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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Dec 17. 2020

묵호태를 아시나요, 딱 지금이 제철.

동해시, 묵호 덕장 마을의 묵호태 이야기~









떠나 볼까? 이럴 때 누군가는 동해안이나 강원도를 쉽게 떠올린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속초와 강릉, 춘천을 생각하기도 한다. 이제 한적한 곳을 선호하는 추세인 요즘은 숨겨진 듯 사람들의 발걸음이 적은 곳을 찾는다. 


여행을 제법 다녀본 사람들은 강원도에 조용한 동해시가 있다는 걸 잘 안다. 특히 지난 3월에 KTX 강릉선 노선 운행이 연장되어 서울에서 정동진과 묵호역을 거쳐 2시간 40분이면 동해역에 닿을 수 있다. 이제 바다를 보기 위해 동해로 떠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한때 동해안 최대의 어장이었고 국제 무역항이었던 묵호항, 1970년대까지 수산물 항구로 전성기를 누리던 묵호가 지금은 동해시의 한 동(洞)으로만 남아 있을 뿐 쇠락해 가는 듯했다. 그런데 미로처럼 이어져 있는 논골담의 가파른 골목길에 정겨운 벽화가 그려지면서 묵호는 어느덧 감성 여행지가 되었다. 


그들의 삶의 감성 스토리를 천천히 살피고 읽으면서 경사 높은 그 논골담길을 숨차게 오른다. 묵호 등대가 있는 탁 트인 전망대에 서면 비로소 짭조름한 묵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 내려다보이는 묵호항은 유난히 투명해서 시나 소설에서는 '소주 같은 바다'로 묘사되기도 한다. 


‘내게 있어서 동해 바다는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술, 한 잔의 소주를 연상케 했다. 어느 때엔, 유리잔 벽에서 이랑 지어 흘러내리는 소주 특유의 근기를 느껴 메스껍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것은, 단숨에 들이키고 싶은 고혹적인 빛깔이었다. 파르스름한 바다. 그 바다가 있는 곳, 묵호.’  심상대, '묵호를 아는가' 중에서~.


-묵호항 야경


묵호(墨湖)는 라는 지명은 먹 '묵'에 호수 '호'라는 한자어를 쓴다. 동해시에서 내려다보는 바다가 검푸른 색이어서 그렇다는 설이 있다. 그뿐 아니라 묵호 해안에는 먹처럼 검은 까막바위가 상징처럼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너무 맑아서 바다 밑 검은 바위까지 투명하게 드러나 검게 보인다는 묵호항이다.




묵호항에서 유난히 바다내음이 나는 또 다른 길을 따라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가 보자. 논골담길에서 남서쪽으로 바로 맞은편 언덕에 위치한 묵호진동으로 도로명 주소는 덕장 1길이다. 그 꼭대기 마을에서 명태를 전통방식으로 말리는 <묵호태 덕장 마을>을 만나게 된다. 


해마다 이맘때면 묵호의 덕장에서는 명태를 말리느라 분주하다. 묵호만의 명태인 묵호태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묵호태 덕장은 바닷바람이 부는 해발 70~80m의 높이에서 최적의 해풍과 습도 온도가 좋다고 한다. 마침 뒷짐 지고 마을길을 지나가는 어르신께서 "묵호태를 알긴 아는가?" 하며 묻는다. 그리고는 자부심에 찬 설명을 해 주셨다.




"묵호태는 명태랑 다르지. 이곳은 지대가 높아서 겨우내 서리도 잘 내리지 않아. 명태는 눈비를 다 맞으며 말리지만 묵호태는 서리나 눈비를 전혀 안 맞혀. 만일 눈비 오면 방수포로 모두 덮어주거든. 적어도 40~60cm가 넘는 큰 놈으로만 골라서 하지. 해풍으로 말리지만 밤에는 산에서 건조한 바람도 불어주어 잘 말러. 요즘 막 출하되기 시작했고 한창 말리는 중인 것도 있는데 2~3주 정도로 기간이 짧아서 신선하지. 살도 실하고 아주 맛이 좋아." 




예전에는 이 마을 모든 주민이 묵호태를 생산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획량도 줄고 일손도 부족해서 몇몇 가구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아주 오래전 묵호항이 번성했던 시절 동해시 묵호진동 고지대 주민들의 생계였던 가내수공업이었다. 


명태 고유의 맛을 지키기 위해 겨울 바다의 차디찬 해풍으로 단기간 말리는 묵호만의 80년 전통의 방식, 겨울이 시작되는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꽁꽁 언 바닷바람이 만들어 낸다. 그래서 '언바람 묵호태'라고도 한다.




군데군데 텅 비어있는 명태 덕장이 보인다. 하지만 작업이 진행 중인 일부 덕장에서는 명태를 대나무에 너는 분주한 일손이 쉬지 않는다. 추워야 하고 얼어야 해서 추운 날 고되게 일하지만 맛있는 묵호태를 위한 작업은 한 철이다. 우리네 밥상의 찜과 구이, 시원한 해장국으로 속풀이를 하고 안주로도 인기 있는 명태나 묵호태는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또 다른 골목의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덕장이 비어 있다. 오징어 덕장이었는데 남편이 덕장에 말릴 오징어를 사러 어판장에 나갔지만 사 올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요즘 오징어가 많이 잡히지 않고 가격도 비싸서 오늘도 그냥 올 수도 있다며 여러모로 힘든 현실을 토로하신다.  


예고도 없이 찾아든 세상의 변화에 비틀거리는 우리네 일상, 하루빨리 회복되어 어민들의 바닷일도 다시 활기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언덕 마을에서 내려다보는 묵호의 검푸른 바다가 저 멀리 앞마당처럼 있다. 바다를 향한 긴 방파제와 항구에 정박한 어선들이 평온하다. 


“어느 집 빨랫줄에나 한 축이 넘거나 두 축에서 조금 빠지는 오징어가 만국기처럼 열려 있었다.”  어떤 소설 속 문장처럼 어디를 돌아보아도 빨랫줄에 명태가 켜켜이 널어져 있고 오징어나 가자미가 해풍을 맞고 있다. 묵호의 풍미가 마을 골목마다 가득하다. 묵호의 역사와 함께하는 덕장 마을의 묵호태가 겨울바람에 꾸덕꾸덕 마르며 맛을 내고 있는 중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03252&CMPT_CD=SEARCH


https://brunch.co.kr/@hsleey0yb/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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