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님, 생산팀의 정 과장이 죽었습니다. OO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렸다고 해서 지금 거기로 가는 중입니다."
"예? 뭐라고요? 젊은 사람이 갑자기 왜 죽어요?"
"집에서 쓰러졌다고 하는데, 심장마비랍니다."
"아이고, 저런! 나도 곧 거기로 갈게요."
J기업에서 인사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 이사가 일요일에 집에서 쉬고 있는데, 인사팀에 근무하고 있는 안 과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리고 뜻밖의 소식을 알렸다. 회사 직원의 사망소식이었다. 안 과장과 정 과장은 입사동기로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 그래서 정 과장의 와이프로부터 연락을 받은 안 과장이 회사 총무팀에 알리고 상관인 김 이사에게도 전화를 한 것이었다. 김 이사는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차려입고 급하게 집을 나섰다.
김 이사가 인사업무를 맡고 나서 직원육성의 일환으로 과장급 중견직원들의 순환근무를 기획했었다. 직군별로 몇 개의 부서를 옮겨 근무케 함으로써 업무영역을 넓히고 관리자로 키우고자 했던 것이었다. 물론 연구직이나 기술직 등 한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고자 하는 직원들은 제외하고, 향후 관리자로 성장하기를 희망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조치였다. 거기에 정 과장이 포함되었고 연초 인사발령 때 연구소에서 생산팀으로 근무부서가 바뀌게 되었다. 김 이사가 보기에 정 과장이 능력도 있고 성실한 직원이었기에 근무를 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만 뜻밖의 불행한 소식을 듣고 말았다. 김 이사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빈소에 들어선 김 이사의 눈에 갈색 뿔테안경에 정장차림을 한 정 과장의 영정 사진이 들어왔다. 웃을 듯 말 듯 담담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정 과장의 모습이 김 이사의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아무리 태어나는 건 순서가 있어도 죽는 건 순서가 없다고 하지만, 이렇게 세상을 떠나기에는 정 과장이 너무나 젊었다. 김 이사는 영정 앞에 꿇어앉아 술을 따르고 마침 다 타들어가고 있는 향도 한 개 새로 피웠다. 그리고 정 과장의 명복을 빌며 한참을 엎드려 있다가 일어났다.
정 과장의 아내가 김 이사에게 고개를 숙였다. 퉁퉁 부은 얼굴에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얼마나 충격이 심했을까? 남편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클까? 김 이사는 가슴이 아팠다. 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어야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세 살쯤 되었을까, 사내아이가 정 과장 아내의 검은색 치맛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그러고 보니 그 옆에 할머니로 보이는 분이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있었다. 첫돌도 한참 멀어 보이는 아이. 정 과장은 세 살짜리 아들과 젖먹이 딸을 두고 저세상으로 간 것이었다.
조문객을 대접하는 자리로 물러나온 김 이사는 안 과장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정 과장은 일이 밀려 금요일에 야근을 하고 밤늦은 시간에 퇴근하였다고 했다. 그의 아내는 주말을 맞아 아이들을 데리고 미리 친정에 가있었고, 정 과장은 토요일 아침에 처가에 가기로 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사람이 오지도 않고 전화도 받지 않자, 걱정이 된 정 과장의 아내가 집을 찾았고 쓰러진 그를 발견하였다고 했다. 책상에 엎드린 자세로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고 했다. 바로 119에 연락하여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죽은 사람이 깨어날 수는 없었다. 만일 그가 평소처럼 가족과 함께 있었다면, 혹시 쓰러지더라도 제때에 조치가 이루어졌더라면 살 수 있었을까? 사람의 운명이라는 게 참으로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정 과장은 뚱뚱한 체격에 고혈압이 있었으나 다른 지병은 없었다고 했다. 안 과장 말로는 그가 내성적인 성격에 무척 꼼꼼하고 책임감이 강했다고 했다. 부서를 옮겨 새로 부여받은 생산관리 업무는 연구소 업무와 달리 현장 근로자들과 소통을 해야 하는 자리였다. 즉, 자기만 잘해서는 안되고 현장 작업자들을 잘 다뤄야 했다. 정 과장은 거기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하였다. 새로 맡은 생소한 업무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 거기에 강한 책임감과 내성적인 성격까지 더해져 그가 근무를 하면서 받았던 압박이 상상 이상이었을 것 같았다.
이야기를 들은 김 이사는 마음이 무척 무거워졌다. 괜히 자기가 순환근무 제도를 도입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 과장이 부서를 옮기지 않고 연구소에서 계속 근무했더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듣고 보니 정 과장 적성에 생산관리보다는 연구직이 더 어울릴 것도 같았다.
"내가 실수를 했구나! 직원들 개개인의 업무 적성을 면밀히 파악했어야 했는데..."
아빠의 죽음을 모르는 정 과장의 어린 아들이 장난감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김 이사의 눈에 들어왔다. 엄마 치맛자락에 매달려 칭얼대던 아이를 장난감을 주어 달랜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뛰어다니는 손자를 붙잡아 한쪽 구석자리에 앉히고 과자를 내어 주었다. 아이는 좋아하며 과자를 입에 잔뜩 집어넣었고 옆에서 그런 손자를 지켜보는 할머니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저 아이는 언제쯤 아빠의 죽음을 알게 될까?"
