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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Jul 02. 2024

책장 책 정렬의 원칙



가게이름이 '책방온실'인데, 온실이라 하기에는 식물이 턱없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사유는 돈 문제입니다. 처음에 조경 전문가에게 의뢰하였는데,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견적이 들어왔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었죠. 그다음 사유는 관리 문제입니다. 많은 종류의 식물을 주기에 맞추어 물 주고 보살펴야 합니다. 일일이 손이 가야 하는 일이죠. 그랬다간 책방이 먼저인지 온실이 먼저인지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랬죠. 그래서 '일단 꼭 필요한 부분만 먼저 하고 운영하면서 아쉬운 부분을 채워나가자' 하고 딸을 달랬습니다. 그렇게 해서 실내의 작은 화단과 입구 조경만 전문가에게 맡겼습니다.


가오픈을 하고서 둘째 날 가게를 열기 전에 시장을 찾았습니다. 딸이 아무래도 허전한 부분을 조금이라도 채워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우리 딸, 고집이 보통이 아닙니다. 그래도 이번엔 바로 '조화'입니다. 손이 덜 가는 놈들이죠. 딸은 천장에서 내려오는 덩굴식물과 책장에 모양을 낼 작은 화분을 사기로 하였고, 저도 같이 따라나섰습니다. 조방 앞 자유시장입니다. 시장에는 정말 다양하고 예쁜 조화들로 넘쳐났습니다. 화사하고 예쁜 꽃들을 보니 그것이 비록 조화라고 해도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비록 남의 여자더라도 예쁘게 화장한 미녀를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딸이 심사숙고하여 덩굴식물과 작은 화분 가지를 선정하였고, 높은 곳에서 작업할 사다리까지 구매하여 가게로 돌아왔습니다. 가게의 조화 장식 컨셉은 부족한 자금사정이 주 요인임에도,


넘치지 않게 조금 모자란 듯.


이라고 동양화의 여백의 미 의미를 갖다 붙이며 스스로 위안 삼았습니다.





실내에 조화 장식을 마치고 이번엔 배달된 책 정리에 들어갔습니다. , 그렇습니다. 책 없는 책방을 가오픈하였는데, 그다음 날 알라딘에서 책이 배달되었습니다. 열 일곱 상자. 그전에 다른 곳에서 들어온 독립서적은 빼고 말입니다. 딸과 함께 박스를 열고 책을 꺼내 입고리스트에 체크하고 나서, 소설, 에세이, 과학, 예술, 글쓰기 등 딸이 나름대로 정해놓은 분류 기준대로 나누어 놓습니다. 그런데 책이 좀 무겁습니까? 시간이 지나니 손목이 아프더군요. 마음 건강을 튼튼하게 주는 책이 사실은 육체운동도 시켜준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습니다. 택배 기사님을 도와 박스 몇 개를 옮겼는데, 두 박스 들고 계단을 오르니 다리가 휘청거리더군요. 택배 기사님이 박스 세 개를 짊어지고 오르며, "두 개 들지 마세요, 허리 다칩니다." 하고 저보고 걱정을 하더군요. 자기는 세 개를 짊어지고서 말이죠. 함께 일하는 아내로 보이는 듯한 여성분이, "자기도 무리하지 마!" 하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데, 제가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가게 오픈 준비를 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배달되는 많은 양의 물건들을 보면서, 택배 기사님들 정말 고생이 많으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낍니다. 만일 그분들이 없다면 어떨까요? 으으~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땀 뻘뻘 흘리며 무거운 책 상자를 운반해 주신 택배 기사 부부께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드렸습니다. 덕분에 저도 한잔 마셨습니다. 땀 흘린 뒤에 마시는 아아, 역시 우리나라는 아아가 최곱니다.



"아빠, 그 책은 왼쪽, 그리고 그 책은 그것과 저것 사이에."


조금 높은 선반에 놓일 책을, 높이도 있고 책 무게도 있어서 제가 도와주고 있는데, 딸의 주문이 끊이지를 않습니다. 저는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책을 정리하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다 그 책이 그 책 같았기 때문입니다.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책장 정리가 다 끝났습니다. 이제 책방 분위가 좀 나는 것 같습니다. 노란색 포근한 소파에 앉아 책을 읽으면, 책 내용이 쏙쏙 잘 들어올까요? 아니면 잠이 솔솔 올까요? 책장 정리를 완성한 기념으로 사진 몇 장을 찍었습니다. 창밖에서 안쪽을 찍으니 완전 멋있습니다. 흐뭇합니다.




딸과 함께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책 분류기준이 도대체 뭐냐?"


딸이 대답합니다.


"깔맞춤."


헉! 완전 허를 찔렸습니다. 도저히 예상치 못했던 답이었기 때문입니다. 딸은 좌에서 우로 밝은 색깔에서 어두운 색깔로 책 배열을 했던 것입니다. 딸이 말을 이었습니다.


"책 분류를 하고 깔맞춤을 하니 별로네. 책 전체를 깔맞춤 했으면 완전 대박인데."


딸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참고로 딸은 디자인 전공입니다. 저 같은 경영학도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입니다.


고단했지만 보람 있었던 하루가 저물었습니다. 딸과 저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아니 별은 보이지 않는군요, 퇴근하여 집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있을까요?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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