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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Sep 25. 2016

초가을의 평사리 들판

들로 나가 ~









밤을 달려 이른 아침에 도착한 평사리 들판은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패션의 환영객이 우릴 맞이한다. 
논두렁에 세워진 무수한 허수아비들.
(최참판댁을 찾는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농사와 전통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려는 의미로 500여 점이 넘는다는 말.)


비에 젖어 촉촉이 서 있는 부부송의 자태,
황금들판을 기다리는 건가.

비까지 내려주는 상쾌한 아침 기온이 너무나 신선해서 썩 좋았던 날.
다만 카메라가 젖어 들어 불편한 것만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
*
*


평사리 들판 ( 무딤 이들 )
협곡을 헤쳐 흐르던 섬진강이 들판을 만들어 사람을 부르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촌락을 이루고 문화를 만들어냈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가 이곳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그 기둥을 세운 이유 3가지 중 첫 번째가 이곳 평사리들이다. 만석지기 두엇은 능히 낼만한 이 넉넉한 들판이 있어 3대에 걸친 막 석지기 사대부 집안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모태가 되었다.
생전 박경리 선생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로 세 가지를 얘기하셨는데 그중 하나가 '마른논에 물들어가는 소리'였다.
그렇듯 이 넉넉한 들판은 모든 생명을 거두고 자신이 키워낸 쌀과 보리로 뭇 생명들의 끈을 이어준다.
섬진강 오백 리 물길 중 가장 너른 들을 자랑하는 평사리들(무딤 이들)은 83만여 평에 달한다. 
- 이런 친절한 안내판이 있었다. -



1897년의 한가위.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인사도 하기 전에 무색옷에 댕기 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어른들은 해가 중천에서 좀 기울어질 무렵이래야, 차례를 지내야 했고 성묘를 해야 했고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다 보면 한나절은 넘는다. 이때부터 타작마당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들뜨기 시작하고―남정네 노인들보다 아낙들의 채비는 아무래도 더디어지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식구들 시중에 음식 간수를 끝내어도 제 자신의 치장이 남아 있었으니까. 이 바람에 고개가 무거운 벼이삭이 황금빛 물결을 이루는 들판에서는 마음 놓은 새 떼들이 모여들어 풍성한 향연을 벌인다.
“후우이이― 요놈의 새 떼들아!”            
 -토지의 첫 부분에서




누런 가을 들판의 풍경도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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