김 이사는 과자를 맛있게 먹고 있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바라보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김 이사는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잃었다. 그의 아버지는 주물공장에서 현장 근로자로 일을 했는데, 일을 마치고 회사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다 쓰러졌다. 뇌출혈이었다. 의식불명 상태에서 일주일을 버티다 숨을 거두었다. 그때는 근로자들에 대한 노동조건이 열악하여 시도 때도 없이 밤늦도록 잔업을 해야 했다. 주 6일 근무에 허구한 날 11시간, 12시간씩 일을 하였다. 그래도 대다수의 아버지들이 일자리가 있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가족들을 돌볼 수 있음에 감사해하였다. 김 이사의 아버지도 그런 아버지들 중 하나였다.
김 이사의 아버지는 회사에서 쓰러졌고 연일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렸음에도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근로감독이나 비용부담 등 불이익을 우려한 회사가 소극적이었고, 김 이사의 어머니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과 장례를 치르는데 경황이 없었다. 게다가 가족 중에서도 그런 쪽으로 일을 봐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김 이사의 어머니는 회사에서 병원 입원비와 장례비의 일부를 부담해 주고 동료들이 십시일반 위로금을 마련해 준 데에 고마워하며 남편의 장례를 마쳤다. 그걸로 끝이었다.
갑작스럽게 가장을 잃은 김 이사네는 큰 혼란에 빠졌다. 당장 두 아들을 데리고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김 이사의 어머니는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평범하게 가정주부로 살던 여자에게 돌아갈 좋은 일자리는 없었다. 김이사의 어머니는 식당 주방일이며 마트 점원일 등 닥치는 대로 매달렸으나, 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과 살아가기에는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이었지만 덕분에 일찍 철이 든 김 이사는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비록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수업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늘 책을 가까이하면서 모자라는 부분을 스스로 보충해 나갔다. 그나마 자식들의 그런 모습이 김 이사 어머니가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도 하였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음인지 그런 김 이사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어준 사람이 있었다. 김 이사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동네 유지가 설립한 장학회에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장학회를 설립한 장 사장이란 분은 부동산 투자로 큰돈을 번 사람이었다. 그 역시 어렵게 자랐고 자신이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한을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것으로 대신하겠다며 장학회를 만들었다. 그가 김 이사네 사정을 알게 되었고, 고등학교 내내 등록금과 대학교 입학금까지 대주었다. 그는 김 이사에게 하늘이 보내준 은인인 셈이었다. 덕분에 김 이사는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고, 힘이 들기는 하였지만 무사히 대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으나 그래도 좋은 이웃들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한 김 이사는 자신도 남을 돕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늘 품고 있었다. 그래서 회사 내에서도 항상 직원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였고, 그들의 편에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다. 사람 간의 따뜻한 정. 그것이 김 이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그는 회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였다. 직원은 월급의 대가로 일을 하고, 회사는 노동의 대가로 돈을 주지만, 그 밑바탕에는 인간존중의 정신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성과를 쌓아 올리는 것. 김 이사는 '어떻게 하면 직원들의 성장과 회사의 성과를 함께 이끌어내나?'가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여겼다.
정 과장은 다행스럽게도 산재 인정을 받았다. 비록 휴일에 집에서 심장마비로 죽었지만, 새로운 업무에 대한 심적 부담과 연속된 잔업에 따른 피로도, 퇴근 이후까지 이어졌던 업무연락 흔적 등이 참고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회사에서 숨김없이 모든 증빙자료들을 제공하여 산재 승인을 도왔다. 김 이사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와 정 과장이 죽었을 때와는 시대 상황이 많이 다르기도 했지만,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젊고 유능한 직원의 어이없는 죽음을 안타까워하였다. 회사 사장님은 장례비용 일체와 장지비용까지 모두 부담하였고 별도의 위로금도 가족에게 전해 주었다. 정 과장 가족이 가장의 죽음으로 크나큰 상실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겠지만, 그래도 남은 가족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경제적인 기반은 마련된 셈이었다.
김 이사는 사장님께 보고를 드리고 인사컨설팅 회사의 도움을 받아 직원들에 대한 업무적성 검사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보직 이동시 이를 참고토록 하였고, 당사자와 충분한 의견 교환을 통하여 직원들이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꼴이었지만 같은 일이 또 일어나면 정말 안될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직원들이 업무적으로나 조직적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겪는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거기에 어떻게 대처하고 풀어나가는지에 대해서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봐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냥 혼자 끙끙 앓는지, 동료나 상사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는지 혹은 인사팀과 상의할 수는 없는지 등등. 김 이사는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인간의 성장을 돕는 것은 건강한 환경이라고 하였다. 김 이사가 비록 아버지를 여의고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사랑하는 어머니와 동생이 있었고 필요할 때 손을 내밀어준 따뜻한 이웃이 있었다. 그래서 김 이사는 제대로 성장할 수 있었다. 회사라는 조직에는 정말 다양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성격도 다르고, 취미나 적성도 다르고, 생각도 다 다르다. 그렇지만 그들 중 누구라도 회사에 불만을 품은 채로 마지못해 하루하루를 보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김 이사는 회사가 직원들의 성장을 돕는 건강한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이 직원들은 물론 결국에는 회사를 위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었다.
* 이 글은 특정회사나 특정인물과 관련이 없는 가상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