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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Sep 13. 2024

카페에서 손님이 반성문 쓴 사연



가게에서 일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연들이 생겨납니다. 오시는 손님들이 다 좋은 분들이어서 아직 얼굴 붉히거나 마음이 언짢은 일은 없었습니다. 반면에 기분 좋고 흐뭇한 사연들이 많았죠. 오늘은 어린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문을 연지 얼마되지 않아 인근 초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 둘이 방문하였습니다. '구경해도 돼요?' 하더군요. 당연히 된다고 하였죠. 이것저것 살펴보고 나서 다락방에 올라가더니 '우와!' 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빈백에 누워보기도 하고 바닥에 뒹굴뒹굴 굴러보기도 하면서 놀다 갔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왔습니다. 역시 다락방에 올라가 놀다 갔는데, 그냥 가기 미안했는지 삼백 원짜리 연필 한 자루씩을 사가지고 가더군요. 그러면서 미안해하는 표정이 어찌나 귀엽던지요. 그 뒤로도 두 여학생은 몇 번 더 방문하여 다락방에서 뒹굴다 갔습니다.



지난달에는 저희 북카페에 학생들이 적잖게 찾아왔습니다. 책방이라고 해도 학생들 참고서나 교재 같은 게 없고, 중학생이 읽기에는 다소 어려운 책들만 있는데 의외인 상황이었습니다. 학생들이 두세 명씩 왔는데, 먼저 카운터로 와서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더군요. 당연히 된다고 하였습니다. 학생들은 이곳저곳을 구경하 책도 찍고, 식물도 찍고, 곳곳에 숨어 있는 토토로 인형들도 찍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책 한 권씩을 사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학생 몇몇이 가게를 찾아 사진을 찍고 책을 사거나 음료를 주문해서 마시고 갔습니다. 개중에는 저도 읽기 힘들어하는 '총균쇠'나 '종의 기원'같은 책을 고른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계속되자 도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물었더니 근처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인데, 국어선생님께서 내주신 방학숙제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서점을 찾아 책 읽는 모습을 vlog로 찍어서 제출하라고 하였답니다. '아하, 그렇구나.'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이 남았습니다. 하고 많은 서점 중에 왜 하필 저희 가게를 찾았느냐는 것이죠. 다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을까요. 글쎄 선생님께서 저희 가게를 추천하셨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에 가게를 방문했는데 좋았다고 하더라면서요. 저나 딸은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다시 방문하면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 텐데 말이죠.


선생님께서 학생들 교육을 바르게 시켜서인지, 학생들이 가게에 오면 꼭 먼저 카운터로 와서 사진 찍어도 되냐고 허락을 받았습니다. 개중에는 구입한 책을 읽다가 가는 학생도 있었는데, 아무쪼록 학생들이 서점에 자주 들러 책과 친해지는 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마도 선생님께서도 서점이 참고서나 구입하 삭막한 곳이 아니고, 저희 가게처럼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는 곳도 있다는 걸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덕분에 한동안 중학생 손님을 받아서 음료며 책을 팔았습니다. 북카페를 하는 입장에서 미래의 고객이 될 수도 있는 우리 학생들이 책에 관심을 갖고 열혈 독서가로 거듭나면 좋겠습니다.



저희 가게의 다락방은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는데, 시간이 비었을 때는 예약 손님이 오실 때까지 일반 손님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여학생 둘이 방문하여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락방을 사용하였죠. 시간이 흘러 예약 손님이 도착하였고, 다락방에 있는 여학생들에게 테이블석으로 옮겨달라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잠시 후 다락방에서 나오는 계단에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라서 가보니 커피를 계단에 쏟았더군요. 컵이며 얼음이며 바닥에 나뒹굴고 커피물이 흥건하였습니다. 게다가 흰색 벽에 커피물이 다 튀어서 얼룩이 지고 엉망이었습니다. 난감하더군요. 그렇다고 손님에게 화를 낼 수도 없어 괜찮다고 안심시키고, 휴지와 걸레를 들고 와 뒷정리를 하였습니다. 바닥에 흘린 물은 다 닦아냈는데, 벽에 튄 얼룩은 전혀 지워지지가 않더군요. 그대로 커피 얼룩으로 염색이 되고 말았습니다.


몇 번을 죄송하다고 사과를 한 여학생들은 테이블석에 앉아서도 풀이 푹 죽어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좋은 말로 괜찮다고 하며 뒷정리를 하였지만, 그 모습을 보는 여학생들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 모습이 딱해 보여서 뒷정리를 마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새로 내려서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정리 다 끝났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있다가 가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여학생들이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를 하더군요. 뭐 커피 두 잔이 별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렇게 일단락되었고 딸과 저는 손님들 응대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 시간쯤 지난 후 여학생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빈컵을 반납하며 슬그머니 쪽지를 내밀었습니다. 여학생들이 가고 난 후 쪽지를 읽어보았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쓰여있더군요.


<여름방학 숙제를 위해  열심히 책을 찾던 중 친구의 추천으로 저희의 더위를 무찌르기 위해  왔는데 이런 귀한 곳에 사고만 치고 간 것 같아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 이곳은 저희의  추억이 담겨 있고 정말 위로가 되는 아늑하고 '사장님이 좋으신 곳'으로 기억할게요.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다음에 올 때는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찾아오겠습니다. 더위 조심하시고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하하하. 웃음이 나왔습니다. 글을 읽으며 여학생들이 얼마나 이쁘게 생각되던지요. 딸에게 제가 말했습니다. '학생들이 반성문 써놓고 갔네.' 딸도 읽으며 웃음을 짓더군요. 그렇게 해서 졸지에 손님에게 반성문 받는 가게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학생들이 설마 학교에서 반성문을 자주 썼던 건 아니겠지요? 아무튼 학생들이 어디에서건 작은 실수에 주눅 들지 말고 씩씩하게 자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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