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즈 Jul 22. 2020

능소화 피어난 양천 향교를 걷다

- 강서구 양천 향교의 능소화 이야기





 





사람들은 꽃철이 되면 아랫녘으로 떠나고 수목원을 찾지만 나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양천 향교에 간다. 서울시 강서구에 위치한 이곳에 가면 조용한 향교 담장 위로 피어난 능소화를 볼 수 있다. 옛 교육기관에서 꽃과 함께 고즈넉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이다.

   

도심의 세월 속에서 현재를 지키며 옛 시간과 소통하는 향교가 있다. 마을 골목길을 따라 잠깐 걸어 들어가면 사찰 홍원사 뒤편으로 산을 등지고 안정감 있게 들어앉은 양천 향교가 보이기 시작한다.  

   

향교는 공자를 비롯해서 옛 성현들의 덕을 기리는 제를 모시고 지방 향리 자제들을 교육하던 기관이었다. 이제는 현대적 교육기관이 생겨나면서 대부분 해체되고 그중에 전국적으로 230여 군데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유일하게 양천 향교만 남아있어서 그 의미가 크다.      

  

조선 태종 연간(서기 1411년경)에 설립된 양천 향교는 옛 선비정신을 되살리고자 지금도 성인, 청소년 교육 및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미디어 시대에 맞게 준비된 생활예절교육을 기본으로 다양한 소통 창구 프로그램은 인기가 있다. 그러나 현재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잠정적 휴관 중이다. 그래서 더 조용해진 향교 주변은 정적만 가득하다.     


담장을 둘러쌓던 능소화도 예년에 비해 위축된 듯 많이 줄어든 모습이다. 그래도 잊지 않고 피어난 능소화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듯 꽃잎을 활짝 열고 골목을 향해서 또 하늘을 향해서 조신하게 피어나 있다. 


능소화의 전설 속에는 그 옛날 구중궁궐에 살던 소화라는 궁녀 이야기가 있다. 어여쁜 궁녀 소화는 임금의 사랑을 얻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임금은 그 이후로 소화의 처소를 다시 찾지 않았다. 혹시나 하며 담장을 서성이며 님이 오시는지 오매불망 발돋움하며 담장을 너머로 내다보면서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안타까이 기다림의 세월만 흘려보내다 세상을 뜬 소화. ‘담장 가에 묻혀 내일이라도 오실 임금님을 기다리겠노라’라고 한 그녀의 영혼이 깃들었는지 처소의 담장을 덮으며 넝쿨을 따라 주렁주렁 피어난 꽃이 능소화다.   

 

이 꽃은 오래전 사신들이 중국을 드나들며 가져온 것으로 화사한 색상과 모습이 기품 있어서 양반꽃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주로 사대부 뜰에서만 볼 수 있고 민가에서는 함부로 심지도 못했다. 특히 능소화는 한창일 때 꽃 한 송이가 미련 없이 통째로 톡 하고 떨어진다. 사람들은 그 기개와 기품이 독야청청하는 양반가답고 마치 소화의 지조를 닮은듯하다고 풀이한다. 그래서인지 능소화의 꽃말에는 '영광', '기다림'과 함께 '명예'도 있다.      

  

부천중앙공원 능소화


예전에는 능소화가 흔치 않았다. 그래서 이맘때면 경상도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의 운치 있는 한옥 담장을 뒤덮고 피어난 능소화를 촬영하러 먼 길을 다녀온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강변 산책길이나 길거리의 굵은 기둥을 칭칭 감은 듯 촘촘히 피어난 능소화도 있고 고속도로변의 높은 벽을 뒤덮은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그뿐 아니라 소담스레 능소화 터널을 이룬 신식풍 조경의 공원이 생겨났고 어느덧 우리가 사는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꽃이 되었다.     



양천 향교 입구의 홍살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담장 아래 역대 현감들과 현령들의 송덕비가 나란하다. 기와가 얹힌 담벼락 위로 능소화가 세상을 보려는 듯 고개를 내밀고 피어나고 있다. 역시 담장을 타고 피어나야 어울린다. 마침 향교 관리실에서 나와 굳게 잠긴 문을 잠깐 열어주어 동재와 서재, 그리고 강학 공간이 있는 마당을  빼꼼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향교 옆길로 한 걸음 옮기면 궁산 근린공원으로 이어진다. 울창한 숲길은 여름인데도 서늘하다. 그 길을 따라 나지막한 궁산 산책로를 걷는 즐거움도 있다. 그리고 겸재정선미술관과 궁산 땅굴, 구암공원, 허준박물관으로 연결되는 강서 역사문화 둘레길을 알차게 돌아볼 수 있지만 생활 속 거리두기 때문에 실내 관람은 어려운 때다. 주변의 산길과 볼거리들의 접근성이 좋아서 향교 담장의 능소화 덕분에 좋은 시간을 이어서 즐길 수도 있는 기회다.      


조심스러운 세상이다 보니 지금은 향교를 속속들이 들여다보지는 못하지만 주변 뜰을 거닐며 유생들의 선비정신과 능소화의 전설을 떠올리는 시간도 제법 괜찮다. 게다가 한적해서 유유자적 생활 속 거리 두기에 적당하다.     

향교를 고리타분한 구시대의 유물인양 생각하기 전에 한 번쯤 옛 성현들의 흔적을 통해 차분한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지.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그 뜰에서의 담백한 어느 하루, 여름 햇살을 받은 능소화가 향교 담장 위에서 눈부시다.   (-7.14일 다녀왔고 지금은 그나마 조금 있던 능소화마져 거의 떨어졌다.)

  


*주소 :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 234     





△ 주변 볼거리                  

*서울식물원을 비롯해서 겸재정선기념관, 구암공원, 허준박물관, 궁산땅굴이 이어져 있다. 향교 입구 부근에 사찰 홍원사와, 전통방식으로 면을 만들어 국수를 주렁주렁 널어놓은 ‘옛날국수’ 집 구경은 덤이다.  

   

*이타제면소, 잔치국수(5000원)와 굴림만두(4000원)로 맛난 한 끼가 가능한 곳이 근처에 있다.





http://bravo.etoday.co.kr/view/atc_view.php?varAtcId=11313

http://bravo.etoday.co.kr/view/atc_view.php?varAtcId=11425


매거진의 이전글 한적한 푸른 수목원에서  느릿하게 보낸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