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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Oct 22. 2019

고요한 새벽, 괴산 곳곳의 가을~

은행나무 노오란 문광저수지, 괴산 산막이 옛길






새벽안개 때문이었다.

가을 무렵 적당히 찬 공기를 느끼며 저수지에서 피어오르는 새벽의 물안개를 보는 것, 온몸이 떨리는 그 시간의 시린 공기 속에 있고 싶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나오는 노란 은행나무길 문광저수지 이야기에 두말 않고 가겠다고 해버렸다. 새벽에 눈을 뜨는 일이 도무지 쉽지 않은데 집을 나선 건 새벽 3시였다.


두어 시간 달려서 도착한 저수지 주변은 아직 어둠이 짙다.

차 안에서 부스럭거리며 이것저것 챙기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둠이 살짝 사라져 가고 있다. 저수지 주변에는 이미 와서 자리 잡은 사람들의 소리가 두런두런 들린다. 어둠의 짙푸름과 아침해의 붉은 기운이 함께 감돌며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온몸에 엄습하는 적당한 한기가 기분 좋다.

머플러까지 둘렀는데도 추워서 온 몸이 떨린다. 아침이 서서히 다가온다.

잔잔하고 맑기만 하던 문광지 위로 물안개가 조금씩 피어오른다. 건너편 산허리에도 운해가 띠를 두른다. 김이 오르듯 물 위로 솔솔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보면서 문득 그리움인 듯 뭉클하다. 안갯속을 뚫고 걸어 다니던 학교길이 있었고 서늘했던 그 새벽길의 친구들이 있었다. 아릿했던 잠깐의 시간도 챙겼다.


무수한 낚싯대에 걸려있는 낚싯줄이 물에 잠긴 채 잔잔히 흔들린다.

밤을 지새운 낚시꾼들의 커피 한잔이 코 끝을 스친다. 커피 향기 사이로 카메라를 든 사진가들이 조심조심 오가고 저수지 위로 물안개는 조금씩 더해진다. 아침 시간이 이 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날이 밝고 다시 냅다 달려간 곳이 산막이 옛길이다.

산막이 옛길은 괴산군 칠성면 사오랑마을에서 괴산호 서쪽을 따라 산막이 마을까지 이어진 4KM 길이다. 이 길이 산이 마치 장막처럼 둘러싸여 있다는 뜻으로 산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1957년 괴산댐 건설로 이 일대가 수몰되면서 계곡 주변의 산 중턱으로 복원된 옛길이라는 의미가 더해진 것이다.  


걷기 열풍이 이곳에도 불어온 듯하다.

그 산 길을 걷고 또 걸어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그 산을 넘어 배를 타고 나오는 코스다. 충청도 양반길을 따라 산과 구름다리, 소나무 동산의 삼림욕과 수변데크, 전망대, 시원하게 괴산댐을 가로지르는 유람선을 타고 산막이 나루에 내리면 된다. 자연 속에서 가을을 즐기기 좋은 길이다. 한국관광공사에서 3년 연속 선정한 괴산 산막이 옛길이다.



다시 내려온 산막이 오름길 입구,

그 주변엔 마을 분들이 농사지은 농산물을 팔고 있다. 표고버섯, 브로콜리, 대추, 밤, 강낭콩, 단호박, 콜라비, 땅콩, 사과... 신선도나 가격도 더없이 좋다. 무엇보다도 파는 주민들의 선함이 느껴진다. 시식용 대추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며 한 주먹씩 집어가도 "마음껏 맛보세요" 하면서 사람 좋은 얼굴로 다시 채워놓곤 한다. 같이 갔던 사람들의 양 손에 가득 들린 농산물들로 모두들 뿌듯해한다. 각 지역마다 현지의 특산물을 이렇게 기분 좋게 많이 샀던 적이 있었나 싶다. 이번 외출은 문광지 물안개나 은행나무가 아닌 듯하다. 괴산 농산물 한 보따리씩 들고 오는 것으로 다 한 기분이다.


오래전 마을이 수몰되었지만 새롭게 만들어진 그들의 터전에서는 이렇게 또 다른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근처의 수옥 폭포의 물줄기를 돌아보고 나오면서 가을이 나를 둘러싸고 있음을 느낀다. 괴산의 가을바람 속으로 들어갔던 하루, 내게 또 하나의 계절이 지나가는 중이다.  


  








     

추가 사진으로 조금 더 보기~

 운문사 뒤뜰 은행나무 / 문태준 

비구니 스님들 사는 청도 운문사 뒤뜰 천 년을 살았을 법한 은행나무 있더라
그늘이 내려앉을 그늘 자리에 노란 은행잎들이 쌓이고 있더라
은행잎들이 지극히 느리게 느리게 내려 제 몸 그늘에 쌓이고 있더라
오직 한 움직임
나무는 잎들을 내려놓고 있더라
흘러내린다는 것은 저런 것이더라 흘러내려도 저리 고와서
나무가 황금사원 같더라 나무 아래가 황금연못 같더라
황금빛 잉어 비늘이 물속으로 떨어져 바닥에 쌓이고 있더라
이 세상 떠날 때 저렇게 숨결이 빠져나갔으면 싶더라
바람 타지 않고 죽어도 뒤가 순결하게 제 몸 안에다 부려놓고 가고 싶더라
내 죽을 때 눈 먼저 감고 몸이 무너지는 소릴 다 듣다 가고 싶더라



고요하다.

새벽




산막이 옛길을 걷다 보면

사과나무가 있고

표고버섯 농장이 있고

그들의 인심이 있다.


가을...


괴산에 가면

빠뜨릴 수 없는

올갱이국과 표고버섯전.


수옥폭포

폭포가 흘러내리고

가을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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