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만나도 반가운 친구

사진 한컷

by 이은호



지난 주말 서울에 다녀왔다. 여름 신인상을 받았던 문예지의 연말행사 겸 시상식에 참석하였다. 회사 다닐 때는 거의 매월 찾았던 서울이었는데 오랜만이서인지 많이 낯설고 번잡하였다. 우선 김포공항에서 강남으로 가는 지하철 타는 것부터 그랬다. 급행? 일반? 중간에 갈아타야 하는데? 그래도 옛날 기억을 더듬어 실수 없이 목적지에 도착하기는 하였다. 행사에는 시상식 외에도 시낭송과 색소폰 연주 등 회원분들의 다채로운 공연이 있었다. 워낙 재주가 있으신 분들이 많아서 당초 예정시간인 두 시간이 훌쩍 넘도록 행사가 계속되었다. 공연이 재미있어서 끝까지 있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서울에 온 김에 서울 사는 친구들을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있어서 도중에 행사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약속장소는 행사장 근처의 양곱창집. 걸어서 10여분 걸려 도착하니 아직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곧 한 명씩 도착하여 이내 일행이 다 모였다. 반갑게 악수를 하면서 일단 눈으로 확인을 해보니 모두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일행 중 두 명은 올봄에 부산에 내려와서 보았지만 두 명은 오랜만에 만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엊그제 만났던 사이처럼 전혀 서먹하지가 않았다. 제조 경험이 풍부한 친구 하나가 소맥을 만들어 한잔씩 돌렸다. 그리고 건배. 반갑다 친구야!


이 친구들은 고등학교 동기들이다. 그리고 하나 더.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 한 회사에서 시작한 친구들이다. 고등학교 동창회장님이 운영하는 회사가 있었다. 매년 후배들을 장학생으로 선발하여 입사를 시켰고 장학금을 주며 대학교를 보내주셨다. 그때 그 회사에 같이 입사하여 주경야독을 했던 친구들이다. 채 스무 살이 되기도 전 파릇파릇한 나이에 청춘의 푸른 꿈을 함께 키우고, 때로는 방황도 하고 때로는 고민을 나누기도 했던 사이이다. 사정이 다 비슷하여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았고 또 말 못 하는 사정을 꼬치꼬치 캐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면 하는 대로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그냥 이해했다. 그중 한 명과는 회사 기숙사에서 룸메이트까지 했으니 말해 무엇하랴. 바로 동거했던 사이. 그러다 군대를 갔다 오고 졸업을 하고 흩어졌다. 나는 나의 인생 멘토를 따라 부산에 남았고 다른 친구들은 서울로 올라갔다. 그 시절이 벌써 40년이 흘렀다.


나이가 들어 외모는 변했지만 술 한잔에 우리는 벌써 그때 그 시절로 가 있었다. 뽀송뽀송했던 시절. 그 시절의 이야기가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늦은 밤 수업 마치고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하던 이야기, 회사와 학교에서 스쳤던 남자 여자 사람들 이야기, 서로서로 군대에 면회 갔던 이야기,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사연까지. 한편으로는 힘들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좋은 추억으로 공유하고 있는 그때의 기억들. 친구들 얼굴을 보니 감회가 새로워 내가 한마디 했다.


"우리가 이렇게 건강하고 밝은 얼굴로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은 어디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다 과거의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만들어진 거다. 그때 그 시절이 없었으면 지금 이 자리에 우리가 있겠나?"


"맞다 맞다. 너 작가 되더니 말 잘하네!"


오랜만에 옛 친구들을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너무 많이 웃어서 먹는 족족 소화도 잘 되었다. 그날 밥값은 여전히 회사의 CEO를 하고 있는 친구가 계산하였다. 부산에 내려오면 내가 사겠다고 하니 그때도 자기가 계산한단다. 현역 프리미엄이라고 했다. 현역 프리미엄 좋지. 너는 인생1막을 보내고 있지만 나는 인생2막을 살고 있네. 여전히 젊게 1막을 사는 게 좋은 건지 일찍부터 2막에서 터를 닦고 있는 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각자 사정에 맞추어 열심히 사는 거지 뭐.


시끄러운 식당을 나와 조용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술도 깰 겸 달콤한 카페라테를 마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외국계 회사에서 CEO를 하다 은퇴한 친구가 내년에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할 거라고 했다. '그래 그러면 그때 제주도에서 다시 만나자.'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현역 CEO 친구가 골프장 법인 VIP 회원권을 쓸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리조트도 있단다.


"그래그래, 현역 프리미엄이 최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끓는다 끓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