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K의 부고를 들은 건 내가 베트남 공장에서 일할 때였다. 신설공장에서 매일매일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아내로부터 연락이 왔다. K가 죽었다고, 그것도 자살했다고. 그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위기를 넘기고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찌 그런 일이.
아이고, 친구야. 조금 더 견디지. 조금만 더 참지. 어쩌자고 그렇게 가냐?
그날 K가 계속 생각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당장 비행기 타고 날아가 그의 빈소를 지키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다만 아내에게 대신 조문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으로 친구를 허무하게 떠나보내야 했다. 저녁식사는 하는 둥 마는 둥 소주만 연거푸 들이켰다. 짜르르 울리던 속이 마비되었는지 감각이 무뎌지고 호흡이 거칠어졌지만, 오히려 K의 모습이 더욱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쳤다.
K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시중은행에 들어갔고, 거기서 짝을 만나 결혼하였다. 딸 둘을 낳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남부럽지 않게 사는 듯하였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고,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였다. 안정적인 직장에 사랑하는 가족이 그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 주었고, 그는 성실하게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였다.
K와 더불어 고등학교 때 친했던 동창들과 부부동반 모임을 하였다. B, H, J, S 또 다른 K 등 나를 포함하여 모두 일곱 명. 다들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였고, 고만고만하게 자식을 낳았다. 매달 돌아가면서 집에서 모였는데, 부부에 아이들까지 하나 둘 늘어나면서 그 규모가 점점 커져갔다. 한방에 어린아이들 재워 놓고 남자들은 밤새워 고스톱과 훌라를 치고 바둑을 두기도 하였고, 여자들은 이런저런 수다 삼매경에 빠지기도 하였다. 워낙 학교 다닐 때 친했던 데다 크게 잘 살거나 크게 못 사는 친구도 없어 모임은 순탄하게 이어졌다.
그들 중에 유독 겨루기를 즐기는 둘이 있었다. H와 J였는데, 평소 괜찮다가도 딱 하나 민감한 주제가 나오면 서로 양보할 줄 모르고 팽팽하게 맞섰다. 그건 바로 각자가 존경하는 정치인이었다. 한 명은 김대중 선생님을, 다른 한 명은 김영삼 선생님을 흠모하였다.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던 두 분. 결코 우열을 가리기가 힘든 분들인데, 굳이 J와 H가 나서서 대리전을 치렀다. 입으로 상대방을 깎아내리려고 기를 쓰다 결국에는 씨름으로 정하자, 레슬링으로 정하자 하며 육탄전을 불사하기도 하였다. 상황이 심각해져 옆에 다른 친구들이 뜯어말리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우리는 친구아이가!' 하며 화해하고 한잔 술로 우정을 재확인하는 걸로 결론을 맺었다.
그것 말고는 불협화음이 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지던 모임이 엉뚱한 데에서 틀어지고 말았다. 주류회사에 다니던 H가 퇴직하고 술집을 차렸다. 주류회사의 영업직으로 근무하며 주류 유통과 술집의 생리를 완벽하게 파악했다는 그는 사업 성공을 자신하였다. 유흥가에 제법 큰 술집을 임차하여 실내 리모델링을 마치고 화려하게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장사가 잘되는 듯하였다. H가 사회생활하며 쌓은 인맥과 특유의 사교성으로 손님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IMF 경제위기의 험난한 파고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IMF 경제위기는 나라 경제를 초토화시켰다. 더불어 H의 사업도 망했다. 그냥 초반에 말아먹었으면 그나마 나았을 것을, H는 사업을 살린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였다. 그리고 급기야는 나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였다. 제2금융권에 돈을 빌리는데 보증을 서 달라는 것이었다. 친구가 어려움에 처했는데 외면하기가 힘들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주는 게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였다. 보증인이 두 명 필요하다고 하였다. 다른 친구들은 자격이 되지 못하였고, 나와 은행에 다니는 K가 보증을 서서 대출을 받았다. 그러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경제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H는 부도를 내고 잠적하였고, H가 받은 대출금은 나와 K의 몫이 되고 말았다.
