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나의 것

by 이은호



J기업에서 인사업무를 맡고 있는 김 이사는 중국법인에 출장을 나와 있었다. 이제 마지막 일정으로 최 차장을 만나봐야 했다. 그의 입장은 무엇인지, 잘못했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는 있는지,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후회는 하고 있는지 들어봐야 했다. 김 이사가 최 차장이 근무하고 있는 판매사무소에 들어서자 최 차장 혼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침 퇴근시간이 다 되어서 현지인 직원들을 모두 퇴근시켰다고 하였다. 김 이사는 최 차장이 타주는 커피를 받아 들고 테이블에 둘이 마주 앉았다.


"김 이사님, 저 때문에 이렇게 먼 곳까지 오시게 하여 정말 죄송합니다."


최 차장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표정은 어두웠고 말끝에 약간의 떨림이 있었다. 평상시에는 정말 멀쩡해 보이는 최 차장을 보니 김 이사는 마음이 씁쓸하였다. 김 이사가 입을 열었다.


"최 차장, 본사에서 파견을 나왔으면 더욱 모범을 보여 조심해야 할 텐데 어쩌다 그런 일이 벌어졌죠? 참 딱하네요."


"죄송합니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평소에 최대한 술을 안 마시려고 노력하는데 한 번씩 발동이 걸리면 저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아닌 다른 놈이 되어버리니까요."


김 이사는 최 차장의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장 팀장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최 차장은 그 술버릇 때문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나요? 그래도 중국에 몇 년 있었으니 이곳에 청부살인을 하는 폭력배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죠? 직원들에게 원성을 사거나 술 먹고 시비가 붙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어요."


"예,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런 일이 생겨도 어쩔 수 없죠. 다 제 잘못이니까요."


최 차장은 그냥 남 이야기 하듯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김 이사는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그렇게 말할게 아니고 최 차장 본인도 그렇지만 기대가 큰 부모님이나 사장님 생각도 해야죠. 술버릇은 마음 단단히 먹고 고치면 될 테고."


"후우, 이사님. 술이 제 유일한 돌파구인걸요. 어쩌면 술 취한 모습이 제 본모습인지도 모릅니다. 맨 정신에서는 아버지 인생을 대신 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예? 그게 무슨 말이죠?"


"이왕에 이렇게 된 거 저도 하소연을 해보겠습니다. 변명으로 들리시겠지만 한번 들어봐 주십시오."


최 차장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김 이사는 최 차장이 무슨 말을 하나 싶어서 집중하여 그의 말을 들었다.




최 차장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말을 잘 듣는 얌전한 아이였다. 중견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아버지와 대학교 교수인 어머니 밑에서 외아들로 자란 그는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었고 국영수 개인과외를 받으며 성적도 늘 상위권을 유지하였다. 누가 보아도 흠잡을 데가 없는 착실한 모범생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장차 가업을 물려받을 후계자로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더욱 훌륭하게 성장하도록 조금의 여유도 없이 담금질을 계속하였다. 그의 어머니도 스스로 알아서 하는 아들이 믿음직스러웠다. 그러나 조금만 더 하면 최고의 대학에 갈 수 있겠다는 신념에 유능한 강사를 찾아 아들에게 붙여주었다.


최 차장의 부모는 아들의 생각이 어떤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냥 부모의 뜻대로 좋은 학교를 나와 경영수업을 받고 부모가 정해주는 유력인사의 딸과 결혼하여 가업을 이어받기를 원했다. 그렇게 하는 게 자식의 행복을 보장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사실 최 차장의 아버지도 그렇게 자랐고 그런 과정을 거쳐 결혼을 하고 가업을 물려받았다. 정해진 인생의 세습이었던 것이다. 최 차장의 부모는 그를 국제통상학과에 입학시켰다.


최 차장은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살았다. 어머니가 정해준 일과대로 학교 가고 학원 가고 과외 받고 시간 되면 자고, 자기가 주도적으로 하는 일이 없었다. 딱히 스스로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공부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사귀는 친구도 소수였고 어쩌다 그들과 어울려도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내고 부모가 정해준 대학교에 다녔다.


그러다 그는 한 여자를 알게 되었다. 대학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자였는데 늘 밝은 표정으로 상냥하게 주문을 받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비 오는 어느 날 늦은 시간에 비도 피할 겸 그가 카페에 들어섰을 때 카페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가냘프지만 섬세한 여자의 목소리. 때로는 혼자 읊조리는 듯하다가 때로는 그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듯했다. 높은음이 지나고 호소력 짙은 중저음이 깔릴 때 무언가 그의 심장을 툭 건드렸다. 그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고 그는 노래가 다 끝나도록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어머! 손님이 와계셨네요? 미안합니다."


그녀가 고무장갑을 낀 채로 화장실에서 나오며 그를 보고 말했다. 아마도 마칠 시간이 다되어 손님도 없고 해서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나오는 것 같았다. 카페에는 그와 그녀 둘만 있었고 밖에는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그날 이후 둘이 사귀게 되었다. 그는 평소의 밝고 활달한 성격과 다르게 일단 노래를 시작하면 서정적이면서 가슴에 와닿는 그녀의 목소리가 좋았다. 그녀는 가수 지망생이었다. 작은 도시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는 아버지와 평범한 가정주부 어머니를 둔 그녀는 고향에서 대학교를 다니다 휴학하고 서울로 올라와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낮에는 보컬학원을 다니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며 자신만의 미래를 꿈꾸는 빛나는 청춘이었다.


