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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Jul 22. 2018

한 여름의 조용한 휴식, 담양

초록의 숲에 가다. 담양 죽녹원. 관방제림. 메타세콰이어. 소쇄원








담양을 생각하면 누구라도 대나무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죽녹원과 메타셰과이어길,관방제림,소쇄원.식영정,송강정 등의 볼거리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어서 가끔씩 찾아가 머물고 싶은 곳이다.


산과 바다를 주로 찾는 여름휴가 중에 짧은 휴가라면 피서 겸 하루 이틀쯤 쉬다 올만하다. 그렇지만 에어컨이 빵빵한 차를 타고 달렸어도, 대숲이 시원하다 해도, 여름은 여름, 참 덥기도 했다. 더운 여름의 담양, 폭염 속의 잊지 못할 하루였다.

*
서울에서 새벽 6시 출발해서 4시간 내외쯤 걸린다. 도로 사정 등에 따라 약간의 시간 차가 있을 것이다. 이날은 죽녹원- 관방제림- 메타셰콰이어길- 소쇄원 노선의 일정이다. 중간에 점심식사, 그리고 카페에서 더위 식히며 놀기도 했다. 주로 대숲이나 오래된 나무 숲에서만 노닐던 여름날 하루였다.





이상하다. 작년 이맘때도 담양엘 갔었다. 굳이 계절 따라 찾아갈 곳을 고르진 않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 이 무더위에 또 그곳을 가게 된 것이다. 여름에 선뜻 찾아갈 만한 곳인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유가 떠오르진 않지만 아무튼 이번에도 거길 향해 떠난 것은 새벽 6시였다. 서 너 시간을 냅다 달려 여름 볕이 사정없이 쏟아지는 죽녹원 앞에 멈췄다.


무더위 속에도 이미 사람들이 대숲길 산책을 하고 사진을 찍거나 정자 마루나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일반적인 축구장의 40배 넓이의 대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이온과 상큼한 공기 속에서 쉬는 일은 이 지역 사람들의 행복이고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의 즐거움이다. 죽녹원 대숲 안에 미술관이 있어서 전시회도 하고 있었다. 무더위 속에 이런 대숲을 찾아 나오는 사람들이 누굴까 생각했지만 의외로 대숲 그늘은 그런대로 시원하다. 그런 그늘로만 찾아서 다니느라 마음껏 요리조리 렌즈를 맞추는 일은 뒷전이다. 그리고 길치인 나로서는 혼자서 다른 산책로를 찾아다니는 일은 길을 잃을까 겁나는 일이다. 적당히 시간 때우기 식으로 한두 시간 어슬렁거리다 내려왔다.  


언젠가 주택에 살게 되면 뒤뜰에 대나무를 심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때 수묵화를 배울 때 사군자 중에서 유난히 대나무 그리는 것이 내 마음에 들었던 적이 있고 대나무 관련 문양을 마음에 들어했던 생각도 난다. 그리고 바람 불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운치 있고 곧게 자라면서도 푸른빛을 늘 유지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주택에 사는 일이 도대체 언제쯤 가능키나 할는지.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 중에서 대나무를 읊은 시나 한 수 옮겨본다.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것이, 곧게 자라기는 누가 시켰으며,
또 속은 어찌하여 비어 있는가?
저렇고도 사철 늘 푸르니, 나는 그것을  좋아하노라.


죽녹원에서 이어지는 길 중에서 빠뜨리면 안 될 멋진 길이 있다.  

담양 관방제림(潭陽 官防堤林)은 조선시대 홍수를 막기 위해 만든 강둑이다. 약 2Km에 달하는 길에 수백 년을 살아낸 나무들이 풍치림을 이루고 있어서 그 길을 걷는 마음을 편안하고 아늑하게 해주는 맛이 특별하다. 산림청이 주최한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길이듯 멋스러움이 특별하다.


우리에게 잊힌 듯한 강둑이란 낱말이 정겨운 그 둑길엔 수백 년생 나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군데군데 나무들이 제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노화하고 틀어진 방향을 철근으로 단단히 받치는 장치의 도움을 받으며 제 몫을 하고 있다. 세월이 주는 아름다움은 노후한 모습에서 더 보여준다. 그 아름다움으로 1991년 11월 27일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되었다.


이 부근에서 나고 자란 함께 걷던 이쁜 친구가 말한다. 울 엄마가 걸었던 길이고 내가 걷고 이젠 내 아이와 걷는 길이라며 그 오랜 역사를 몸으로 느끼는 아련한 눈빛이다. 내게도 이런 유년의 강둑이 있었나 생각해 보기도 하면서 퍽 마음에 드는 길을 한참 걸어보았다.


둑방길 가로수 그늘을 따라 걸으며 유유히 흐르는 천변 풍경을 내려다보는 여유를 누려본다. 죽녹원에서 관방제림에 이르는 거리 안엔 담양읍을 가로지르는 담양천과 마을 시장이 있고 둑엔 푸조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이팝나무 등이 숲을 이룬다. 두어 시간 여정의 힐링벨트엔 자전거를 탈 수 있고 주변엔 잔디밭도 넓어 축구도 하고 이 지역 주민들의 휴식과 쉼터가 되어주고 데이트 코스이기도 하며 여행자들에겐 여유의 시간을 준다.

 

     

관방제림에서 메타길 쪽으로 내려오면 설화가 있는 조각공원과 함께 근사한 창고형 찻집을 볼 수 있다.