독촉장이 날아오고, 고금리의 연체료가 쌓이기 시작하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갚지 않을 수가 없었다. H가 갚아야 하는 대출금을 K와 내가 절반씩 갚기로 하고, K가 근무하는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았다. 그리고 그 돈으로 H의 대출금을 대신 갚았다. 누가 그랬던가. 친구사이에 돈거래를 하면 돈 잃고 친구 잃는다고. 역시 그 말이 맞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H가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는 소득도 있었다고 할까. 결론적으로 나와 K는 각각 중형차 한 대 정도의 돈을 날려 먹었다. 날려먹은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도 괘씸한 건, H로부터 단 한 번도 미안하다는 사과조차 받지 못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잠적했던 H가 다시 나타나 다른 친구들과 함께 만남을 가졌다. 이미 지난 일. 나도 과거를 들먹이지는 않았지만, 그는 너무도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자기 빚을 친구에게 떠넘긴 사실을 다 잊은듯하였다. 나와 K는 전혀 잊지 못하였는데 말이다. 그는 자신의 지난 행적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으며 술잔을 쭉쭉 비우고 고기를 주워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화가 치밀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였다. 더 이상 그를 보기가 싫었다. 그래서 결정하였다. 손절하기로. 그걸로 H와의 인연은 끝났다.
그 무렵 K에게 또 다른 힘든 일이 닥쳤다. 직장 상사의 괴롭힘이었다. 정기인사 때 여자 상사가 새로 왔는데, 업무적으로 자신을 너무 괴롭힌다는 것이었다. 승진에 필요한 업적을 자신이 직접 올리는 대신 밑에 직원들에게 할당해 놓고 사흘이 멀다 하고 진도 체크를 한다고 하였다. 여신, 수신, 카드가입, 보험상품 등. 한 명씩 불러 놓고 조곤조곤 따지는데 미치겠다고 하였다. 게다가 K가 바로 밑의 실무 과장이다 보니 거의 매일 불려 가 시달린다고 하였다. K의 할당량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의 몫까지. 차라리 같은 남자였으면 작정하고 한번 들이받던지 아니면 술 한잔 하며 화끈하게 풀기라도 하겠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매일매일이 숨 막히는 연속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K는 만날 때마다 한숨을 푹푹 쉬며 힘들어하였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K로부터 좋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건강검진에서 위암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사십 대 초반의 젊은 나이인데. 암이라니, 그것도 상당히 진전되었다니. 정말 뜻밖이었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K는 위 절제수술을 받고 이어서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렇게 고비를 넘기는가 싶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한 이 년쯤 후인가 암이 재발하였고 여러 장기에 전이되었다고 하였다. 그 소식까지 듣고는 K와의 연락이 끊겼다. 그로부터 연락도 없었고, 나도 차마 연락하지 못하였다. 안 좋은 소식을 들을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일 년쯤 지났을까. K가 궁금하여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는 것은 죽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이고, 그렇다면 혹시? 용기를 내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 뚜- 신호음이 가고, 초조한 마음이 극에 달할 즈음. '그래, 은호야!' 익숙하면서도 K 특유의 활기찬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이고, 다행이다. 살았구나. 살아주었구나!'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결코 오늘내일 어떻게 될 상태는 아니었던 것이다. K는 전이된 부분까지 치료를 다 마쳤다고 하였다. 그리고 얼마 전에 복직하여 다시 출근한다고 하였다. 회사에서 배려해 주어, 영업점이 아닌 지역본부의 심사부서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 기쁜 소식을 듣고 당장 만나자고, 얼굴 한번 보자고 하였다. 그리고 주말에 아내와 함께 K의 집을 찾았다.
K가 건강을 되찾은 데에는 K의 아내의 내조가 절대적이었다. 위 전체를 절제하여 소화기능에 문제가 있는 남편을 위하여, 몸에 좋다는 곡물을 구입하여 직접 씻고 말려 가루를 내어 선식을 만들어 먹였다. 유기농 채소와 과일 등 영양분과 면역력을 고려하여 식재료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다. 그와 더불어 짜증을 자주 내고 체력이 떨어지는 K의 컨디션 유지를 위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직접 손잡고 뒷산에 올라 맑은 공기도 마시고 마음가짐도 밝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그간의 경과를 듣고 또 눈으로 확인하면서 K가 건강을 지키며 잘 살 수 있을 거라 확신하였다. 그렇게 안심하고 헤어져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그런데... 그 친구가 죽었다. 자살을 하였다. 집 화장실에서 목을 매었다고 하였다. 그런 결심을 하고 행동에 옮기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가 그 친구 마음의 십 분의 일, 백 분의 일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아내와 아이들에게 가장으로서의 든든한 역할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굉장히 괴로워했다고 하였다. 작은 일에도 짜증 내고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하는 무기력한 모습. 누구보다도 자존심 강하고 열심히 살아왔던 K 스스로가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좌절의 순간에서 남들에게 더 이상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고, 특히 더 이상 가족의 짐이 될 수 없다는 고민을 하였을 K. 그의 고민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친구로서 뭔가 도움을 줄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나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살았던 나였다. 그래서 친구의 죽음에 안타까움이 더 했다.
지금도 가끔 K가 생각날 때면, 그때 내가 적극적으로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