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세빌리아

세비야? 세빌리아~. 세빌리아의 이발사 때문에...

by 리즈







세빌리아가 더 좋다. 나는 세비아보다 세빌리아여야만 그 느낌이 좋다.

Sevilla가 언제부터 세비야로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이 말을 처음 대한 건 <세빌리아>였기에 기억 속의 그 어감이 지금껏 더 자연스러웠다.


그 옛날 소프라노 음악 선생님은 자신의 오페라 공연 이야기를 곧잘 해주셨다. 그 무렵 주입식 교육으로 <롯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라는 오페라 제목을 단순히 암기한 것이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는 것이다. 내게 세빌리아는 그렇게 오래전 추억 속의 오페라 제목 덕분에 지금도 변함없이 세빌리아다.


아마 세빌리아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미 구식이라 말할지 모르나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의 세빌리아가 지워지지 않는다. 한때 된소리 현상이 언어순화를 막는다고 짜장면을 자장면이라는 맛없는 발음으로 바꾼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도무지 짜장면이라는 상징적인 이름의 위력 덕분인지 자장면과 짜장면 모두 사용 가능한 걸로 다시 돌려놓았다.


물론 세비야와 세빌리아는 짜장면과 비교될 일은 아니다. 다만 나 어릴 적에 머릿속에 박힌 기억은 고집불통처럼 좀처럼 지워지기 힘들다. 외래어 표기법상 원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세비야의 어마어마한 대성당이나 멋진 궁전을 돌아보면서도 나는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찾듯 세빌리아라는 정감 어린 발음을 자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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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 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두 시간 만에 세비야로 날아갔다. 신기하거나 낯섦보다는 푸근한 지방 도시에 안착한 느낌이다. 공항에서 예약된 호텔까지 타고 가는 낡은 택시의 기사님도 조용히 묵묵하시다. 운전하는 손등에 주름이 가득한 할아버지였고 친절하지 않으면서도 믿음을 주는 모습이다. 혹시라도 먼 길을 돌아가거나 바가지요금을 요구할 분 같지는 않아서 괜히 안심이다.


세비아는 이렇게 편안함으로 시작되었다.

오래된 도로는 걷다 보면 반질반질하거나 금이 간 벽돌이 군데군데 눈에 들어왔고 쾌적하거나 깔끔하지도 않다.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교체하지 않은 길이었다. 아니 백 년 이백 년이 넘은 길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길을 걷는 이에게 편안함을 준다.


걸핏하면 교체되는 서울의 보도블록이 국민들의 혈세 낭비라는 말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죽하면 언젠가는 서울 시장이 취임하면서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위해 멀쩡한 보도블록을 교체하지 않겠다고 했을까.


무수한 사람들이 밟았을 세비야의 동네 골목이 늘 걷던 길 같다. 정감 있는 오래된 길 덕분에 이미 친근해지고 있었다. 다채로운 문명의 흔적들이 걷는 길에서도 느껴지는 세비야는 여전히 날마다 역사를 켜켜이 쌓아가고 는 중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 개척의 꿈을 안고 항해를 시작한 세비야,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마다 역사가 있고 문명의 흔적이 스며있는 곳 세비야에 왔다. 아니, 세빌리아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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