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함에서 꺼낸 오래전 이야기, 앙코르와트에서~
언젠가 씨엠립 여행을 다녀온 후 친구에게 보냈던 이야기를 메일함에서 꺼내어 보았다.
지금까지 여행을 하면서 그중 대부분이 내 눈과 입과 마음을 호사시키고 부러움에 멍하니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엔 어쩐지 좀 힘들었던 것 같아. 열두 시간씩 비행기를 타던 적에도 견딜만했는데 겨우 대 여섯 시간의 비행에도 몸이 비틀리기도 했던 걸 보면 나이 탓일 거란 생각도 한다. 그러나 다녀온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도 꼭 한 번 더 그곳을 가야 할 것만 같은 조바심이 생기는 건 무슨 이유일까. 자꾸만 생각나..
각국 이방인들로 북적이던 앙코르왓의 문화유산을 돌아보면서 누군가의 땀이 이 엄청난 건축물들을 이루어 냈는지 생각하게 되고, 아름다운 유물들을 지켜내지 못한 안타까움에 그 흔적들을 열심히 눈여겨보아 주었다.
너무나 느리던 영화 화면처럼 느릿하게 걷기엔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쁘더라. 크메르 왕국의 비밀로 남은 앙코르왓의 돌 틈 사이에 숨어 들어간 양조위의 쪽지처럼 무엇을 묻어두지도 못했고, 슬로우 모션의 화양연화처럼 느릿느릿한 걸음이지도 못했다.
가끔 더위와 고단함에 지쳐, 또는 천년의 크메르 제국의 역사에 혼미해져 그 돌무더기에 앉아 가만히 쉬곤 했다. 아들아이는 아예 하늘을 향해 한참을 누워 무수한 그 세월들을 받아들이는 것 같기도 했고. 사원 골목을 걸으면서도 난 문득문득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곤 했단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수 십 년을 거슬러 온 것 같으면서도 내가 언제 저런 세월을 살았던가 하면서 도무지 그만치 낙후했던 시간들이 떠올려지지 않아서 난감하기도 했고, 아마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어서가 아닐지.
얼핏 바라만 보아도 수 십 년, 아니 간단히 수 백 년이 넘어가는 나무들과 복잡함 없는 눈빛의 착한 사람들이 지금도 생각난다. 어디선가 읽었던 빈곤지수 1~5 위의 그 사람들에게 행복지수 역시 모두 5위 안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이번 여행에서 나름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안타까움일까 봐 내 마음을 경계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때 묻지 않은 모습에서 그 걱정은 간단히 날려버렸다. 어쨌든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천진하고 맑은 눈동자는 바라보는 여행자조차 순하게 만들어주었다. '원달러'를 수없이 외치던 어린아이부터 '언니'라 부르며 기념품 들고 따라오던 어른들까지.
이미 다 커 버린 아들아이들과 모두 함께 앞으로 또 여행하기 쉽지 않을 듯해서 편안한 선진국형 여행을 할까 싶기도 했었지만 이곳을 택한 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결론이다.
흙먼지 날리는 돌무더기 위를 걷고 또 걷다 보니 내 발이 내내 비명이었다. 그리하여 밤엔 우리 집 남자들 모두 이끌고 그곳의 발마사지도 경험시켰고, 동남아 음식 한 상 시켜서 먹었다가 다음 날엔 한국식당에서 매운 연기 풀풀 날리며 삼겹살 숯불구이랑 얼큰한 김치 콩나물국밥으로 힘들어진 입맛을 상쇄시키기도 했다.
사실 난 수더분한 입맛이어서 지금까지 어딜 가든 먹는 것엔 문제가 없었는데 참 이상했다. 동남아 음식 특유의 향이 적응하기 어려웠다. 생각해 보건대 우리들은 한국음식과 서양 음식의 비중으로 많이 먹어온 것 같다. 서양식 계통의 식사는 그런대로 며칠은 먹고살 수 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음식 적응이 되지 않는 예기치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 아침엔 호텔에서 간단히 해결하지만 그 외엔 한국음식점 찾아다니느라 두리번거렸다. 무지하게 저렴했던 과일들은 지금도 아른거린다.
수백 년의 시간을 기억하는 사원, 그 사원의 나무 위에서 들려오던 새소리, 갖가지 열대과일들, 조잡한 기념품들, 까무잡잡한 피부와 순하고 까만 눈망울의 사람들, 먼지 날리던 길, 건기라 하지만 뜨거웠던 햇볕... 거길 다시 기봐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