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szawa. Frédéric Chopin. Marie Curie..
쇼팽 박물관의 문이 닫혔다.
휴관일이었던 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잠깐 난감했지만 괜찮다. 쇼팽의 친필 악보와 연인 조르주 상드와의 손 편지 등 모든 걸 옮겨놓았다는 곳, 지하의 음악감상실에서 쇼팽의 음악을 직접 들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난 사실 여행 중 실내 구경이 그리 중요한 편은 아니다. 자료가 풍부하고 잘 소장된 것들의 사실이 바탕이 되는 걸 확인하는 건 필요하다. 그렇지만 햇빛이나 바람 속에서 눈으로 확인하고 느끼는 풍경의 질감이나 현장감을 더 좋아한다. 나이 먹어서 좋은 점 중의 하나가 예상에서 빗나갔다 해서 분통 터지거나 누군가 심하게 밉거나 하지 않다는 점이다. 속좁고 까탈스럽던 내가 나도 모르게 조금씩 달라져 가는 걸 느낀다.
버스를 타고 박물관 근처에서 내렸더니 걸어 올라가는 골목길이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의 느낌이다. 가까워질수록 노래 가사처럼 두근두근 가슴이 떨려왔다. 설레며 걸을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준 버스정류장이 적당히 떨어져 있어서 어찌나 고마운지.
잠깐 두리번거리며 박물관 주변을 돌아보다가 우선 그늘이 있는 계단에 걸터앉았다.
그렇게 앉아 쇼팽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이런 시간만으로도 좋다. 땀을 식히며 휴대폰을 열어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찾아들었다. 초여름 햇살이 담뿍 쏟아져 내리는 쇼팽 박물관 앞마당에 나지막이 음악이 흐르고 가만히 아, 행복하다라고 생각했다.
박물관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면 뒤편으로 소박한 듯 수백 년 나이 먹은 나무들이 자리 잡은 공원이 있다.
그 공원과 연결된 담벼락의 그라피티는 오선지를 바탕으로 노래하듯 음표들이 그려져 있다. 쇼팽 음대였다. 음대다운 그라피티의 담 너머로 피아노 소리와 고음의 소프라노가 시원하게 들려온다. 담장 안에서는 훗날 쇼팽의 영혼을 지닌 예술가를 꿈꾸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게 보인다.
쇼팽음대에서 들려오는 고품격의 음악이든 불협화음이든 공원 숲에 퍼진다. 그 음악을 들으며 사람들은 공원 벤치에 앉아 있거나 공원 숲을 지나간다. 음대와 공원이 하나인 듯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쇼팽이 조국 폴란드를 떠나기 전까지 살았던 바르샤바.
39세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파리에서 숨을 거둘 때도 “내가 조국에 묻힐 수 없다면 내 심장만이라도 꺼내어 폴란드 품에 안기게 해 달라” 고 유언했을 정도로 사랑했던 폴란드.
그런데 폴란드라는 나라도 쇼팽 사랑이 넘친다.
일단 이 나라에 들어올 때 쇼팽 공항을 통한다. 우리의 젊은 음악가 조성진이 우승했던 쇼팽 콩쿠르는 말할 것도 없다. 기념관이나 교육기관, 쇼팽 이름을 붙인 무수한 것들, 심지어는 도심 곳곳의 15개의 벤치에 누르면 쇼팽 음악이 나오는 쇼팽 벤치가 있다. 길 가다가 고단한 다리를 쉬면서 , 또는 벤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듣는 쇼팽 음악, 얼마나 멋진 프로젝트인가.
비록 폴란드를 떠나서 살았어도 마음은 언제나 외부의 침공이나 봉기 발발로 파괴되고 있는 조국을 향했다. 그렇게 조국의 비통한 소식을 들으면서 '혁명'이란 음악이 작곡된다.
지중해의 섬 팔마데요르카 카르투하 수도원에서 연인 조르주 상드와 마지막 한때를 보낸다. 비 오는 날 밤 상드의 귀가가 늦어지자 그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담아 '빗방울 전주곡'이 탄생했다. 그렇듯이 천재 음악가의 일상은 모든 것이 사랑과 음악으로 표현되어 불후의 명곡으로 남았다.
번화한 거리에, 그리고 구시가의 담벼락에 붙어있는 쇼팽 라이브 콘서트 포스터를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성당이나 왕궁, 잠코비 광장의 계단에 앉아있으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이 쇼팽이었다. 피아노 연주회 포스터를 들여다보면 당연한 듯 Frédéric Chopin이란 글자가 보인다. 쇼팽을 좋아한다면 바르샤바 어디서든 쇼팽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내게 쇼팽처럼 폴란드를 떠올리는 이름이 또 하나 있다면 퀴리부인이다.
마리 퀴리(Marie Curie)
어릴 적 읽었던 위인전 전집 속에는 어김없이 퀴리부인이 있었다.
지금처럼 영상매체도 흔치 않던 어린 시절 비교적 책을 많이 읽는 편인 나는 퀴리 부인전을 외울 만큼 읽었던 기억이 있다. 남편인 피에르 퀴리와 함께 폴로늄과 라듐이라는 방사능 원소를 발견하고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는 내용은 위인전은 물론이고 교과서에서도 배웠다. 수십 년이 지나도록 그 책의 표지와 내용들, 그림조차 생각난다. 어릴 적 위인전의 힘은 아주 세다.
폴란드인(人)들이 가장 혐오하는 건물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곳.
스탈린이 폴란드를 위해 지어 준 문화과학궁전,
사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도시 중심에 자리 잡고 있고 볼거리가 많아서 랜드마크가 되어버렸다. 과학궁전답게 건물 양쪽에 코페르니쿠스와 마리 퀴리의 좌상이 있다.
모든 것은 내가 아는 만큼 연결이 된다.
한 번은 카페거리를 걷다가 노천식당에 앉았다. 봐도 모를 메뉴판의 그림과 대충 읽히는 듯한 글자로 주문을 했더니 순대를 연상케 하는 속이 묽은 미트 소시지가 나왔다. 양도 엄청나다. 돈가스 같은 슈니첼이란 것과 구운 감자, 피클인듯한 절인 채소... 그런데 영 내 입맛이 아니다.
언젠가 TV 프로그램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폴란드 친구들이 한국에 왔었다. 그들이 모르고 주문한 음식이 순대였는데 누군가가 놀라면서 '난 폴란드에서도 이거 안 먹는데...' 했던 게 생각났다. 나 역시 절반도 못 먹었다. 그나마 맥주 맛이 좋았고 비싸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은 나라,
주변국의 침략으로 영토가 분할되거나 국권을 잃기도 했던 폴란드에게 가졌던 비장함 따위는 어이없는 선입견이다. 바르샤바는 동유럽의 문화도시이자 아름다운 나라였다. 이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극한 잠코비 광장과 올드마켓을 무심히 지나던 시민들이 낯설지만은 않다. 그들이 힘을 모아 정성스럽게 재건한 역사지구는 놀랄 만큼 멋지다. 바르바칸 성벽을 따라 산책하며 바라보는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마냥 경이롭기만 하다.
폴란드의 역사와 함께 해온 도시 바르샤바,
내가 어릴 적 알았던 기억 속의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고 그저 막연히 친근한 나라,
길거리 쇼팽 벤치에 다시 앉아보고 싶은 동유럽의 도시,
잠코비 광장의 거리 예술하는 사람들처럼 바르샤바는 날마다 자유다.
https://youtu.be/r2 yHDFmnZ3 kChopin Fantaisie Impromptu op.66_쇼팽 즉흥환상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