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반야사. 문수전. 월류봉. 한천정사. 도마령. 민주지산 휴양림
반야사(般若寺) 가는 길에 도마령을 지난다. 영동의 황간에서 전북 무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해발 800미터에서 내려다보는 도마령은 가을이 완연하다. 구불거리는 길을 내려다보니 겹겹의 산너울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조금씩 뿌리던 비가 반야사(般若寺)에 도착했을 땐 우산 없인 나설 수 없을 만큼 쏟아진다. 우비를 입고 일주문을 지나니 길 옆의 석천 계곡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무수한 파문을 만든다. 계곡은 넓은 폭으로 흐르고 있어서 마치 강으로 흘러가는 물줄기 같다.
비 내리는 경내를 걷는 기분을 오랜만에 맛본다. 반야사 뒤편엔 호랑이 형상을 품고 있는 백화산이 절 바로 가까이에서 사찰을 보호하듯 둘러싸고 있다.
배롱나무 두 그루가 양 옆에 있는 대웅전 앞의 삼층석탑은 고려시대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한다. 백제계와 신라계 석탑의 양식을 절충해 건립된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한다.
템플스테이 방을 지나며 아담하고 고요한 반야사에서 며칠쯤 묵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긴 요즘따라 사찰에 들면 늘 하는 생각이긴 하다. 내 안에 가라앉혀야 할 것들이 많은 모양이다.
대웅전과 극락전을 지나 석천을 끼고 낙엽이 쌓인 오솔길을 따라가면 세조 임금이 목욕을 했다는 곳이 나온다. 비는 점점 더 세차게 내리고 빗길이 편치 않아 이젠 내려갈까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더 올라가면 문수전이 있다. 예서 말수는 없잖은가. 깎아지른 가파른 절벽을 숨차게 올라가니 조망이 일품이다. 절벽 아래로 펼쳐진 비바람 속의 풍광을 굽어보며 잠시 숨을 고르며 산하를 바라본다. 다시 빗길을 조심조심 내려온다. 우비를 입었어도 머리가 다 젖고 카메라 렌즈에 습기가 찼다. 홈빡 젖은 트레킹 후의 개운함과 심란함을 모두 즐겁게 마무리하기로 한다.
차에 올라타고 다시 조금 더 달려 월류봉에 들렀다.
출사 길에 몇 번 와 본 곳이지만 이번엔 바로 옆의 한천정사(寒泉精舍)라는 곳을 처음으로 가 본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한때 은거하던 누각이다. 툇마루에 앉아 잠깐 쉬며 월류봉의 가을을 바라본다. 이 아름다운 절경 앞에서 시를 짓고 글을 가르쳤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눈 앞의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 풍경 속에서 한참을 쉬다가 다시 차를 타고 달린다. 여전히 가을비는 내리고 있었다.
반야사 일주문을 지나고
석천계곡은 계속 이어진다.
삼층석탑을 호위하듯 서 있는 양 옆의 배롱나무에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템플스테이 방은 활짝 열려있고,
손잡이를 잡으면 바로 열 수 있도록 문고리가 지나가는 나를 향했고,
사립문도 열려있다.
비에 흠뻑 젖어가는 사찰은 고요하고.
계곡의 반영도 차분하다.
헥헥거리며 간신히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찾아간 문수전은 내게 멋진 풍경을 제공한다.
월류봉
김윤탁
깎아지른 절벽산
물 맑은 초강천(草江川)에
달이 잠긴다.
휘감아 흐르는 물
초승달을 안고
만월의 꿈을 꾼다.
동이 트기 전
샛바람 달과 별 이고
월류봉을 넘는다.
*
*
월류봉(月留峯)
‘달이 머물다 가는 봉우리’라는 이름처럼
달맞이 명소로 이름 높다.
우암 송시열의 한천정사
툇마루에 그분이 앉았을듯한 각도로 이리저리 앉아본다.
눈 앞의 풍광이 역시 시 한수 나올 법하다.
기왕 훌쩍 떠났으면 하루쯤 머물고 싶을 때가 있다. 산세 좋은 곳에서 건강한 힐링을 할 수 있는 휴양림은 어떨까. 빗소리를 들으면 잠들었다가 잠을 깬 새벽의 개운함과 상쾌함을 즐겨보았다. 영동 민주지산 휴양림은 지금 가을 속에 푹 파묻혀 있다.
그리고...
온 세상이 가을이다.
가을 산사(山寺)
ㅡ 이 원 문
이 산 오르며 차이는 돌뿌리들
흐르는 세월이 계절에만 있겠는가
여기 이 돌 드러나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었나
패여나간 자리 생명의 싹 시들고
검은 바위 세월의 때 그 시간을 알려준다
오색단풍 나뭇잎 맺은 열매의 끝 맺음
오르는 길 방초잎마다 시들지 않은 것이 없고
찾은 산사 앞 뒤뜰 서늘히 고요하다
들리는 물소리 내려보는 산새들
물소리 듣는 산새 무엇을 배우나
법당 안 거미줄 시간 잡아 매달고
들리는 풍경 소리 그 시간 모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