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일 마치고 시내버스 타고 가는 퇴근길. 평소의 한적함과 달리 그날따라 승객들이 많이 탑승하였고 좌석이 거의 찼다. 그리고 내 옆자리에는 두꺼운 화장으로 나잇대가 분간하기 어려운 여성이 앉았다. 옷차림으로 보아 어리지도 그렇다고 아주 나이 들어 보이지도 않는, 삼십 대에서 오십 대까지로 폭넓게 짐작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짙은 화장도, 분간할 수 없는 나잇대도 아니었다. 솔솔 풍겨오는 향수 냄새. 그리고 그 냄새가 점점 더 강하게 콧속을 파고들었다.
마스크를 꼈음에도 소용없었다. '엣취!' 냄새가 어찌나 강했던지, 아니 어찌나 지독했던지 콧물이 주룩 흘렀다. 그리고 이어서 머리가 지끈, 편두통이 오면서 속까지 울렁거렸다. 아아, 이건 아닌데. 평소 특별한 알레르기 증상이 없던 나였는데, 그 냄새는 달랐다. 그야말로 비상사태였다. 군에서 화생방 훈련 때 가스실에 들어갔을 때만큼이나 견디기가 힘들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숨을 참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 정류소에서 내려야 했다. 내리면서 괘씸한 마음에 그 여자를 살짝 째려주는 걸로 소심한 복수를 하였다.
버스에서 내리니 차가운 공기가 어찌나 반갑던지, 몇 번이나 크게 심호흡하며 울렁이는 속을 달랬다. 그리고 정확히 13분을 기다려 다음 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갈아타고 가면서 그 여성이 그렇게 화장을 짙게 하고, 고약할 정도의 향수를 풍기고 다니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보았다. 나름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기 위한 '과시용' 일까, 아님 이성의 이목을 끌기 위한 '유인용' 일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보기에는 타인의 접근을 막으려는 '퇴치용'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접근금지'.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까지 독한 냄새를 풍길리가 없지 않을까 싶었다.
향기 또는 향수라는 뜻의 'Perfume'은 '연기를 통하여'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약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와 고대 이집트의 종교의식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신에게 제사 지내거나 몸을 정화하는 용도로 향기로운 나무를 태우거나 향유를 바른 것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이후 14세기 헝가리 왕비의 '헝가리 워터'로 현대적 향수의 형태를 갖추었고, 17세기 프랑스에서 가죽 악취 제거를 위한 필수품으로 산업화되었으며, 19세기에 화학 합성향료가 개발되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고, 이후 오늘날 여성들이 찾는 대중적인 뷰티 아이템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종교의식에서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서 출발한 향수가 타인의 접근을 막는 퇴치용으로까지 그 용도가 발전했다고 할까.
최고급 향수에 사용되는 천연원료 중 하나가 용연향이라고 한다. 용연향은 오직 수컷 향유고래의 몸에서만 만들어지는데, 수컷이 번식기에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몸싸움 때문에 소화력이 약해져 위속에 남게 된 찌꺼기라고 한다. 고래가 결국 소화시키지 못하고 토해낸 걸 사람들이 가져다 향수원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수컷 고래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사랑의 괴로움이 최고의 향수가 되어 여성의 몸에 뿌려져 수컷을 유혹하는 데 사용되는 셈이다.
과유불급. 이러한 향수도 과도하게 사용하면 해롭다. 잠시만의 노출로도 타인을 쫓을 정돈데 자신의 몸에 발라 늘 그 냄새를 맡는다면? 향수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정도에 따라 건강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호흡기와 피부를 자극하고 알레르기, 천식, 암을 유발하며, 내분비 면역계를 교란하고 신경독성으로 간, 신장, 뇌를 손상하고 두통, 우울증을 유발한다고 한다. 내가 버스에서 냄새를 맡고 보였던 콧물, 두통, 울렁거림 등 신체반응은 지극히 정상이었던 셈이다.
나이 들면서 남자도 냄새에 민감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것은 향수와 같이 인위적인 냄새가 아니라 내 몸에서 나는 냄새이다. 바로 '노인 냄새'. 가끔 버스에서 옆자리 또는 앞자리에 앉은 어르신에게서 은근하게 냄새가 풍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 또한 견디기가 괴롭다. 어찌 보면 그것도 '퇴치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히 나에게서도 그런 냄새가 날 수 있다. 이 노인 냄새는 주로 노화과정에서 생성되는 특정 물질과 신체기능의 변화로 인해 발생한다고 한다.
40대 이후 피부에서 불포화 지방산이 산화되면서 '노넨알데하이드'라는 물질이 생성되는데, 나이가 들수록 배출량이 늘어나고 모공을 막아 독특한 냄새를 풍긴다고 한다. 그리고 신진대사의 저하로 피부의 자정작용이 약해지고, 노폐물 배출이 원활하지 않아 냄새가 오래 머문다고 한다. 또한 수분부족에 따른 피부건조로 각질이 쌓이면서 더욱 복합적인 냄새로 발전한다고 한다.
노인 냄새의 해결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몸의 컨디션을 좋게 유지하는 것과 청결. 충분한 수분 섭취로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적당한 운동으로 땀을 통한 노폐물 배출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세정력이 좋은 바디워시로 겨드랑이, 귀 뒤, 사타구니, 발가락 사이 등을 꼼꼼히 씻는다. 아울러 몸에서 묻어난 노넨알데하이드가 옷과 이불에 배기 쉬우므로, 옷을 자주 갈아입고 침구류를 햇볕에 소독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게 출근하면서 삼일 연속 같은 웃옷을 입었더니 사장님이 한 말씀한다. '아빠, 그 옷 며칠째 입는 거고? 냄새난다.' 그 말에 가슴이 뜨끔하였다. '헉, 내게도 노인 냄새가 난단 말인가!' 싶었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하는데, 아무튼 주의해야 되지 싶었다. 그날 집에 가서 깨끗하게 목욕재계하고 옷을 새것으로 싹 갈아입고 이부자리도 바꾸었다. 용연향의 최고급 향수로 이성을 유혹하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노인 냄새는 풍기지 말아야겠다.
냄새 없는 남자. 이성을 유혹하는 향기도 좋지만 나이 들어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무향의 남자도 괜찮지 않을까. 그나저나 당신의 향기는 유인용인가요, 퇴치용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