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이름이 '책방온실'인데, 온실이라 하기에는 식물이 턱없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사유는 돈 문제입니다. 처음에 조경 전문가에게 의뢰하였는데,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견적이 들어왔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었죠. 그다음 사유는 관리 문제입니다. 많은 종류의 식물을 주기에 맞추어 물 주고 보살펴야 합니다. 일일이 손이 가야 하는 일이죠. 그랬다간 책방이 먼저인지 온실이 먼저인지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랬죠. 그래서 '일단 꼭 필요한 부분만 먼저 하고 운영하면서 아쉬운 부분을 채워나가자' 하고 딸을 달랬습니다. 그렇게 해서 실내의 작은 화단과 입구 조경만 전문가에게 맡겼습니다.
가오픈을 하고서 둘째 날 가게를 열기 전에 시장을 찾았습니다. 딸이 아무래도 허전한 부분을 조금이라도 채워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우리 딸, 고집이 보통이 아닙니다. 그래도 이번엔 바로 '조화'입니다. 손이 덜 가는 놈들이죠. 딸은 천장에서 내려오는 덩굴식물과 책장에 모양을 낼 작은 화분을 사기로 하였고, 저도같이 따라나섰습니다. 조방 앞 자유시장입니다. 시장에는 정말 다양하고 예쁜 조화들로 넘쳐났습니다. 화사하고 예쁜 꽃들을 보니 그것이 비록 조화라고 해도 기분이 좋아지더군요.비록 남의 여자더라도예쁘게 화장한 미녀를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딸이 심사숙고하여 덩굴식물과 작은 화분 몇 가지를 선정하였고, 높은 곳에서 작업할 사다리까지 구매하여 가게로 돌아왔습니다. 가게의 조화 장식 컨셉은부족한 자금사정이주 요인임에도,
넘치지 않게 조금 모자란 듯.
이라고 동양화의 여백의 미 의미를 갖다 붙이며 스스로 위안삼았습니다.
실내에 조화 장식을 마치고 이번엔 배달된 책 정리에 들어갔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책 없는 책방을 가오픈하였는데, 그다음 날 알라딘에서 책이 배달되었습니다. 열 일곱 상자. 그전에 다른 곳에서 들어온 독립서적은 빼고 말입니다. 딸과 함께 박스를 열고 책을 꺼내 입고리스트에 체크하고 나서, 소설, 에세이, 과학, 예술, 글쓰기 등딸이 나름대로 정해놓은 분류 기준대로 나누어 놓습니다. 그런데 책이 좀 무겁습니까? 시간이 지나니 손목이 아프더군요. 마음 건강을 튼튼하게 해주는 책이 사실은 육체운동도 시켜준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습니다. 택배 기사님을 도와 박스 몇 개를 옮겼는데, 두 박스 들고 계단을 오르니 다리가 휘청거리더군요. 택배 기사님이 박스 세 개를 짊어지고 오르며, "두 개 들지 마세요, 허리 다칩니다."하고 저보고 걱정을 하더군요. 자기는 세 개를 짊어지고서 말이죠. 함께 일하는 아내로 보이는 듯한 여성분이, "자기도 무리하지 마!" 하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데,제가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가게 오픈 준비를 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배달되는 많은 양의 물건들을 보면서, 택배 기사님들 정말 고생이 많으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낍니다. 만일 그분들이 없다면 어떨까요? 으으~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땀 뻘뻘 흘리며 무거운 책 상자를 운반해 주신 택배 기사 부부께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드렸습니다. 덕분에 저도 한잔 마셨습니다. 땀 흘린 뒤에 마시는 아아, 역시 우리나라는 아아가 최곱니다.
"아빠, 그 책은 왼쪽, 그리고 그 책은 그것과 저것 사이에."
조금 높은 선반에 놓일 책을, 높이도 있고 책 무게도 있어서 제가 도와주고 있는데, 딸의 주문이 끊이지를 않습니다. 저는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책을 정리하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다 그 책이 그 책 같았기 때문입니다.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책장 정리가 다 끝났습니다. 이제 책방 분위가 좀 나는 것 같습니다. 노란색 포근한 소파에 앉아 책을 읽으면, 책 내용이 쏙쏙 잘 들어올까요? 아니면 잠이 솔솔 잘 올까요?책장 정리를 완성한 기념으로 사진 몇 장을 찍었습니다. 창밖에서 안쪽을 찍으니 완전 멋있습니다. 흐뭇합니다.
딸과 함께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책 분류기준이 도대체 뭐냐?"
딸이 대답합니다.
"깔맞춤."
헉! 완전 허를 찔렸습니다. 도저히 예상치 못했던 답이었기 때문입니다. 딸은 좌에서 우로 밝은 색깔에서 어두운 색깔로 책 배열을 했던 것입니다. 딸이 말을 이었습니다.
"책 분류를 하고 깔맞춤을 하니 별로네. 책 전체를 깔맞춤 했으면 완전 대박인데."
딸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참고로 딸은 디자인 전공입니다. 저 같은 경영학도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입니다.
고단했지만 보람 있었던 하루가 저물었습니다. 딸과 저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아니 별은 보이지 않는군요, 퇴근하여 집으로 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