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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Oct 20. 2019

가능한 머무를 것, 남도 땅의 가을...

보고 느낄 것이 많은 강진, 하루 이틀로는 부족하다.








강진 백운동 원림(康津 白雲洞 園林)- 월출산- 녹차밭- 무위사( 無爲寺 )- 월남사(月南寺)- 다선(茶仙) 이한영(李漢永) 생가- 다향산방- 설록다원- 옴천사(唵川寺)- 모란공원- 영랑생가

강진은 그 옛날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답게 멀고 먼 땅이다.

지금도 서울 기준으로 다섯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니 마음먹고 떠나야 하는 곳이다. 유홍준 님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도 남도답사 일번지가 강진이었다. 머지않아 좀 더 편리한 교통편이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단 그곳에 발을 내딛고 나면 가봐야 할 곳이 도처에서 기다리고 있다. 지역이 넓지 않아서 시간만 잘 활용하면 빠짐없이 고루 돌아볼 수 있어서 좋다.


묵묵히 자리 잡고 있는 고찰들, 운치 있는 정원, 다산의 실학정신과 영랑의 시혼이 어린 터전, 차맛이 무르익고 있는 강진 여행은 하루나 이틀로는 부족하다. 그 땅에 잠겨 느껴보는 시간, 여행은 가능한 머무를 것...  


◇강진 백운동 원림 (康津 白雲洞 園林)

숲과 계곡, 사계절의 비경을 누리며 지낼 수 있는 곳, 백운동 원림.

백운동 원림은 담양의 소쇄원, 완도 보길도의 세연정과 함께 호남 3대 정원으로 꼽는다.


다산 정약용이 제자들과 함께 월출산을 내려오다 하룻밤을 보낸 백운동의 빼어난 경치를 잊지 못해 <백운첩>을 기록했다. 이 백운첩이 발견되면서 이것에 근거해서 복원되었고 조선의 정원을 대표하는 명승지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월출산 옥판봉 남쪽 자락의 길을 달리다가 차에서 내려 가면 숲을 가르며 좁은 산길이 있다.

마치 비밀의 정원에 들어서는 기분이다. 그곳에 백운동 별서정원이 들어앉아 있었고 지금은 백운동 원림으로 불린다. 이곳에 백운동 12 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12경,

제1경은 옥판상기(玉版爽氣), 제2경은 유차성음(油茶成陰), 제3경은 백매암향(百梅暗香), 제4경은 풍리홍폭(楓裏紅瀑), 제5경은 곡수유상(曲水流觴), 제6경은 창벽염주(蒼壁染朱), 제7경은 유강홍린(蕤岡紅麟), 제8경은 화계모란(花階牡丹), 제9경은  십홀선방(十笏禪房), 제10경은 홍라보장(紅羅步障), 제11경은 선대봉출(仙臺峰出), 제12경은 운당천운(篔簹穿雲)


울창함 속의 내밀함이 은거의 장소로 더없이 좋다. 세상과 단절됨을 숲이 만들어 준다. 고적한 세상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곳으로 백운동 별서 정원만 한 곳은 아마 없을 것 같다. 숨겨진 비밀의 정원처럼 울창한 숲에서 세상을 등진 듯 살아갔던 옛 분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백운동 원림 속을 돌아보며 당시 선비들이 문화를 교류하고 풍류를 즐기던 곳에서 여유를 잠깐 누려볼 수 있으니 이 또한 고마운 시간이다. 붉은 동백이 뚝 뚝 떨어지던 시절을 보내고 푸르른 여름, 그리고 가을 풍경이 시작되는 이즈음과 함께 겨울철 설경이 일품이라 하니 기대해 봄직 하다.


(문화재청으로부터 명승 제115호로 지정)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546번지 일원 // 061-430-3362



◇월출산(月出山)

강진이 자랑할만한 산이 있으니 월출산이다.

영암과 강진군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호남의 소금강이라 할 만큼 수려한 산세를 자랑한다. 이름처럼 달이 걸렸을 때 산의 아름다움은 물론 일출·일몰의 멋진 광경도 손꼽는 산이다.


