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변 산책길에서 만난 그분

그 남자의 횡설수설

by 이은호



요즘 해가 지면 날이 시원해서 산책하기에 좋다. 거기에 바람까지 솔솔 불면 기분까지 상쾌해져 발걸음도 룰루랄라 가벼워진다. 그래서 자주 집 앞 하천변을 어슬렁거린다.


가난한 우리 동네 하천변에 요즘 '공사중'인 곳이 많다. 운동기구도 설치하고 스탠드도 조성하고 인공폭포도 만든다고 공사가 한창이다. 아마도 어디서 여윳돈을 좀 끌어왔는 모양이다. 그동안 허구한 날 모양이 바뀌는 하천 건너편 부자동네를 부러워했었는데, 이제 우리 동네에도 일 좀 하는 일꾼이 나타났나 보다.


그중 가장 빨리 완공된 공사물이 운동시설이었다. 하천변 풀숲을 뒤엎어 조성한 널찍한 터에 제법 많은 운동기구를 구비해 놓았다. 가까이 가보니 어디서 운동깨나 했음직한 젊은 청년 여러 명이 웃통을 훌렁 벗고 울퉁불퉁 알통을 자랑하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실내 헬스장에서도 운동복을 입는데 훤한 야외에서 웃통을 벗다니 참 별일이다 싶었다. 그들은 경쾌한 음악을 틀어놓고 비디오 촬영도 하면서 다양한 동작을 시연하였다. 아마도 인별그램에 올릴 동영상이라도 찍겠지? 애초에 운동기구하고 거리가 먼 나는 우월한 그들에 비해 한없이 초라한 내 몸을 바짝 웅크리고 빠르게 그곳을 지나쳤다.


조금 더 걸어가자 아주머니들이 모여 라인댄스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좀 전에 젊은 청춘들이 틀었던 것과 종류는 다르지만 역시 경쾌한 음악을 틀어놓고, 좌 삼삼, 우 삼삼, 앞으로 두번, 뒤로 한번, 그리고 돌고... 날개 두번 파닥파닥, 앞뒤로 흔들고, 브이자로 크게 벌려 허공에서 흔들고, 다시 날개 접어 파닥파닥... 질서 정연하게 오와 열을 맞추어 율동을 하는 모습을 보며, 아까 청년들처럼 몸매를 좀 더 드러내면 얼마나 보기 좋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쩝...


다음에 나타난 건 스탠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곳이었다. 건너편 부자동네에서 봄이면 봄, 가을이면 가을 축제를 열면서, 민호도 왔다가고 다현이도 왔다가고 다경이도 왔다가는 모습이 한없이 부러웠는데, 이제 우리 동네에도 공연장이 생기는 건가? 에이 아니겠지! 가난한 동네에 무슨... 기껏해야 외로운 무명가수가 버스킹이나 하겠지 싶은 생각이다. 기대를 하지 말자. 실망이 크다.



십여분을 더 걸어서 나타난 다음 풍경은 바로 법륜스님이었다.


'아니 법륜스님께서 이런 하천변에서 설법을 하신다고?'


그것은 아니고, 아주머니 몇 분이 스크린에 빔프로젝터로 법륜스님을 띄워놓고 설법을 듣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 가끔 '신을 믿으십니까?' 하며 전단지를 건네는 젊은 처자를 만나기는 했는데.. 요즘 의외로 신에 심취한 젊은 처자들이 보임.. 대놓고 하천변의 오픈된 공간에서 영상으로 설법을 듣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혹시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와 솔솔 부는 바람에 산사에서의 정취라도 기대하였던 걸까? 아주머니들이 설법을 듣는 하천 바로 건너에는 부산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교회가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법륜스님은 부처님의 말씀을 정말 쉽게 풀어내어 대중들에게 전달하시는 분이시다. 눈에 비치는 스님의 모습은 인자한 쌀집 아저씨 같이 푸근한 인상이다. 한 말을 사면 한 됫박은 더 퍼주실 것만 같다. 그런 스님에게 당장 숨을 못 쉴 것 같은 그 어떤 큰 고민을 들이대어도 안 풀리는 게 없다. 결혼도 안 해보신 분이 어떻게 그렇게 부부간의 내밀한 사정까지 다 헤아리는지, 아이를 낳아서 키워보지도 않으신 분이 어떻게 그렇게 부모자식 간의 갈등에 대해서 해박하게 알고 계시는지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다.


스님의 말씀, '즉문즉설(卽問卽說)'은 말 그대로 정답이 아니다. 즉, '즉문즉답'이 아니고 말씀이다. 대화를 통하여 질문자 스스로 길을 찾도록 하는 게 스님의 주특기이다. 질문자가 고민을 이야기하고, 스님이 질문을 한다. 그렇게 몇 번 오고 가다 보면 질문자가 스스로 해결방안을 줄줄이 다 이야기하고, '네, 감사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하고 물러난다.


내 생각에 스님이 말씀하시는 모든 해결책은 하나로 통하는 것 같다. 바로 '욕심을 버려라!'이다. 부부간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부모자식 간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다 내 욕심 때문이다. 분명히 나와 다른 인격체인데, 상대방을 내 맘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가족 간의 관계에서도 그럴진대 하물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야 말해 뭐 하랴.


쇠에 녹이 슬면 결국 그 쇠 전체를 갉아먹는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에도 녹이 슬면 결국 사람을 잡게 되는데, 그 녹은 바로 '미움'이란 감정이다. 미움이 깊어져 분노가 되고 우울이 되고 결국 자신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그런데 가만히 따지고 보면 미움이 바로 욕심이다. 나의 욕심이 미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삶에서 욕심을 걷어내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때문에 실천 방법이 필요한데, 그중에 최고는 바로 '사랑'이다. 나를 사랑하고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 사랑이란 감정이 결국 내 마음의 녹을 벗겨내고 건강하게 나를 지켜내는 길이 되는 셈이다.


하천변에서 우연히 만난 법륜스님 덕분에 룰루랄라 가볍게 시작한 산책길이 묵직한 사색길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다시 감정을 추슬러야겠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라인댄스 춤을 추던 아주머니 대부분이 들어가고 몇 분만 남아 스텝연습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신규 회원분들이 복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분들은 노래와 춤을 사랑하고, 전 여러분들의 그런 모습을 사랑합니다. '내일은 자신 있게 스텝을 밟으세요, 화이팅!' 나는 눈치 못 채게 작은 동작으로 손을 들어주었다. 다음에 웃통 벗은 젊은이들이 나타났다. 나는 그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니들은 헬스장에 가서 운동해라 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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