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행의 기억 Rothenburg ob der Tauber
독일 여행 중에서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곳이 한 군데 있다.
중세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
로텐부르크 (Rothenburg ob der Tauber:'타우버 강 위의 로텐부르크'이란 뜻)
중세 유럽의 길 로맨틱 가도가 시작되는 곳이 뷔르츠부르크인데 독일 남부지방의 끝인 알프스산기슭에 자리 잡은 퓌센을 마지막으로 지나 로마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로만티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하절기에는 한 번에 직접 가는 버스가 있다) 그곳을 찾았을 때는 눈이 흩뿌리고 있었다. 이미 전날부터 내렸었기 때문에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옆에는 녹지 않은 눈이 그대로 쌓여있었다. 긴 시간 기차를 타고 가는 길에 내 눈을 호사시켰던 차창밖의 풍경도 잊히지 않는다.
간이역과도 같은 작은 역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다 보니 입구부터 중세의 생활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을만치 변함없는(?) 모습이다. 성(城)으로 둘러싸여 있는 고풍스러운 마을은 꼭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으며 갑자기 이곳이야말로 유럽 냄새를 가장 많이 풍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벽을 따라 들어가노라니 완전히 수 세기를 거꾸로 따라 들어가는 착각 속에 빠져든다. 골목을 두고 마주한 맞은편 집의 레이스 커튼이 드리워진 창의 덧문을 열어 사랑을 속삭였을 젊은이들의 러브스토리나 앞치마를 두르고 투박한 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하여 만든 소박한 빵을 나누는 부녀자들의 이웃사랑과 그들의 일상도 즐거이 마음껏 상상이 되었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은 어찌나 시리도록 푸르던지 흘러가는 구름 몇 덩이가 시공을 너울너울 넘고 있는 것 같았다.
성 안의 곳곳을 걸으면서 문득문득 몽마르트르의 뒷골목을 주로 그렸던 위트릴로의 그림이 떠오르곤 했다. 다른 화가들이 잘 그리지 않는 신산한 뒷골목이나 언덕길의 모습을 견고한 구성으로 그려낸 위트릴로의 침묵의 정취를 나는 이곳에서 우연히도 느꼈다.
성의 끄트머리에는 뒷문이 있어서 나가보니 숲에 둘러싸인 아늑한 골짜기와 산길, 그리고 군데군데 키 큰 나무와 외딴집인듯한 것이 성문 밖의 고적감을 조용히 전해준다. 중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을 뿐 만 아니라 그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별다른 손질을 볼 수 없는 모습이 더 매력적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마치 우리가 동화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할 정도다. 아이들에게 이곳을 꼭 보여주고 싶다고 남편이 선택했고 우리는 하루를 몽땅 로텐부르크 성 안에서 여유롭게 동화처럼 보냈었다.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 사는 우리들에게 타임머신을 태워서 한시름 벗고 마음속 걱정 모두 내려놓으라고 하고 싶었을 거야. 중세의 전설 속에서 잠깐이나마 우리도 복잡한 세상을 잊어보라는 배려, 그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곳에서는 바쁜 스케줄대로 바삐 움직이는 단체여행객들이 아니면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발걸음을 늦추고 천천히 한 호흡 쉬면서 여행의 피로를 날리며 몸도 마음도 쉬다 가는 곳이라 할 수 있었다.
한참을 거닐다가 찻집이 보여서 뜨거운 카푸치노를 마시며 잠깐 지친 다리를 쉬었다. 시간이 멎어 버린 듯한 옛 도시에 초현대식의 찻집이나 맥도널드와 같은 현대식 패스트푸드점이 붐비고 있었다. 현재가 있기에 과거도 있는 법이겠지.
아들아이가 과자인지 초콜릿인지 빵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정체를 알 수 없는 걸 사달래기에 서 너개 사줬는데 그것이 바로 이 도시의 특산물인 슈니쿠켄이라는 Snow Ball 이란 것이었다. 사실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독일 곳곳에서도 파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다양한 입맛에 길들여져 있는 현대를 사는 아이 입맛에는 잘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단단해서 망치로 두드려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겉에 바른 달콤한 쵸코나 슈가파우더 맛을 빼면 특별한 맛이 없는 담백함에 퍽퍽한 느낌까지 사실 별 맛은 없었다. 먹지 않은 것이 다음날까지 가방에 들어있었으니까.
그런데도 지금도 비슷한 모양의 과자나 초콜릿을 보거나 추운 겨울날 들판을 끝없이 달리고 있는 기차를 보면 가끔 아름다운 중세도시 로텐부르크가 생각나고, 쉬네발렌 (Schneeballen)이란 Snow Ball 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함께 여행했던 그 겨울의 풍경들이 선명하게 기억 속에 떠오른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사는 일이 지금보다 더 한가로워지면 길 따라 바람따라 떠도는 여행길에 다시 한번 꼭 들러보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