비가 각각 다른 세 개의 그룹 A', A'', A'''로 구분하여 계산하면, 각각 818천원, 864천원, 909천원이 된다. 똑같은 A제품이지만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제조원가가 달라지는 것이다.


만들어진 제품들이 거래처에 팔려나간다. 이번에는 거래처별로 수익성 분석을 해야 할 차례이다. 전체 인건비평균을 기준으로 원가계산을 한 경우에는 가, 나, 다 거래선 동일하게 이익률이 13.2%로 나온다. 하지만 개별 인건비를 기준으로 원가계산을 한 경우에는 낮은 인건비가 적용된  A'를 가져간 가 거래처의 이익률이 18.2%로 가장 높게 나오고, 나 거래처가 13.6%, 다 거래처가 9.1%가 나온다.



이 수익성 분석 자료를 근거로 경영자가 의사결정을 한다.


"음.. 다 거래처의 수익률이 떨어지는데 거기는 판매가격을 올리도록 하고, 수익률이 높은 가 거래처에는 인센티브를 지급하도록 하세요."


이렇게 의사결정을 했다면, 그게 올바른 판단일까? 사실 거래처수익률이 높고 낮음에 거래처에서 기여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회사의 원가계산 방법이 달랐을 뿐이다.


위의 예시는 작업자의 인건비가 다른 경우를 든 간단한 경우이지만, 실제로 회사에서는 여러 요인들에서 비슷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기계설비의 경우도 오래전에 구입한 설비의 기계비용과 새로 구입한 설비의 기계비용이 다르다. 정확하게 계산한다고 기계장치별로 구분하여 원가계산을 하다 보면 새로 구입한 기계장치에서 생산한 제품의 원가가 높게 나오고, 하필이면 그 제품을 건네받은 거래처의 이익률이 낮아지게 된다.


회사에는 다양한 제품과 다양한 설비 그리고 다양한 인원들이 복잡하게 얽혀 생산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거래처에도 다양한 제품들이 인도된다. 이렇게 복잡한 상황들이 섞이게 되면 위의 단순한 예시에서 쉽게 보이는 '원가계산 방식에 문제가 있구나'하는 점을 알아차리기가 힘들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런 데이터를 근거로 하면 경영자는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사장님, 정확하게가 아니라 대충 뭉쳐서 계산해야겠는데요?"



일을 하는 데는 정확성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목적 적합성'을 요구한다. 그 일을 왜 하는지? 그 일의 결과가 어디에 쓰이는지? 그 일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늘 염두에 두고 일을 해야 한다.


계산을 정확하게 한다고 단위를 잘게 쪼개면 그 쪼개진 단위별로 구분하여 원가를 집계해야 하므로 관리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관리비용을 많이 들이면서 산출한 데이터가 오히려 쓸모없는 쓰레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일을 기획하는 사람은 일의 전체 프로세스와 거기서 산출되는 결과치를 예측하여 설계를 해야 한다. 무조건 잘게 쪼개는 게 정답이고 거기서 산출되는 결과치가 맞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때로는 '정확하게'가 답이 아니고 '대충 뭉쳐서'가 답일 수도 있는 것이다.



회사에서 직원들을 관찰하다 보면 우수한 대학교를 나오고 똑똑한 것 같은데 일머리가 없는 직원들이 눈에 띈다. 정답을 찾는 것은 잘하나 스스로 일을 정리하고 체계를 잡고 인과관계를 따지는 데에는 약하다. 꽉 막힌 사고구조를 갖고 있다. 이런 직원들이 또 고집은 세어서 그것을 바로잡는 데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반면에 조금 처지는 대학교를 나오고 스펙도 부족하지만 일머리가 훌륭한 직원들도 있다. 이런 직원들은 어려서부터 많은 경험을 하고 책도 많이 읽고 활동적으로 놀아본 이력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공부머리보다는 센스와 일머리가 트이게 된 것이다.


학창 시절에는 정답을 찾는 기술의 연마가 가장 중요하지만 막상 사회에서는 그게 답이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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