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아내가 집을 나갔... 아니 여행을 갔다. 친구들과 그것도 해외로, 나 혼자 놔두고.
화요일 새벽 아내를 공항에 태워다 주고 돌아와 여전히 어두운 집에 혼자 들어서자니 벌써 허전하였다. '사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하더니 딱 그 짝이었다. 앞으로 나흘 동안이나 혼자 집을 지켜야 하는데... 삼시 세끼를 혼자 챙겨 먹어야 하는데...
설 전날 만두를 빚었다. 우리 집은 명절음식을 따로 장만하지 않는다. 그냥 가족들과 먹을만한 음식 한두 가지만 준비할 뿐이다. 그런데 작년 가을에 아들이 결혼하고 나서 며느리와 처음 맞는 설명절이라, 그냥 넘어가기에는 섭섭해서 "우리 오랜만에 만두나 빚을까?" 했더니 모두 좋다고 하였다. 특히 아내가. 그래서 다저녁에 마트에 가서 재료를 사 와 우리 내외와 아들 내외 네 명이서 만두를 빚었다. 만두피는 마트에서 구매하였는데 왕만두피 6통을 샀다. 만두소에는 묵은 김치, 다진 돼지고기, 두부, 계란, 당면, 숙주나물, 쪽파, 부추, 다진 마늘, 후춧가루, 청양고추 등이 들어갔다.
아들 내외는 편하게 쉬도록 하고 아내와 내가 만두소를 만들었다. 만두 빚는 것은 사실 만두소 준비하는 게 거진 다이다. 재료들을 씻고 잘게 자르는 게 여간 번거롭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게 아니다. 처음에는 이걸 언제 다 만드나 싶었는데 그래도 꾹 참고 인고의 칼질을 하였더니 어느샌가 끝이 보였다. 그리고 네 명이서 둘러앉아 만두 빚는 작업 시작.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손이 늘어나니 작업 진도가 쭉쭉 나갔다. 며느리는 만두 빚는 게 처음이라 하면서 재밌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추석에는 송편을 빚잔다. 이제 명절마다 해야 할 일이 생긴 것 같다.
다 쪄낸 만두는 설날 먹을 것을 제외하고, 아내가 먹기 좋게 소분하여 밀폐용기에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몰랐다. 만두를 빚자고 했을 때 흔쾌히 나섰던 아내의 계획을.
아내가 집을 나간... 아니 여행을 떠나고 혼자 집에서 독수공방한 첫날밤. 아내를 바래다준다고 새벽에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분명히 몸은 피곤하고 눈이 감겼는데 막상 불을 끄고 누우니 정신이 말똥말똥, 잡생각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새벽이 다되어서 깜빡 잠들었나 보다.
그리고 다음날 또 시작되는 나홀로 삼시 세끼. 냉장고를 열어보니 만두가 담긴 밀폐용기가 가득했다.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만두나 잡숫고 계세요."
에라, 점심에는 떡만둣국이나 끓여 먹자 싶었다. 처음 끊여보는 건데 뭐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았다. 냉동실에서 만두 꺼내 놓고.. 오기로 내가 만든 만두만 꺼냈다. 그리고 떡국 떡은 물에 담가 놓고. 다싯물 준비하여 물 끓을 때 떡국 떡과 만두 넣고, 계란 풀고, 대파 넣고. 간은 순전히 소금만으로 하였다. 다 끓은 떡만둣국을 대접에 담고, 그 위에 먹다 남은 김 잘라서 올려주고, 후추 조금 뿌리고. 반찬은 배추김치와 파김치 두 가지면 족했다. 뭐혼자 먹는 건데.
내가 끓인 떡만둣국이지만, 나홀로 먹는 떡만둣국이지만, 맛있다. 덴장! 그런데 왠지 서글프다. 아무래도 나이 탓인가 보다. 아내가 오려면 아직 삼일 밤을 더 버텨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