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POD 출판을 한 이유, 그 변명

맞고 틀리고가 아닌 생각의 차이가 아닐까

by 이은호



얼마 전 부크크의 POD 출판을 통해서 내 첫 소설 '시절인연, 이은호 단편집'을 출간하였다. 그리고 홍보를 위해 용기를 내어 브런치에 서평 부탁을 하였고, 정말 뜻밖에도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았다. 전혀 인연이 없었던 분들도 신청을 해주셨다. 이렇게 또 다른 인연이 이어지는구나 싶었다. 브런치 이웃분들의 따뜻한 마음과 격려는 내게 정말 큰 힘이 되었고, 그 은혜는 앞으로 잊지 못할 것이다.


내 소설을 읽은 분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그 소설 하나하나가 소중한 의미가 있는 것들이다. 어떤 것들은 나의 과거를 배경으로 하였고 그때의 내 감정이 어땠을까를 회상하며 되살리려고 노력하였다. 한편으로는 개인적 감상에 너무 젖어들지 않도록 절제하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물론 내 자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어설프고 서툰 표현이 많이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성인들은 독서를 참 안 한다고 한다. 일 년 독서량이 전자책을 포함해서 4.5권에 불과하고, 성인의 절반은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소설은 과연 얼마나 읽을까? 서점에 신간은 매일 쏟아져 나오는데 구매자는 없다. 일주일 정도 신간 매대에 꽂혀 있다가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구석으로 밀려나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창고로 간다. 그러고 나면 다시 독자의 선택을 받는다는 건 요원한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


대다수 신간이 이런 과정을 거쳐 사라진다. 이런 상황에서 출판사의 입장은 어떨까? 어떤 책을 내야 돈을 벌까? 아니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을까? 고민이 깊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책의 내용 이전에 독자의 흥미를 끌만한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거기에 초점을 맞춰 마케팅을 하고 책의 흥행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 스토리라는 게 없다. 누구나 알만한 유명인도 아니고, 큰 사건을 겪은 트라우마도 없다. 정신적이나 육체적인 핸디캡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생에서 큰 고난을 경험하고 그것을 극복한 인간 승리의 역정(歷程)도 없다. 하다못해 이혼, 가정파탄, 병마, 우울증 등을 경험하지도 못했다.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다던지, 정말 글을 잘 쓰고 내용이 탄탄하여 누가 보더라도 흥미를 끌정도라면 좋겠지만 나는 그 정도의 능력이 없다.


변변한 스토리도 없고 눈이 번쩍 뜨일만한 자질도 없는 나 같은 경우, 메이저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겠다는 욕심은 그야말로 가능성 1도 없는 욕심에 불과할 뿐이다. 출판업계에 연줄이라도 있으면 소형 출판사에라도 기대어볼텐데 나의 경우는 그런 연고도 없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이곳저곳 투고를 해볼 생각조차 아예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심혈을 기울여 쓴 내 분신 같은 글인데 마치 동정이라도 구하듯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싫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만들어 보자 했던 것이다.


혼자서 편집하고 오탈자 수정한다고 밤늦도록 머리를 싸맸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배우는 것도 많았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도 좋았다. POD 출판이 나름 장점도 있었다. 첫째, 팔리지 않아 캄캄한 창고에서 묵히다 결국 폐기되는 불상사가 없다. 둘째, 컴퓨터 파일로 존재하기 때문에 절판이 없다. 얼마든지 구매가 가능하다. 셋째, 오탈자가 있거나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수정이 가능하다. 내 생각에는 이 세 번째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POD 출판의 가장 큰 단점은 독자가 주문 후 납기가 오래 걸린다는 것인데 요즘은 소량 재고생산 서비스가 있어 많이 해소되었다.



드디어 POD 책이 완성되었다. 책을 받고 보니 책이 그렇게 초라해 보이지는 않았다. 새책인 듯 빛바랜 책인 듯 애매한 분위기도 괜찮았다. 지난번 사량도에 함께 갔던 지인에게 책을 선물했다. 별로 관심도 없는데 괜한 부담을 줄까봐 부탁하였다.


"다른 건 놔두더라도 지난번 같이 사량도에 갔을 때 영감을 얻어 쓴 '당신은 누구세요?' 한편만 읽어 보십시오."


그 단편은 '낯선 곳에서 한 여인을 만나다.'라는 문장 하나에서 출발한 이야기였다. 사량도에 있었던 2박3일 내내 날씨가 흐리고 비가 내려 감성이 촉촉해진 상태에서 스토리 구상을 하였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지인을 다시 만났다. 그 전날까지 책을 덮어놓고 있다가 그래도 다음날 만나는데 책에 대해서 뭐라도 한마디는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책을 펼쳤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책갈피까지 꽂아 놓은 '당신은 누구세요?'를 읽었다고 하였다.


"뭐야? 이거 재밌잖아!"


지인은 책에 흥미를 느끼고 그다음 단편 또 그다음 단편을 읽었다고 했다. 어떤 단편을 읽었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왔다고 했다. 작가의 입장에서 '작가는 이때 어떤 감정으로 이 글을 썼을까?' 하며 읽었다고 했다. 아마도 거의 동시대를 살아왔고 과거에 비슷한 환경을 거쳤기 때문에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결국 지인은 점심도 거른 채 그 자리에서 책을 다 읽었다고 했다.


너무 많은 등장인물에 나조차도 이름이 헷갈리는데, 지인은 단편마다 등장인물을 다 기억하고 그들의 대사까지 이야기해 주었다. 정말 감동이었다. 단편 단 하나라도 읽어 주고, 단 한 구절이라도 기억해 주면 그걸로 족한데, 그렇게까지 구구절절 기억하고 이야기해 주다니! 지인은 책 열 권을 주문하였다. 자기 지인들에게 한 권씩 나눠줄 것이라고 했다. 줄 사람 누구누구 다 헤아려 놓았다고 했다. 이렇게 고마울데가. 지인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 달라졌다.


"작가님!"



그렇게 나는 찐 팬을 얻었다. 그래서 조금은 자신감을 갖고 브런치에 서평을 부탁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사실 서평을 부탁한다는 게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글인데 마냥 좋은 평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자칫하면 서평을 쓴 분이 욕을 먹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책 구매를 하셔서 읽으시고 서평을 써주신 분들도 계셨다.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지금은 내게 내세울만한 스토리가 없지만, 지금은 필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언젠가 나에게 그럴듯한 스토리가 생겼을 때, 이번에 POD 출판한 내 소설이 그제서야 뜰 수도 있는 것이다. 왜 있잖은가? 노래에도 역주행이라는 게 있다고.


이렇게 나 스스로 위로해 본다. 해보지도 않고 망설이기보다는 무엇이든 시도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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