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다녀왔다. 몇 주 전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우리 집에선 교통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계속 미루어지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는 마음속으로 조바심이 나고 안달이 났다. 누가 부담을 주는 것도 아니고 나 역시도 숙제로 여긴 적 없는데 계속 마음이 급해왔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지난번 남편이랑 자동차를 타고 어딘가를 다녀오면서 친구가 있는 추모공원 쪽 동네를 말하며 "여기서 먼가?" 물었다. 멀다기보다는 가는 곳이 지금은 방향을 반대로 돌아서 가야 하는 길이라며, "갑자기 거길 왜? 한다. 잠깐 머뭇거리다가 친구 이름을 말하며 그 아이가 안치된 추모공원이 위치한 동네라고 했다. 그리고 나 거기 꼭 가보고 싶다고, 요즘 매일 그 친구 생각하고 있다고, 부쩍 보고 싶어 미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울컥하는걸남편이 눈치챈 것 같았다. "진작 말씀하시지, 다음 주 시간 내어 데려다주겠다"라고 선선히 말한다.
마음을 열어놓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가끔씩 한 두 마디라도 전화로 두런두런 서로의 일상을 주거니 받거니 할 누군가가, 자랑하고 싶거나, 내 시시하고 쓸데없는 이야기로 히히덕거리고, 의논하고 싶거나, 때로 헛헛할 때 기댈 언덕이 되어주고, 상처받은 마음을 이야기하면 진심으로 받아주던... 친구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난 것은 내게 가장 큰 상실이었다. 늘 그리웠다.
추모공원 4층 복도에 내 발소리만 울렸다. 두근두근 했다. 반갑고 원망스럽고 아깝고 안타까워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꽃을 놓고 친구 이름을 몇 번씩 부른 카드를 놓고 혼자서 가만히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한참을 들여다 보고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했다. 너의 다정한 시선, 온기, 지지와 응원, 너 때문에 행복했던 시간들 고맙다고 고맙다고... 너 없이 살아보니 너만 한 친구 또 없더라고... 이렇게라도 널 만나고 싶어서 날마다 생각하고 날마다 애가 탔단다...
귀하고 아름다운 친구, 네가 없어서 내 인생의 즐거움이 확 줄어들었다. 이제는 달리 생각하려 한다. 이렇게 좋은 친구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고맙다고...
친구를 뒤로 하고 복도를 걸어 나오다가 다시 되돌아가서 보고 사진 한 장 더 찍고 돌아섰다. 밖으로 나오니 추모공원 정원의 장미가 초여름 햇살 아래 어찌나 붉던지. 주차장으로 걸어가며 문득 머리가 어지러워 잠깐 비틀거렸다. 친구 생각이 하늘에 닿았나? 잠깐 멈칫하는데 저 쪽에서 남편 차가 보였다. 이게 무슨 일인지 갑자기 울컥했다. 얼른 돌아서서 가방에서 선글라스를 꺼내어 썼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자동차에 올라탔다. "잘 만났어?" 한 마디 외에 아무 말도 더 걸어주지 않아서 다행이다.
돌아오는데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차츰 기분이 너무 좋고 가볍다. 숙제를 마친 기분 그런 건 전혀 아니다. 그냥 무슨 큰 위로를 받은 듯하다.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어쩌다 마음이 외롭거나 심란할 때 '그냥 훌쩍 부모님 산소에 혼자 다녀왔어' '사랑하는 이가 뿌려진 강가에 다녀왔다'는 식의 말을 하는 걸 더러 본 적이 있는데 이게 그런 건가.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행복하다. 가뿐하고 누군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거나 다정한 토닥임을 받은 듯 그런 기분. 너의 위로... 역시 내 고마운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