천황봉 오르는 방법은 3가지 코스가 있다. 809m의 높이로 거기까지 거리는 길지 않으나 암반이 단단하고 거칠기로 유명한 악산이어서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나는 컨디션 문제로 초반 부분까지만 올랐다. 도중에 산길에서 다람쥐랑 노닐기도 하고 그 산에 푹 잠겨 쉬는 것도 좋은 시간이었다. 다녀온 사람들은 월출산이 강진 여행을 다 했다고 말할 정도로 깊은 감동의 산행이었다고 말한다.


산세가 뛰어난 월출산 아래엔 푸른 녹차밭이 가을볕에 차맛의 깊이를 더해가는 중이다.  




◇무위사( 無爲寺 )

월출산(月出山) 남동쪽에 있는 고찰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유적이나 유물들이 대부분 절과 관련되어 있어서 그 지역의 사찰만 몇 군데 들러도 많은 느낌을 얻게 된다. 신라시대 원효가 창건하여 관음사라 하였는데 현재 무위사로 개칭했다. 국보 제13호


살펴볼 만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찰 내의 건축물이나 벽화도 소중한 유산이지만 사찰을 둘러싼 자연환경도 함께 잘 어울리는 멋이 있다.

현재 무위사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극락보전인데, 무위사 극락보전 내부에는 총 31점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곳 무위사에서 머무르면서 사찰을 중건한 선각대사 형미(864-917)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세상에는 이처럼 소담하고, 한적하고, 검소하고, 질박한 아름다움도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곤 한다. 더욱이 그 소박함은 가난의 미가 아니라 단아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유홍준 님이 말했던 무위사다.


수수한 듯 아늑한 분위기다.

조용히 시간을 보낼 요량이면 아주 적당한 사찰이다. 소박한 아름다움이 썩 마음에 든다. 게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의 무위(無爲)... 잠시 세상을 등지고 조용히 지내고 싶다면 무위사는 어떨지.


전남 강진군 성전면 무위사로 308 무위사 // 061-432-4974




◇월남사(月南寺)

월출산 자락에 위치한 월남사(月南寺)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출산(月出山)에 있었던 고려시대 승려 진각국사가 창건한 사찰.

원래는 대규모 사찰이었으며 백제시대 고찰이었지만 지금은 절터에 탑과 진국 사비만 남아있다.

월출산 정상과 양자 암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평지에 위치한 전면 158m, 측면 182m인 장방형의 사지로 총면적은 1만여 평에 달하고 있으며 옛날에는 그 규모나 지세면에서 인근 무위사보다 컸으리라 추측된다.


현재 월남사터 발굴과 복원작업 중이어서 볼거리는 없지만 문화유산을 찾아 지키려는 마음은 엿볼 수 있다.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853 // 061-434-9963 


지붕 위에 있을 굴뚝이 바닥에 있다. 끼니가 여의치 않은 집에 밥짓는 연기가 보이지 않도록 배려한 굴뚝이라고 한다.

◇이한영 생가

차(茶), 다원(茶園)...이라 하면 보성 녹차밭이나 하동의 야생차밭도 있다.

그런데 조선의 차 문화를 부흥시킨 사람 이한영이 강진 사람이다. 다산 정약용과 초의선사의 맥을 이어 다선(茶仙) 이한영(李漢永, 1868-1956) 선생이 만든 국내 최초 시판차인 백운옥판차가 있었다.


강진에서는 백운옥차의 복원과 강진 차의 명맥을 잇기 위해서 이한영 생가를 복원하는 등 차(茶)의 본고장으로 부흥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이한영 생가는 월남사 바로 주변에 위치한다.

생가엔 사랑채와 안채가 있는데 그의 손녀딸이 살고 있으며 입구의 찻집 다향산방도 운영한다.

월출산이 병풍처럼 감싸 안은 생가엔 그 옛날 시골의 풍경 그대로다. 잘 우려낸 차 한 잔 마시며 이 계절을 즐기면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사실.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817-1 // 061-434-4995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드넓은 차밭의 광경에 차를 멈추게 된다.