- 담빛예술창고

원래는 예전엔 양곡창고였었는데 이제는 용도가 복합 문화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창고를 리모델링하여 천정이 높은 복층의 카페로 개조하였는데 북카페처럼 도서가 꽂혀있는 서가와 대나무로 만든 파이프오르간이 전시품처럼 설치되어 있다. 연주하는 시간이 따로 있다 하니 들어보고 싶으면 미리 확인해 보아야 한다.

창고 다른 쪽으로 전시공간이 있는데 내가 갔을 때는 마침 <또 다른 사진의 관계성>이라는 사진전을 하고 있어서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담양 여행 중이라면 오래 묵은 창고의 놀라운 변신을 꼭 찾아볼 일이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걸어 나오면 누구나 잘 아는 유명한 메타세콰이어 길이 있다. 좋은 사람과 손잡고 걸어도 보고 사진 촬영도 하면서 멋진 길 위에서 놀아볼 수도 있으니 가볍게 들러보면 좋다.



이렇게 죽녹원과 관방제림을 둘러보고 담빛예술창고에서 전시도 보고 아이스커피도 마시며 노닐다가 멋진 메타세콰이어 길을 걸어보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멀지 않은 곳에 소쇄원이 있다. 아니, 빠뜨리지 말고 꼭 들러볼 소쇄원이다.


아주 오래전 어린 두 아들의 손에 유홍준 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들고 남도 일대를 여행하던 적에 들렀던 소쇄원을 그때 이후 처음으로 다시 가 보는 길이다. 참으로 오랜만의 발걸음이다. 여전히 그 자리에 건재하고 있는 소쇄원은 나처럼 나이 먹어가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나이 먹은 기와랑 기둥과 마루, 나무들이 내 눈이 젊을 때 보았던 모습이랑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어린 아들이 저 마루에 걸터앉아 사진도 찍었었는데 그 마루엔 세월의 흔적이 오후 햇살에 먼지와 함께 올라앉아 있다. 그러나 보길도 부용동과 백운동 별서정원, 그리고 담양의 소쇄원이 호남의 3대 정원이라 했듯이 고요하고 운치 있는 한적함의 매력이 여행자의 마음을 빼앗는다.



담양은 가사문학의 산실이기도 하고 깊고 그윽한 풍경으로 영화나 CF촬영지로도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대숲의 바람과 운치를 즐기며 대통밥이나 떡갈비의 맛을 보고 곳곳의 멋스러운 곳을 찾아보며 오감만족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더구나 일단 한 번 찾으면 주변의 명소를 한 번에 돌아볼 수 있는 생활권의 아담한 도시여서 마음이 내킬 때 하루쯤 훌쩍 떠나볼 수 있는 곳이다. 숨겨놓고 가끔씩 혼자서 찾아와 한적하게 즐겨보는 맛을 얻을 수 있는 담양이다.  











추가 사진으로 조금 더 보기~

죽림욕 산책로 8길이 있고,

이이남미디어아트센터(미술관),

정자 7동, 쉼터 5동, 한옥카페 2개소, 한옥체험장이 있다.


061-380-2680

전남 담양군 담양읍 죽녹원로 119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남산리에 있는 수해 방지용 숲.

관방제림(官防堤林)

여름 피서철에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걷기 열풍에 걸맞게 죽녹원부터 걷는다면 수목 아래서 걷는 맛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담빛예술창고는 죽녹원과 관방제림과 메타셰콰이어길의 구색에 맞는 예술창고다. 차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고 연주를 들을 수 있고 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멋진 공간이다.


전남 담양군 담양읍 객사 7길 37. 061-380-2812



계절에 따른 메타세콰이어 길을 즐길 수 있는 곳,

가을이나 겨울의 길도 특별한 멋이 있다.


전남 담양군 담양읍 학동리 578-4



담양 소쇄원[潭陽瀟灑園]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 123. 사적 제304호. 조선시대

계곡과 사적의 어우러짐이 운치 있다.


전남 담양군 남면 소쇄원길 17

061-381-0115




담양은 떡갈비나 대통밥(또는 죽통밥)의 식사를 할 수 있고

프로방스의 베이커리의 마늘빵이 교황께서 먹었다 해서 교황빵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라고 한다.

맛난 것도 먹고 고적한 풍경 속에도 잠겨보며 하루쯤 쉴 수 있는 곳으로 담양이 어떨지.



죽녹원 서원 벽화마을


오뉴월의 보리 서리

차영섭


오뉴월은 우리에게 한 많은 설움이었다
허기 져 보릿고개가 얼마나 넘기 힘들었던지
이제 보리밭 풍경도 종달새 울음소리도 볼 수 없다

긴 겨울의 강을 건너서 봄 들녘에 선 보리들
지금쯤 파란 옷을 벗고 누런 옷으로 갈아입고 있겠지
그때 친구들과 작은 성냥갑을 지니고 휘파람을 불며

마른 나뭇가지며 풀을 모아 불 지피고
보리를 꺾어 구우면 모락모락 연기 기둥이 솟는다
우리는 빙 둘러앉아 눈물을 흘리며 보리 서리를 한다

불에 탄 보리를 주워서 두 손바닥으로 비비면
손바닥이 뜨거워 후후 불며 껍질을 벗기고
익은 보리를 한 입에 넣어 먹으면 그 맛이 끝내주었다

입과 얼굴은 까맣고 손바닥은 익어서 누렇고
뉘엿뉘엿 해가 서산을 넘어가면 어둠을 따라 집으로 왔으니,
서로를 보고 서로를 웃던 그 추억이 바로 어제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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