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비가 흐르던 날들(상)

by 이은호


우리 집에 제일 높은 곳 조그만 다락방 넓고 큰 방도 있지만 난 그곳이 좋아요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논두렁밭두렁의 다락방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논밭 사이로 길게 뻗은 신작로를 따라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낮에는 한여름의 뜨거운 볕 아래 생육작용에 힘썼을 작물들이, 밤이 되자 어둠 속에서 숨 고르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대신 바통을 이어받은 개구리들이 시끄럽게 울어댔다. 여기서 개굴개굴, 저기서 개굴개굴. 사방에서 서라운드 스피커로 울어대는 개구리들이 얼마나 시끄럽던지 노랫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카세트의 볼륨을 높여야 했다. 그러면 개구리들도 이에 질세라 더욱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놈들은 낯선 이들을 경계하는 겁 많은 존재. 사람 발자국 소리와 자기네들에게는 이질적으로 들렸을 음악 소리가 가까워지자 울음을 뚝 그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낯선 존재와 소음이 자기네들에게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채 멀어져 가는 걸 확인한 후, 놈들은 더욱 시끄럽게 떼창을 였다. 우리가 가는 길 저 앞으로 개구리들의 떼창, 우리 발소리와 노랫소리 그리고 지나온 길 뒤로 다시 이어지는 개구리들의 떼창. 마치 서로 경연이라도 벌이듯 주고받는 장단 속에 지나온 길은 점점 길어지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그만큼 짧아졌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여름방학을 맞아 집이 시골인 C의 집에 놀러 갔다. 학교 비상소집일에 만나 우연히 성사된 즉흥적인 여행이었다. C는 부산으로 유학 와 학교에 다녔다. 직장에 다니는 큰 누나 그리고 대학생인 형과 함께 방 두 칸짜리 전셋집에 살았다. 우리 집은 방 두 칸짜리 월세에 여섯 식구가 사는데, 그에 비하면 C는 부잣집 아들인 셈이었다. C는 얌전하고 착실한 편이었으며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다. 그러나 하필이면 같은 동네에 사는 바람에 그와 가끔 어울렸다. 그의 집에서 누나가 해주는 밥도 얻어먹고, 함께 시험공부를 하기도 하였다. C의 부모는 시골에서 소 키우고 농사짓는 전형적인 농부였다. 그러나 부농이라서 여유가 있었음인지 아니면 자식농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음인지, 자식들을 일찍이 도시로 보내서 공부시켰다. C의 말에 의하면 자기들 덕분에 해마다 소 한 마리 또는 한 뙈기가 줄어들기는 한다고 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허락을 받고 차비를 얻어 C와 함께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한참을 기다려 버스에 올랐고, 거진 두 시간을 달려 해가 막 서산으로 넘어가고 나서 그의 고향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거기서 그의 고향집까지는 다시 걸어서 한 시간. 택시가 있었으나 주머니 사정이 얄팍한 학생신분이었던 데다가 왠지 시골길을 걸어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해 떨어진 여름의 시골은 전혀 덥지 않았고, 때마침 시원하게 부는 바람이 걸어갈 용기를 부추겼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우리는 시골길을 걸었고, 바람결에 고개를 갸웃하는 벼와 무척이나 시끄러운 개구리들의 떼창과 만났다.


우리가 만난 건 그게 다가 아니었다. 밤하늘에 별이 있었다. 어둠이 더해갈수록 하나둘 그 수가 늘어가더니 어느새 밤하늘을 가득 덮었다. 그러고는 반짝반짝 스스로를 또렷하게 밝혔다. 도심에 살 때에는 그 존재조차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는데, 시골의 밤하늘에 뜬 그들은 달랐다. 공기도 맑았을뿐더러, 주변에 시야를 가리거나 분산시킬만한 방해물이 없는 상황에서 마주한 별들은 그 하나하나가 너무나 선명하였다. '하늘에 저렇게 별이 많았던가?' 그들은 특별한 존재가 되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우리가 걷는 도중에 나타난 별들은 친구 C의 고향집에 도착할 때까지 길동무가 되어주었다.


