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창피한 게 아니고 자랑스러운 거임

그 남자의 횡설수설

by 이은호



토요일에 알바를 하고 있다. 퇴직을 하고 나서 아내와 함께 2년간 자영업으로 세탁편의점을 했었는데, 얼마 전 한 지사에서 새로 오픈하는 직영점을 맡아서 봐줄 수 없겠느냐고 연락이 왔었다. 그래도 그게 경험이 필요한 일이라 유경험자를 필요로 했고, 과거에 매장을 운영할 때 평판이 괜찮아서였는지 본사 직원을 통해서 의사타진이 왔던 것이다. 물론 나는 조금도 할 생각이 없었지만 아내는 소일거리로 조카와 함께 시간을 나누어 해보겠다고 응낙하였다. 그리고 나보고 토요일에 매장을 봐달라고 하였다. 대신 용돈을 주겠다고 했다. 용돈?! 돈에 눈이 먼 나는 선뜻 그러마고 하였고 그래서 토요일에 매장을 지키게 되었다.


지난 토요일 오후, 손님도 없는 한가한 시간 매장에 앉아서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를 읽고 있는데 누군가 찾아왔다. 바로 회사에 근무할 때 함께 일했던 인사팀 직원이었다. 같은 건물에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이 있는데, 지나가다가 보니 아무래도 나 인것 같아서 들렸다는 것이었다. 직원과 아내 그리고 아이 둘, 온 가족이 찾아와서 갑작스러운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 직원도 그 회사를 그만두었고 지금은 한 공기업에 근무하고 있다고 하였다. 오랜만에 만난 직원이었기에 정말 반가웠고,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한결 였다. 총명하고 귀여운 아이들과의 만남에 뭐 줄게 없나 두리번거리다가 간식으로 놔둔 초코파이를 찾아내어 하나씩 건넸다. 포장지에는 마침 '정(情)'이라고 찍혀있었다.


나중에 아내에게 회사 직원을 만났던 이야기를 했더니, '그래도 왕년에 잘 나갔던 사람인데 직원보기가 창피하지 않더나? 직원 가족들까지 있는데서.'라고 묻는 것이었다. 내가 대답했다. '뭐가 창피해? 전에 2년 동안 세탁편의점을 직접 했던 이야기도 했는데.' 그날 저녁 퇴근하면서 아내가 외손자가 보고 싶다고 하여 딸 집에 들렀다. 마침 저녁식사 시간이라 함께 밥을 먹으면서 아내가 그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딸과 사위에게 물었다. '아빠가 그런 일 하는 게 부끄럽나?' 딸과 사위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아니요, 전혀 아닙니다!'



내가 회사를 퇴직하게 되었을 때, 나보다도 아내가 더 힘들어했었다. 아내는 지금까지도 내가 아침에 양복 입고 넥타이 매고 출근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 내 실력이 아깝다고 한다. 여전히 회사에서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고 한다. 남편의 능력을 인정해 주고 남편을 응원하는 아내의 그 마음을 나는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그런 아내를 만난 건 내게 정말 큰 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퇴직과 동시에 회사에 다시 들어갈 마음을 완전히 버렸다. 퇴직할 때, 믿었던 사람들한테 다친 상처가 너무 컸고, 30년 넘게 남의 뒤치다꺼리나 해온 일에 완전히 지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재취업 대신 다른 길을 찾았다.


디저트카페를 목표로 제과제빵과 바리스타를 배웠다. 결국 코로나19로 창업을 하지는 못하고 취미생활로 남았지만 후회는 없다. 그다음으로 부담 없이 소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한 세탁편의점을 열게 되었다. 그래도 상장기업의 CFO에 관리총괄 전무로 일했던 사람이 그런 일을 한다는 것에 자격지심이 들 수도 있었겠지만, 난 전혀 개의치 않았다. 세상에 개똥보다도 쓸데없는 것이 자격지심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면서 상황은 늘 변하기 마련이고, 그 변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왕년에 내가 누군데...' 해봤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세탁편의점을 하면서 빵을 만들어 손님들께 건네기도 하고 친절하고 꼼꼼하게 매장을 운영한 덕분인지 단골손님이 꽤 늘었다. 아내는 그 동네에 친구와 언니 동생이 생겼고, 나를 좋아하는(?) 아주머니들도 생겼다. 바로 옆에 카페가 있었는데 오고 가며 따끈한 아메리카노 한잔씩 놓고 가는 분들도 있었다. 카페에 '옆집 사장님 뭐 드시냐?'고 물었더니 '이거요.' 하면서 따끈한 아메리카노를 주더라는 것이었다. 세탁편의점을 하면서 정말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언제 기회가 되면 그때 글을 써볼 수도 있겠다.



사람 사는 것은 다 비슷하다. 하루 세끼 먹고 똥 한번 싸고 밤이 되면 잔다. 아무리 잘 먹어도 황금똥 싸는 것도 아니고 제아무리 황금침대에서 잔다고 해도 개꿈 꾸지 말란 법이 없다. 게다가 왕년에 아무리 잘 나갔어도 지금은 아니면 아닌 것이다. 과거에 연연하면 안 된다.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나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으면 그게 최고다.


토요일 오전, 매장에 앉아 7080 팝송과 가요를 들으며 이 글은 쓰고 있는데 손님이 없다. '에구~ 장사가 잘 안 되네.'


이러다 용돈이나 받을 수 있으려는지 모르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서평 써주실 분이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