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의 골목과 스페인 광장은 푸른 하늘이 배경이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도 스페인 광장으로 몰려드는 걸까.
스페인 광장은 같은 이름으로 몇 군데 더 있다. 그중에서 로마와 세비아의 스페인 광장을 많이 찾는 듯하다.
젤라토를 먹는 깜찍한 오드리 헵번이 한 번씩 되어보는 로마의 스페인 광장 계단은 언제나 여행자로 북적인다.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은 휴대폰 CF 속의 강렬하게 붉은 김태의의 플라멩코 드레스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아라비아 로렌스나 스타워즈 등 많은 영화도 촬영된 곳이다. 역사적 의미가 스며든 거대한 건축물이 현대인들에겐 이젠 이렇게 호기심 불러일으키는 매스컴의 장면으로 먼저 떠올리는 것이 우선인 듯하다.
가을이 깊었는데도 스페인의 태양은 뜨겁다.
세비야 대성당 골목에서 천천히 걸어가면서 오래된 도시의 오래된 나무 그늘을 만나면 땀을 식힌다. 느린 트램이 지나가면 멈춰 서기도 하고 골목길 기념품 가게의 엽서도 들여다본다. 진열장의 플라멩코 드레스를 바라보거나 길거리에 세워둔 마네킹에 입혀놓은 드레스 옆에 서 보기도 한다.
세비야의 트램은 5개의 정류장이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걸어서 다닐 만큼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골목이 많아서 차가 다니기 쉽지 않다. 자의 반 타의 반 걸어야 할 일이 많지만 여긴 걸으며 여행하는 맛이 나는 도시이기도 하다. 좁다란 골목을 걷다 보면 바닥의 돌이나 타일이나 문양이 세월을 느끼게 하고 장인다운 손맛이 깃든 그들의 건축물들이 숨 쉬듯 가까이서 느껴진다.
그 골목을 걷다 보면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공을 차는 아이가 툭 튀어나올 것 같다. 대문 앞 의자에 앉아 깜빡 조을고 있을 할머니도 예상된다. 그렇게 골목 순례를 하면서 스페인 광장에 닿는다. 입구에 포장마차 같은 매점에서 생수 한 병을 사서 단숨에 다 마셨다. 시원한 생수로 더위를 날리고 나니 스페인 광장의 하늘은 더없이 푸르다.
1929년 이베르 아메리카 박람회장으로 사용되기 위해 조성된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은 그 광대한 넓이의 웅장함이 부채꼴의 유려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것이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입구의 인공호수를 지나 버스킹 공연하는 이들의 옆을 지나고 음악소리 내며 달리는 마차가 달가닥 거리며 지나가고 이윽고 건물 안에 들어간다. 거기서 내다보는 스페인 광장에 햇볕이 쏟아지고 한없이 평화롭다. 백 년 가까운 세월을 담아낸 너그러움이 느껴진다.
게다가 중앙의 분수가 뿜어내는 물거품의 포말이 하늘의 구름과 매치된다. 그런 열린 광장에서 여행자와 세비야 시민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뒤섞여 노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이런 역사적 장소에 입장료 없이 들어갈 수 있어서 그들의 자연스러움과 자유스러움이 더 돋보이는 듯싶기도 하고. 가끔씩은 이렇게 푼돈에서나마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꽤 즐겁다. 이조차 너그러움으로 해석해 본다.
가끔 거리나 건물의 문양에 상징적인 문자처럼 NO8 DO라는 걸 보았다. 찾아보니 '성모는 우리를 저버리지 않는다'라는 뜻의"No me ha dejado"를 축약한 말이다. 역사의 부침이 심했던 세비야가 이슬람 지배에서 벗어나 스페인 영토가 되고 찬란한 번영을 누리면서 성모의 믿음을 일컫는 말이었다. 신앙처럼 이런 믿음을 지니고 사는 것도 이 도시가 지금껏 유지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뜨거운 태양에 오렌지 나뭇잎이 반짝이고, 가무잡잡한 피부가 매력적인 여인이 플라멩코 드레스를 입어보라고 활짝 웃는다. 분수대 앞에서 손주와 망중한을 보내는 할머니, 호시탐탐 여행객의 주머니를 노리는 소매치기 이쁜 아가씨 무리들, 여행지의 지도를 꼼꼼히 살피는 커플, 삼각대를 이리저리 옮기며 열심히 사진 찍는 사람, 벤치에 느긋하게 앉아 스케치북에 스페인 광장을 드로잉 하는 은발의 아저씨...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나와 한날한시에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주요 도시인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을 가슴에 담았던 사람들에게 동지의식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