C의 부모님은 아들 친구들을 반갑게 맞아 주셨다. 객지로 떠나보낸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왔으니, 잘 지내고 있음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는지도 몰랐다. 진수성찬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제법 푸짐한 저녁상이 차려졌다. 안 그래도 쇠라도 씹어 먹을 나이에, 한참을 버스 타고 걷고 했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고봉으로 담아주시는 밥그릇을 싹 비웠다. 그 모습을 본 아주머니께서 숭늉이라며 눌은밥이 잔뜩 담긴 대접을 내오셨다. 소화가 잘 된다며 많이 먹으라고 하셨다. 숭늉 대접을 다 비우고 배 두드리며 물러나니, 이번에는 따끈따끈한 찐 옥수수를 광주리에 담아 내오셨다. 배가 터질 것 같았지만 어딘가 사이사이에 틈이 있었는지, 커다란 옥수수 하나가 뱃속으로 순간이동 하였다.


충분한 포만감과 푸근한 시골집의 정취를 느끼며 C와 함께 마당에 있는 평상에 누웠다. 외양간에는 어미소와 아직은 덜 자란 새끼소가 늦은 여물을 먹고 있고, 피워 놓은 모깃불에선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며 벌레들의 비행을 방해하고 있고. 느리게 흐르는 풍경과 거슬리지 않는 소음과 은근한 시골 냄새에 취해 슬며시 눈이 감기며 기억이 끊긴다 싶은 순간, 얼굴에 날아든 이물질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화들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잡아뗀 손엔 하늘소 한 마리가 들려있었다. 모깃불의 교란작전에 방향을 잃고 비상착륙이라도 했던 것일까. 놈은 갑작스러운 구속에 얇은 다리를 버둥거리며 벗어나려고 기를 썼다. '에잇!' 나는 녀석을 하늘을 향해 내던졌다. 졸지에 강한 추진력을 얻은 녀석은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이 촘촘하게 박힌 밤하늘이 있었다.


밤하늘. 하늘소 덕분에 밤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별. 별. 별.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신작로를 걸을 때 하나하나 나타나 밤길에 동행했던 별들, 친구집에 도착할 때 마중 나와 준 별들 그리고 우리 마을에 누가 왔나 하고 모여든 별들까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별들이 머리 위에 있었다. 그 별이 그 별 같은 와중에 유난히 밝은 것도 있었다. 별이름이 궁금해졌다. 머리를 굴려 지리시간에 배운 짧은 지식을 끄집어내어 보았다. 별비가 되어 흐르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견우성과 직녀성이 보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카시오페이아, 북두칠성 그리고 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이번에는 밝은 별들 중심으로 그 수를 세어보았다. 하나, 둘, 셋... 스물하나, 스물둘, 스물셋... 쉰하나, 쉰둘... 머리가 핑핑 돌고 눈앞이 흐려졌다. 그리고 양쪽 눈가로 뭔가가 흘러내렸다.


어렸을 때 살았던 달동네. 거기도 밤하늘엔 분명히 별이 있었다. 하지만 유심히 본 기억이 없었다. 그때는 고개들 일이 별로 없었으니까. 밤이 싫었다. 걸핏하면 어머니가 심부름을 시켰는데 꼭 밤에 시켰다. 가로등도 없는 시커먼 골목길. 골목 사이로 바삐 걸었고, 뭔가 기척이 느껴지면 무서움에 바짝 웅크리고 뛰었다. 귀신이 나타나 목덜미를 확 낚아챌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한가하게 밤하늘의 별이나 셀 여유는 애당초 없었다. 그런데 친구 C의 고향집 마당 평상에 누워서 보는 밤하늘은 완전히 달랐다. 금실로 수놓은 이불이 포근하게 감싸주는 것 같았다. 별들이 내뿜은 빛이 따뜻한 온기가 되어 내 몸에 와닿았다. 너무도 편안하고 안온한 기운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 것이었다. '뭐 하냐?' C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분위기를 깼다. '뭐 하긴, 눈에 벌레가 들어갔지.' 쑥스러운 생각에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넌 참 좋겠다. 어려서부터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자라서.' C가 말없이 씩 웃었다.


그날 이후로 난 밤이 좋았다. 특히 별이 잘 보이는 맑은 밤이 좋았다. 비록 도심의 대기가 맑은 밤을 순순히 내어 주지는 않았지만, 희뿌옇게 흐려진 대기를 뚫고서 하나둘씩 빛나는 별이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끔 정말 맑은 날에는 별들이 앞다투어 반짝반짝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사는 게 힘들더라도, 때로는 앞날이 안갯속이더라도 우리를 믿고 따라와. 우리가 널 지켜줄게.' 밤하늘의 별들이 그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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