설록다원이다. 월출산의 솟아오른 바위들과의 절묘한 조화가 돋보이는 차밭이다.

차밭 군데군데 서리방지용 장대선풍기가 돌아간다. 상층부의 더운 공기를 끌어내리기 위한 설록방상팬이다. 차를 마시기까지 이토록 손이 많이 가고 신경 쓸 일이 많다.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1209-1


◇대한불교 선각종 옴천사(唵川寺)

강진에 가면 옴천사라는 사찰이 있다.

'옴'은 범어“AUM”의 음역자로서 헤브라이어의 “아멘”과 같은 뜻의 불교의 신성어이다. 그래서 반야심경의 첫소리는 ''옴(AUM)''으로 시작해서 ''사바하(SVAHA)''로 끝나며, 진리의 형성을 뜻하는 창조·유지·파괴로 해석한다.


대한불교 선각종 총본산인 강진 옴천사는 국내 유일의 자연석 3천탑으로 유명하다. 이 석탑 보전을 위해 관람객과 일반인들은 사전승인 예약을 해야 하는 등의 출입을 제한하기도 한다. 선각종 총무원장이신 정암스님은 '현재 3천탑을 쌓았으니까 제 생애 2천 개를 더 쌓아서 5 천탑을 쌓아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싶다'라고 말씀하신다.


- 옴천사(唵川寺)는 신라 말 최고의 고승으로 존경받던 도선국사께서 수도 중에 세 번의 선몽으로 목암사로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1930년에 혜선 스님이 재창건 하셨고, 현재 정암 큰스님이 옴천사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옴(唵) 자는 원래 우주를 상징하고 팔만 사천 대장경의 모든 뜻이 들어 있는 글자로써 수행자의 부정한 몸, 말, 마음을 상징하면서 한편으로 부처님의 청정 무결한 몸, 말, 마음을 상징한다. 이는 중생이 끝없는 수행을 거처 부처님의 경지에 이름을 뜻한다.-퍼옴


전남 강진군 옴천면 장강로 1445-14 // 061-433-223




◇모란공원, 영랑생가

어딜 가나 그 지역의 대표하는 인물들이 있기 마련이다.

"모란이 피기까지"의 영랑 김윤식 시인은 강진의 자부심이다. 길을 가다 보면 영랑이나 모란이란 이름으로 내세운 갖가지 명칭을 흔히 볼 수 있다. 식당마다 골목마다 강진 땅 어디에서든 영랑 김윤식과 다산 정약용의 흔적과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더구나 강진군은 문화관광체육부가 선정한 ‘2019 올해의 관광도시’다. ‘내 마음이 닿는 곳, 강진’을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어서 이 참에 남도 땅의 문화와 역사를 접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영랑의 시혼이 살아 숨 쉬는 영랑생가와 모란공원이 사의재에서 강진군청을 지나 잠깐 걸어가면 만날 수 있다. 이 길은 가던 길이라는 옛말로 예던길이라 불린다. 우리나라 대표 서정시인이기도 하면서 항일 민족지사였다는 것이 이 지역 사람들의 자랑거리다. 단 한 줄의 친일 문장을 쓰지 않았던 민족 시인이고 독립운동가였던 분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생가 입구엔 시문학파 기념관이 위치해 있고,

시의 소재가 되었던 돌담과 장독대, 동백나무와 뜰을 생가에선 그대로 볼 수가 있다. 

대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생가 뒤편의 돌담을 지나 세계 모란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시인의 정서를 느껴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영랑의 추모정원과 모란 조각, 유리온실 등은 밤이면 조명으로 또 다른 멋을 즐길 수가 있다.


산책길 조성이 잘 되어 있어서 ‘오~매, 단풍 들겠네’,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같이’, ‘모란이 피기까지는 아직 나는 기다리고 있을 테요’  구수한 남도 사투리에 음악성 있는 시어를 떠올리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만한 곳, 강진이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색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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