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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Jul 12. 2024

오후도 서점 이야기

그 남자의 횡설수설



가게에 출근하여 에스프레소 머신 세팅을 마치고 따끈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따끈한 아메리카노는 모든 커피의 기본이기 때문에 날이 덥더라도 꼭 진지하게 맛을 봐야 한다. 은은한 커피 향과 함께 커피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넘어가며 잠자 세포를 깨운다.


"이제 일어나라고. 활기차게 움직일 시간이야!"



점심때쯤 지인들이 왔다. 분홍색 꽃이 활짝 핀 란을 안고서. 얼른 받아 들고 편안한 소파 자리로 안내했다. 사회에서 사귄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정이 많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다. 다들 형님 동생하며 지낸다. 주문한 음료와 내가 구운 파운드케이크며 쵸코마들렌도 함께 내놓다.


"형부, 앞치마가 너무 잘 어울려요."


예쁜 동생의 칭찬 한마디에 괜히 우쭐해지고 설거지하는 손에 힘이 팍팍 들어간다. 지인들이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지만, 가게 점원은 바쁘다. 사장님 눈치도 봐야 한다. 어정쩡하게 서서 묻는 말에 답하고 나서 더 바쁜 척 왔다 갔다 한다.



한 시간여 있다가 지인들이 가고, 딸과 교대로 늦은 점심을 먹는다. 맨날 찾아 먹어야 하는 점심 식사도 보통 번거로운 게 아니다. 그래서 가끔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때우기도 한다. 옥상에 설치된 평상에서 먹는 김밥과 라면이 별미다. 가느다랗게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파라솔이 거진 막아주고, 해가 없으니 날도 덥지 않고, 흐릿한 풍경이 나름 운치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랜 세월 '빨리빨리'에 익숙해진 본능에 따라, 머리가 아닌 반사중추의 반응에 의한 젓가락질과 구강운동은 능숙하게 음식물을 허기진 배로 쓸어 담는다. 결국 오분만에 식사 끝.



손님이 뜸한 시간, 늦은 점심을 급하게 먹고 나니 슬슬 눈이 감긴다. 그렇다고 잘 수는 없는 일. 책이나  싶어 고 있는 책을 다시 편다. 제목은 '오후도 서점 이야기'. 무라야마 사키가 지은 일본 소설이다. 오래전에 사두었는데 이제야 읽는다.




시골 마을의 작은 서점과 도시의 오래된 서점. 책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잔잔한 이야기. 도시의 오래된 백화점 내 긴가도 서점에서 일하는 잇세이는 숨은 명작을 찾아내는 '보물찾기 대마왕'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서점에서 책을 홈치려던 소년을 발견해  뒤쫓았는데, 도망가던 소년이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다. 그 사건에 대한 비난이 잇세이와 서점에 쏟아지면서 그는 결국 일을 그만둔다.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잇세이는 산골짜기의 벚꽃으로 뒤덮인 작은 마을 사쿠라노마치로 향한다. 글벗이 운영하는 서점 오후도를 찾아 나선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아픈 자신을 대신해 서점을 지켜달라는 글벗의 간절한 부탁을 받는다. 그 무렵 긴가도 서점 사람들은 잇세이가 찾아낸 보물 '4월의 물고기'의 진가를 알게 된다. 그래서 책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동료 직원들, 작가 그리고 출판사 직원까지 합심하여 작은 기적을 꿈꾼다.  과연 잇세이는 오후도 서점을 지켜낼 수 있을까? 그리고 '4월의 물고기'의 기적은 일어날까?





"I C."


나이가 들었나? 에어컨 바람이 센가? 책을 읽는데 자꾸 눈물이 난다. 비쩍 마른 고양이 한 마리,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어린 남자아이 그리고 아픈 기억과 상처를 갖고 있는 주인공 잇세이. 그를 둘러싼 마음 따뜻한 사람들. 작은 사연들이 가슴을 적신다. 서점 이야기라서 더욱 마음에 와닿는 걸까? 읽는 동안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다.


"하, 나도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정말 부럽다."

 


책의 마지막 줄을 읽고 책장을 덮는다. 촉촉해진 눈가에서 또로록 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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