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프랑스 절벽 위의 아름다운 중세마을 Eze Village
그날따라 아침부터 하늘이 눈부시게 새파랗다. 숙소 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 역시 짙푸르다. 어쩐지 하루의 예감이 좋다. 가벼운 헝겊 가방에 머플러와 500리터 물 한 병 넣어서 호텔을 나섰다.
해변가에는 반바지 차림으로 조깅하는 사람들이 내 옆을 휙휙 지나간다. 모래밭으로 내려가 아침 햇볕을 정면으로 맞아들이면 남불의 여행을 피부로 실감할 수 있다. 선탠을 하거나 알콩달콩 연애 중인 이들 옆을 지나가며 나도 너그럽게 행복해진다. 니스의 해변을 즐기는 일은 이렇게 틈틈이 해야 한다. 그게 새벽이든 한낮이든 밤바다이든 언제든 바라볼 수 있고 다가갈 수 있어서 어찌나 뿌듯한지.
에즈행 버스를 타기 위해서 먼저 트램으로 여섯 정거장을 가야 한다. 여섯 정거장 거리의 트램 안은 벌써 사람들로 꽉 차서 꼼짝달싹 못하고 서있다가 Vauban역에서 내렸다. 그런 데다가 에즈 빌리지행 112 버스(또는 82번)는 떠날 시간이 되어 이미 시동을 걸고 있었고 빈자리가 없다. 삼사십 분을 서서 가는 건 버스 창가에 앉아 편하게 지중해 풍경을 보는 즐거움 하나를 놓칠 수 있다. 하지만 지중해의 차창밖은 어디서 바라보아도 언제나 무한 아름다움이다.
아침부터 짙푸른 하늘과 바다를 멋지게 보여주더니 잠깐 다리품을 팔라고 여행자에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날이다. 얻기도 하고 놓치기도 하는 여행의 공평한 맛도 있으니까 뭐~. 다리 아픈 줄도 모른 채 에즈 빌리지(Eze Village)에 도착했을 때는 주변의 온 산하가 투명한 햇살의 빛 내림으로 온 세상이 환했다.
눈앞에 교회의 시계탑이 있는 건물이 보인다. 여행길에 시계탑을 만나면 대부분 그곳이 목적지 인양 마치 이정표 삼아 시계탑을 향해 걷는다.
어차피 느슨하게 보낼 셈인 하루다. 먼저 거길 오르지 않고 근처에서 어슬렁 거리며 아랫동네를 즐겨본다. 골목마다 햇볕이 뿌려져 있고 몇 마리의 잘 생긴 개가 왔다 갔다 한다. 마을조차 느슨하고 헐렁하게 여유만만이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에 평화로움이 번진다. 언덕 돌담에 걸터앉아 사람 구경도 하고 할 일없이 두리번거리며 마음껏 여유 부리며 가벼운 마음을 얻는다.
아껴두었던걸 꺼내먹듯 이젠 에즈 빌리지로 올라간다.
사실 중세마을이 다 비슷하지 뭐, 하면서 별스럽지 않다는 생각으로 처음엔 무심히 걸었다. 비좁은 골목마다 콕콕 박혀있는 작은 상점들이나 갤러리, 교회건물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걸을 수 있다. 직접 만지면서 느낄 수 있는 시간여행이다. 손바닥의 감촉으로 거슬러 가보는 중세기 마을이다.
느릿느릿 가파른 언덕을 오른다.
걸으며 만나는 가시를 뻗치고 있는 다양한 선인장과 여신의 조형물들이 이 마을의 수호신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을정원에 뿌리내리고 저렇게 지중해를 지키고 있구나 하는...
지중해 높은 절벽 위에 13세기에 만들어진 작은 요새 마을 에즈 빌리지.
수백 가지의 선인장이 독특하게 가꾸어진 길을 걸어 400m 높이에 위치한 열대 정원에 서면 바람결이 확 다르다. 해변 마을에서 에즈빌리지까지는 니체의 오솔길이 있다. 이 길을 걸으며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구상했다는 철학자를 떠올려 본다. 두리번거리며 산책하듯 걷는 성벽 마을의 시간여행이다.
사방을 빙 돌며 파노라마 전경을 바라보느라 가슴이 벅차다. 가슴이 뻥 뚫린다. 절벽 아래 붉은 지붕의 마을이 해안선의 아름다운 결을 따라 평화롭다. 발아래 지중해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 눈앞에 펼쳐놓은 건 누구일까. 내가 본 지중해 풍경 중에서 최고다.
조붓한 골목을 이리저리 걷다 보면 길을 잃을 수도 있는 작은 성벽 마을, 그 모습대로 독수리 둥지라는 별명도 있다. 남프랑스의 따스하고 환한 햇살과 꽃들로 어우러진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소소한 행복이 넘치는 시간이다. 아랫마을로 내려와 노천카페에 앉아 토르티야 샌드위치로 때우는 늦은 점심도 충분히 즐겁다. 오래된 중세 마을에 부는 가을바람 속에서 한나절이 그렇게 가고 있었다.
내게 에즈 빌리지는 여행길에 잠깐 들러 보는 곳이었다. 아니 누구에게나 그렇게 작은 마을일 뿐이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자꾸만 머무르려는 발걸음이 되어 느릿느릿 길게도 놀았다. 돌아와서도 종종 생각나는 걸 보면 나와 잘 맞는 곳인 듯하다.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계절이어야 한다. 푸른 지중해를 멀리서 바라보기 위해서 다시 한번 들러보고 싶은 마을, 에즈 빌리지(Eze Village)다. 지중해와 이토록 아름답게 어우러진 선인장 마을의 정원, 그 옛날 이곳엔 누가 살았을까. 그곳은 누구의 정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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