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하)

by 이은호


둘째 형은 공부벌레였다. 늘 책을 옆에 두고 공부하는 게 취미이자 특기이자 일상생활인 사람. 학자가 되었으면 딱 어울렸을 텐데, 가정형편상 그게 허락되지 않았다. 내 어린 시절 기억하는 형의 모습은 다락방에서 작은 밥상 앞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다. 여름에는 런닝에 반바지 차림으로 땀 흘리며, 겨울에는 추위에 코가 빨개져 콧물 흘리며 이불 뒤집어쓰고. 웅크리고 앉아 웅얼웅얼 책을 읽었다. 형은 아예 책을 통째로 외웠다. 사법고시에 뜻이 있었던 형은 그 두꺼운 법전조차도 통째로 외웠다. 그러나 집안 형편은 형이 가만히 앉아 공부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노름에 눈이 먼 아버지는 끝없이 사고를 치고, 허구한 날 찾아오는 빚쟁이들, 생활고에 시달리다 부부싸움 끝에 어머니가 가출하는 절망 같은 나날의 연속. 그런 환경에서 무슨 공부를 할 수 있었으랴.


국민학교를 졸업한 형은 신생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였다. 당초에 부모님은 형을 중학교에 보낼 뜻이 없었다. 물론 돈도 없었다. 그러나 공부 잘하는 자식이 장학생으로 입학하는 것은 말릴 수 없었다. 그러고는 전혀 뒷바라지를 하지 않고 방치하였다. 학비만 면제된다고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결국 형은 학교를 채 마치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이후로 형은 다락방에 자리를 잡았고, 군에 입대할 때까지 웬만해서는 나오지 않았다.


군에 다녀온 형은 붓과 페인트통을 들었다. 현실의 높은 벽을 깨달은 형은 책과 펜을 내려놓고 페인트공이 되어 건축공사장에 나갔다. 백면서생인 형이 의외로 붓질을 잘했다. 일거리가 끊이지 않았고, 본인도 만족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형은 진짜로 거기서 만족하지는 않았다. 다시 책을 들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책으로만 공부하는 것이 아닌, 이를테면 문무를 겸비한 분야로 눈을 돌렸다. 바로 자격증 취득. 자격증 취득하는 게 형의 취미가 되었다. 운전면허는 물론 지게차 굴삭기 대형버스 면허, 차량정비에 검사까지. 한 번씩 형을 만날 때면 이번에 무슨 자격증을 땄다며 직접 보여주곤 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둘째 형도 외국에 근로자로 나갔다. 한때는 큰형 둘째 형 셋째 형 모두 외국에 나가 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고 나서 차례로 돌아왔다. 둘째 형은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검정고시로 따고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서울시 기술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였다. 형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게 시험에 합격하는 거와 자격증 따는 것 같았다. 형은 서울시 차량정비사업소를 거쳐 상수도사업소에서 근무하였다. 가압장을 관리하는 업무를 하였는데, 업무가 대부분 전산화되어 있어 사무실에 앉아 화면을 모니터링하면서 경우에 따라 적절히 조치하면 되었다.


형은 여유시간과 퇴근 후 집에서의 많은 시간을 책과 함께 하였다. 더불어 자격증에 대한 도전도 계속되었다. 법학을 전공한 사람이 정보처리기사 자격을 취득하였고, 전공자도 한 번에 붙기 힘들다는 전기기사 자격까지 취득하였다. 특히 전기기사 자격은 회사 업무를 보는데도 필요했지만, 퇴직 후에도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형은 단지 책 보고 자격증 따는 데에만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늘 업무개선에 힘썼고, 아이디어를 내어 제안서를 제출하였다. 급기야는 제안왕으로 선발되어 서울시장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그런 성실하고 모범적인 근무 성적이 반영되어, 형은 정년퇴직 후에도 전에 근무하던 사업장에서 매년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형님 말로는 몇 년 더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부모의 뒷바라지가 한창 필요한 때에 전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던 둘째 형. 그러나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직장 생활하며 당당하게 살고 있는 형이어서 마음이 든든하다. 얼마 전 형과 통화하였을 때, 불면증으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이 들어 멜라토닌 분비량도 떨어지고 잠 못 드는 게 당연하지. 그래서 일찍 자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밤늦도록 책 읽는다고 잠잘 시간을 놓치니 점점 힘들어질 밖에. 아무쪼록 형이 이제는 책을 좀 멀리하고 건강을 더 챙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구보다 건강했던 셋째 형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지 일 년이 훌쩍 넘었다. 그러나 여전히 문득문득 생각날 때면 마음 한편이 짜르르 저려 온다. 세 명의 형 중 나와 가장 가까웠던 셋째 형. 내게는 누구보다도 든든한 형이었고, 때로는 친구 같은 다정한 형이기도 하였다. 셋째 형에 대해서는 함께했던 기간이 길었던 만큼 사연이 정말 많다. 그러나 기억을 떠올리며 글로 옮기는 게 여전히 힘들다.


형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 옛날에 형들에게 받았던 편지를 꺼내 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발견한 셋째 형의 편지. 눈에 익은 형의 글씨체를 확인하는 순간 눈앞이 흐려졌다. 그리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결국 글을 쓰지 못하고 편지를 다시 서랍에 넣었다. 그 후로 두 달간 글쓰기를 멈춰야 했다.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방전된 마음의 배터리를 잔뜩 충전하고 왔지만, 여전히 셋째 형은 힘들다. 형에 대한 세세한 기억을 들춰내면 상처가 다시 터질 것 같다. 그래서 셋째 형에 대한 회상은 묻어두고, 에 올렸던 글로 이야기를 대신하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 가족여행을 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때는 하루하루 먹고사느라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였다. 세월이 흘러 사정이 나아졌음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각자 식구들 부양하며 바쁘게 사느라고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었다. 겨우 명절 때 큰형집에서 얼굴이나 보다가,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는 일 년에 한 번 보기도 힘들어졌다. 그러다 셋째 형이 먼 길을 떠났다. 이제 형제가 모두 함께하는 여행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지인들과 부부동반 골프여행은 잘도 다니면서 형들과 여행 한번 가는 건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후회스럽다. 큰형이 이제 일흔 중반. 빠르게 흐르는 세월 속에 누구에게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형들과의 여행. 더 늦기 전에 두 분 형님 그리고 형수님들과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와야 할 텐데...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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