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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May 24. 2019

소록도 가는 길...

이제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섬, 소록도







보리피리 불며 / 봄 언덕 / 고향 그리워 /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 꽃 청산 / 어릴 때 그리워 /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 인환의 거리 / 인간사 그리워 /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 눈물의 언덕을 / 피ㄹ 닐니리. 

   

한하운 시인의 애달픈 시 ‘보리피리’다. 소록도를 다녀오고 나서 비로소 그 고독과 고통을 백분의 일도 이해하지 못한 채 시를 읊었던 것이 그저 부끄럽다. 하늘이 내린 형벌이라 할 만큼 무서운 천형(天刑)이라는 나병. 그 병으로 한 맺힌 일생을 살아간 분들의 절망을 비로소 마음속까지 절절히 느끼고 돌아왔다.


전남 고흥에서 소록도 가는 길에 펼쳐진 바다는 평화롭기만 하다.

해안가 울창한 솔숲 옆으로 도로가 길게 나 있다. 이곳에서 한 달에 한 번뿐인 한센인들의 면회가 먼발치로 떨어진 채로 이루어졌다. 행여 바람결에 병이 옮겨질까 봐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서 있는 장소가 바뀌었다고 한다. 부모형제여도 손잡아 볼 수도 없고 서로의 숨결 한번 느껴보지 못하는 아픔이 서린 곳이다. 그래서 애환 어린 탄식의 장소란 뜻으로 수탄장(愁嘆場)으로 이름 붙여졌다.


무서운 병으로 일생을 소외와 고통 속에서 살았지만 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편견이 가장 큰 아픔이었다. 부족한 의료시설은 물론이고 부모형제에게까지 버림을 받아 그들이 소록도로 간 것이 올해로 103년 되었다고 한다. 한때는 6000여 명 정도 수용되어있었으나 현재는 500여 명의 환우들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 세월 동안 소록도 병원의 나무는 자라서 울창해졌다.

그분들의 아픔과 슬픔을 기억하고 있을 그 시절에 지어진 건물들은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이 곳을 모두 보려면 두 시간 정도 걸린다. 검문소를 지나 수술대와 검시대, 세척실, 감금실, 시체 해부실, 형무소... 를 돌아보며 처절했을 그 시간들을 짐작해 본다.


밖으로 나오면 6000여 평의 공원이 잘 가꾸어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환자들의 강제노역으로 조성된 곳이다. 환자들의 피와 과 눈물과 한으로 만들어진 공원의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 허투루 볼 수가 없다. 편백나무, 소나무, 향나무, 철쭉과 종려나무, 장미터널 등 각종 꽃과 나무, 그리고 잘 가꾸어진 푸른 잔디 위에 그들의 아픔의 시화가 줄지어 서 있다.


그리고 공원 중앙에 하늘 높이 하얀 탑이 눈부시다.

성 미카엘 대천사가 악마인 나병을 발로 밟고 창으로 한센병을 박멸하듯 찌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그 아래엔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문구가 있다. 옆면으로는 1963년 당시 근로봉사단이었던 국제워크캠프 남녀 대학생 133명의 대학생 이름이 적혀 있다. 이것이 소록도의 랜드마크 구라탑(救癩塔)이다. 말 그대로 나병에서 구함을 얻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또 하나의 탑이 있다.

1962년 소록도의 나환자를 돌보러 오스트리아에서 멀고 먼 이국땅으로 온 마리안과 마가렛 두 수녀님의 공적비다. 그 후 40년이 넘도록 맹목적인 헌신으로 수많은 환자들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았다. 이제는 건강이 좋지 않아 소록도에 부담이 될까 봐 편지 한 장 남기고 40년 전에 들고 왔던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고향으로 떠났다. 현재 두 수녀의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을 위한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  


이제 소록도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섬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가 지켜주고 덮어주지 못한 세월을 산 분들에게 가졌던 편견의 벽이 부끄럽다. 사는 게 뭔지 그 삶을 잊고 살아서 또한 부끄럽다. 그들이 고립무원의 섬 소록도에 갇혀 산 시간에 난 편안히 잘 살아서 미안하다.



전남 고흥의 끝자락인 녹동항 앞바다에 아기 사슴의 머리 모양을 닮은 작은 섬 소록도(小鹿島), 지금은 그 섬의 생명력을 닮은 푸르른 등나무가 붉은 벽돌담을 가득 덮고 있다.




"주여. 인생은 이리도 슬픈데, 저 바다가 너무 파랗습니다."

엔도 슈사쿠 소설 <침묵>의 한 문장.











추가 사진으로 조금 더 보기~

지난해 던가

지금은 없어진 장흥교도소엘 가 본 적이 있다.

그곳이 생각날 만큼 끔찍하게 열악했다.

차마 내부 사진은 올릴 수가 없다..


더 이상 말할 수가... 없다...



전라도 길 - 부제목 소록도 가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길 전라도 길.



숲 안에

중앙교회와 초등학교가 그림처럼 들어앉아 있다.



한땀한땀 바느질을 한다. 그 손길이 느껴진다. 공중전화를 통해서 들려오는 목소리로 그리움을 달래고...


-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
이 편지 쓰는 것은 저에게 아주 어렵게 썼습니다.

한편은 사랑의 편지이지만은 한편은 헤어지는 섭섭함이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직접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되겠지만 이 편지로 대신합니다.


이제는 저희들이 천막을 접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한국에서 같이 일하는 외국 친구들에게  소록도에서 제대로 일할 수가 없고
자신들이 부담을 줄 때는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자주 말해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말을 실천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 편지를 읽는 당신께 큰 사랑과 신뢰를 받아서 하늘만큼 감사합니다.

부족한 점이 많은 외국인인 우리에게 큰 사랑과 존경을 보내주어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저희의 부족함으로 인해 마음 아팠다면 이 편지로 미안함과 용서를 빕니다.

여러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아주 큽니다.

그 큰 마음에 우리가 보답할 수 없어 하느님께서 우리 대신 감사해주실 겁니다.

항상 기도 안에서 만납시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리안느, 마가렛 올림

소록도 2005년 11월 22일

-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편지 中 –










https://kakaotv.daum.net/v/304066275

http://bravo.etoday.co.kr/view/atc_view.php?varAtcId=9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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