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__향수
봄의 끝무렵, 여름이 시작되던 즈음
그 들판엔 뜨거운 한여름의 태양을 방불케 하는 더위가 쏟아지고 있었다.
언덕에 오르는 길에 그 냇가에는 여름꽃들이 마음껏 피어나고 몸부림치듯 엉킨 덩굴들이 옥천의 들길을 지키고 있는 듯싶었다.
나무 그늘에는 더위를 피해 동네 사람들이 쉬고 있었고,
언덕 아래엔 초여름의 강태공들이 텐트를 치고 하세월 여유자적한 모습이다.
옥천의 보정천,
그리고 보정천에 섬처럼 떠있는 산 위에 오롯한 정자 상춘정이 보인다.
정지용의 고향 옥천 땅.
아름다운 시처럼 아름다운 계절에 내가 여기 서 있다.
어릴 적 여름방학 때 고모네 집에 놀러 가던 길,
그 들판에서 사촌들과 뛰어놀며 순진무구했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거기 보이는 듯해서 왠지 그리움에 가슴에 뭉클해져 온다.
온몸에 땀이 흐르고 안경 속으로 땀이 줄줄 흘러내리던 날이었다.
그럼에도 저 들판을 걸으면서 행복했다.
..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흥얼거리며...
그리고
저 넓은 냇가에 안개가 휘감겨 있을 새벽에 올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
무더위 속의 그곳을 떠나오며 뒤돌아보니
상춘정의 뒷모습이 내게 인사를 하는 듯하다.
-안녕, 잘 가라...
-안녕, 다시 오고 싶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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