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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Aug 14. 2023

공부 잘하는 직원이 성과를 낸다는 착각



"요즘 어떤 책을 읽으십니까?"


면담 시간에 사장님께서 툭 던지신 질문이었다. 여기서 '어떤'의 의미는 뭐 소설이나 무협지 같은 걸 말하는 게 결코 아니었다. 만일 순진하게 생각하여 그런 류의 대답을 했다면 사장님의 눈썹이 꿈틀 하며 대번에 언짢은 빛이 비쳤을 것이었다.


사장님의 의도는 단순히 '여가 시간에 뭐 하지? 책이나 좀 보나?' 정도의 의미를 넘어서, '회사에 어떤 문제가 있으며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지?' 내지는 적어도 '임원이 되었다고 나태해지지 말고 경영도서라도 보며 자기 계발에 힘써라!'의미가 담긴 것이었다.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선문답(禪問答)처럼 툭 던지는 사장님의 질문이지만, 잘못 대답다가는 자칫 낭패를 볼 수 있어 꽤나 신경을 써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경영학 도서 한두 권쯤 아니면 최소한 인문학 도서라도 옆에 끼고 다니며, 책 내용과 회사와의 연결고리를 찾아 그럴듯한 스토리를 마련해 두어야 했다.



"요즘 어떤 책을 보십니까?"


"리더십 관련 책을 읽고 있는데 직원들이 스스로 열심히 일하는 조직을 만들려면 리더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구체적인 방안이 구상되면 저와 함께 논의해 보시지요."


"네 방안을 마련하여 보고 드리겠습니다."


이 정도 스토리는 전개되어야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면담을 마칠 수 있었고, 덕분에 과제 하나를 부여받아 열심히 풀어내했다.


 

그랬다. 엘리트 코스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신 사장님은 책 읽고 공부하는 걸 좋아하셨고, 직원들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다.


대학교 도서관처럼 밤늦도록 불이 환하게 밝혀진 사무실이나 회의실에서 직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고, 때로는 어떤 주제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그런 문화를 꿈꾸셨다. 심지어 회식자리에서조차 술잔 대신 음료수 잔을 들고 진지한 대화를 하는 걸 즐겨, 부담을 느낀 직원들이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자리를 뜨기 일쑤였다. 그러면 사장님은 음료수 잔을 들고 그런 직원들을 쫓아다니며 요즘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해 하셨다.




"사내 MBA 과정을 개설해 리더들을 양성해야 하겠습니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사장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동안 쭉 봐왔던 직원들의 실력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 사장님이 급기야 직원들 교육에 본격적인 시동을 건 것이었다.


"지방에 본사가 있는 중견기업으로서 서울의 우수한 대학을 졸업한 직원들을 채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차라리 지역 대학을 졸업한 성실한 직원들을 뽑아서 회사에 필요한 인재로 육성시키는 게 맞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과감한 투자를 동반한 직원들에 대한 교육과정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윗물의 솔선수범을 강조해 오신 사장님은 먼저 임원들에 대한 '미니 MBA 과정' 추진하셨다. 서울호텔에서 진행된 교육에는 해외법인에 나가 있는 임원들까지 모두 들어와  참석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간 동안 회사에 임원 한 명 없어도 전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수업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간 그리고 매일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스파르타식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그것도 매일매일 과제가 부여되어 자정이 넘도록 노트북 앞에 매달려 있어야 했으며, 일주일을 꼬박 호텔 로비 밖을 나가보지 못하는 철장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다. 마지막 토요일 교육일정을 모두 마치고 호텔을 나서면서야 '우리가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서 일주일을 구나!' 하는 걸 비로소 알게 될 정도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참석한 임원들의 성적이 일등부터 꼴등까지 등수가 매겨졌고, 그 결과가 고스란히 사장님께 보고되었다. 그 자료가 구체적으로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임원인사 자료로 쓰이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은 쉽게 해볼 수 있었다. 평소에 사장님은 공부 잘하고 성적 좋은 사람이 일을 더 잘하고 성과도 더 낼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임원 다음으로 팀장급 관리자들에 대한 '사내 MBA 과정'이 진행되었다. 대상자가 이미 내정되어 있었지만, 표면상으로는 각 사업부별로 사업부장님들의 추천을 받은 중간관리자 50여 명이 거의 6개월 동안 금. 토요일 이틀간 일정으로 수업을 받았다.


강사로 서울의 SKY대학교 교수님들을 초빙하여 진행하였는데, 내용상으로 볼 때 국내 어느 대학교 MBA 과정 못지않은 수준 있는 교육과정이었다. 실제로 강의를 해주시는 교수님들은 '지방의 중견기업에서 이런 교육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정말 뜻깊고 대단한 일'이라며 열과 성을 다하여 강의를 해주셨다.


이렇게 MBA 과정을 마치고 다음 해에는 일부 과정을 추가한 심화과정까지 진행되었다. 적어도 직원 교육에서 만큼은 사장님 바람대로 직원들 실력을 쌓는 기틀이 마련되고 회사 내 공부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이제 앞으로 눈부신 성과를 이룩하는 일만 남게 된 것처럼 보였다.




오랜 기간 동안 회사에서 거금을 들여 직원 교육에 힘을 쏟았으나 그 효과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남았다. 왜냐하면 직원들이 쌓인 실력을 발휘하여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기는커녕, 정작 많은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버렸때문이었다. 나쁘게 말하면 '죽 쒀서 개 준 꼴'이고, 좋게 말하면 '사회에 봉사한 '이 되고 말았다. 어쨌든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덕분인지 대기업으로 성공적인 이직을  직원들이 많았고, 우리 회사 출신이라면 대체적으로 호평을 받았다는 후문이 들렸다.


사장님은 심한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몰랐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키워준 은공도 모르는 직원들이 배은망덕한 것일까?


아마도 내 생각에는 오래전 사장님께서 질문하셨을 때 내가 대답을 하였던, '직원들이 스스로 열심히 일하는 조직을 만들려면 리더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에 답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직원들이 회사에서 성과를 내는데 단지 지식이나 실력을 쌓도록 하는 게 다였을까? 어쩌면 그것보다는 먼저 직원들 '스스로' 마음을 움직이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었어야 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과 노력 없이 직원들에게 지식만 쌓도록 강요한 것, 마치 마음 떠난 연인한테 공자님 가라시대를 읊었던 건 아니었을까?


결과적으로 회사에는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직원들이 남았고 실력을 키운 직원들은 떠났다.



오늘의 교훈,

사장님이 똑똑하고 향학열만 넘치면 직원들이 정말 피곤하다. 반면에 직원들은 공부하게 되고 배우는 게 정말 많다. 그러나 그게 반드시 '우리' 회사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게 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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