그는 여태껏 부모가 정해주는 틀 속에 갇혀서 여자친구를 제대로 사귀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자신의 마음을 건드려준 여자를 만나게 되자 너무나 특별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그는 생각했다. 나의 꿈은 무엇일까? 도대체 나에게 꿈이란 게 있기는 한 걸까? 그녀는 자신의 꿈을 꾸며 저렇게 자유롭게 사는데 내가 하는 이 공부는 정말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는 지금까지의 삶에서 그 어떤 의미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냥 아버지의 욕심대로 아버지의 아바타가 되어 살아왔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뭘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렇게 스스로 생각 없이 살아왔었다. 다만 한 가지. 그녀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 소중했고 그저 그녀와 함께 하고 싶었다.


시간이 좀 지나 최 차장의 부모가 아들이 연애를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촉이 좋은 어머니가 변화된 아들의 행동에 의심을 품고 꼬치꼬치 따져 물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털어놓았고 어머니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그녀를 찾아가 당장 헤어지라고 소리쳤다. 쥐뿔도 없는 가난한 집 아이가,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게, 나이도 두 살이나 더 먹은 게 순진한 아들을 꼬셨다고 거의 잡아먹을 듯이 몰아세웠다. 그녀는 눈물을 뚝뚝 떨구며 고개를 숙였다.


남자 친구의 어머니로부터 모진 수모를 당한 그녀는 그 길로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렸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크게 실망하여 정신을 잃도록 술을 퍼마셨다. 자신이 유일하게 애착을 가졌던 여자친구가 떠나버렸다. 그것도 부모 때문에. 그냥 죽고 싶었다. 만취한 그는 종업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주점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결국 파출소로 연행되었고 새벽에 아버지가 와서 집으로 데리고 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와 어머니의 잔소리가 끝없이 이어졌고 그는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그 뒤부터 그는 술에 절어 살았다. 그리고 번번이 사고를 쳤다. 첫발을 잘못 내디딘 술버릇은 고질병이 되어 그를 갉아먹었다.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그의 아버지는 그를 군대에 입대시켰고 세월이 흘렀다. 그나마 군에서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그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듯했지만 술만 마시면 자신도 모르게 괴물로 변하곤 하였다.




"그랬군요. 그 후에 그 여자 친구 소식을 들은 게 있나요?"


"죽었습니다. 군에서 제대하고 한참을 찾았는데 그녀 지인으로부터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고향집에 내려가 밤길을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하더라고요. 다 저 때문입니다."


"아이고 저런! 어찌 그런 일이."


최 차장이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였다. 김 이사는 그런 그의 모습이 한없이 외롭게 보였다.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질 것 다 가진 것 같이 살아왔을 그에게 그런 사연이 숨겨져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는 지금까지도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분명하였다.


"그래 최 차장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지요? 중국법인에 계속 남아있기는 힘들 것 같은데."


"김 이사님께서 돌아가셔서 사장님께 조금도 빼놓지 말고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잘못한 것에 대한 처분은 당연히 받아야지요."


김 이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한마디 할게요. 일단 휴직을 하세요.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게 좋겠어요. 최 차장 정도면 얼마든지 자신의 삶을 바꾸어나갈 수 있을 것 같네요. 그 여자친구를 보세요. 어려운 여건에서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았잖아요? 무엇이든 최 차장이 못할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요."


"네, 한번 생각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이사님. 그래도 이렇게 제 사연을 털어놓으니 속이 시원합니다."


최 차장은 얼룩진 눈가에 미소를 지으며 김 이사를 보고 씩 웃었다.




최 차장과 헤어진 김 이사는 밤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출국 수속을 마친 김 이사는 카페에서 따끈한 카페라테 한잔을 앞에 놓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뚜- 뚜- 신호 끝에 상대방 목소리가 들렸다.


"어, 김 이사! 공항에는 잘 도착했고?"


"잘 도착했네. 이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네. 정 법인장, 내가 자네한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말이야."


"뭔데 그러나?"


"있잖아, 회사 성과도 중요한데 말이야 꼭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네. 직원들을 잘 챙기게. 아무리 성과가 나더라도 직원들의 마음이 떠나고 조직문화가 망가지면, 그게 백사장에 쌓아 올린 모래성과 같아서 파도가 치면 다 쓸려나가고 만단 말일세. 아무쪼록 직원들을 행복하게 해 주게."


"그래 알겠네. 내 명심하지. 잘 들어가고 다음에 또 보세."


김 이사는 통화를 끝내고 게이트를 통과해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이내 비행기는 활주로를 힘차게 달려 날아올랐다. 창문 너머로는 칭다오 시내의 야경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다음 달 해외법인을 포함한 J기업의 모든 사업장에서는 전문가를 초빙하여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예방교육이 실시되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전원 참석토록 하라는 사장님의 엄명이 있었고, 사장님도 제일 앞자리에서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팀장급 이상 간부들에게는 심화교육이 추가되었다.

중국법인에서는 전 직원에게 위로금이 지급되었다. 그해 성과가 좋아서 충분히 지급할 명분이 있었지만 직원들은 그 돈이 무슨 의미인지 다 알았다. 왜냐하면 성희롱 예방교육이 실시된 날 지급되었기 때문이었다.

몇 달 후, 김 이사한테 메일 한통이 날아왔다. 메일에는 최 차장이 수련복을 입고 티베트의 한 사원을 배경으로 셀카로 찍은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최 차장은 일 년간 휴직을 하고 회사를 떠났는데 인도를 거쳐 티베트에 와 있다고 하였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중이라고 하였다.

계속해서 아버지의 아바타로 살든 아니면 자신만의 주도적인 삶을 개척하든 이제 모든 것은 최 차장 자신의 몫이었다. 그러나 김 이사는 믿었다. 그는 충분히 이겨내서 자신의 삶을 찾아낼 것임을.




* 이 글은 특정회사나 특정인물과 관련이 없는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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