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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May 10. 2021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노을 속으로 빠지다

-평택, 자연 속에 머물며 느긋하게 심호흡하기



내비게이션을 따라 달리다 보면 점점 주변의 평야가 시원하다. 평택은 서울 서부권에서 한 시간 정도 달리면 나타나기 시작한다. 들판에 놓여보니 이토록 봄바람이 고마울 줄이야. 집 안에 갇혀 느끼던 봄볕도 봄꽃 화분의 화사함도 눈앞에 펼쳐진 평야의 봄기운을 따를 수 없다.

자연 속에서 또 다른 자연을 체험하며 잔잔한 휴식을 얻을 수 있는 공원, 이름조차 소풍 정원이다. 미소笑, 바람風 미소 바람이 머무는 정원(庭園). 봄날에 잘 어울린다. 도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공원이 무슨 대수냐 싶겠지만 서울에서 멀지 않은 농촌마을에 조성된 그곳에 가면 마음의 평온함과 함께 까맣게 잊혔던 어린 시절의 시간까지 스쳐간다.


바람이 많아서 바람새 마을이라고 불린다. 바다의 꿈과 습지, 새들이 사는 친환경 마을과 나란히 한 수변공원인 소풍 정원, 자연 속에 머물며 즐기는 가족 야영지로도 안전하고 쾌적한 분위기다. 생각보다 제법 넓다. 심호흡 크게 한 번 하고 느긋한 산책과 피크닉만으로도 하루를 즐겨볼 만하다.   

   

특히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캠핑이나 차박 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군데군데 텐트와 캠핑용 의자가 한가롭게 펼쳐져 있는 걸 볼 수 있어서 여행 떠나온 기분이 난다. 정원 안에 다양한 테마가 준비되어 있고 코로나로부터 안전하게 분리되어 있는 언택트 여행지 전국 7위라고도 한다. 놀이시설에는 아이들과 온 가족이 마음껏 즐기는 풍경이 여유롭다.


이처럼 갖가지 즐길 거리가 마련되어 있지만, 일상을 벗어난 호젓함을 더욱 원하는 사람들에겐 소풍 정원과 이어진 언덕으로 진위천변이 있다. 제방 둑에 올라서면 천연 습지가 형성된 하천의 자연친화적인 모습에 놀랄 것이다. 기다란 곡선의 제방길이 한적하다. 드넓은 평야를 조망하면서 바람소리도 들으며 봄날의 정취를 가만히 느끼는 시간이다. 멀리 강태공의 오롯한 모습도  하나인양 보인다.  말할 것도 없이 천변 습지를 옆으로 두고 걷는 산책길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힐링로드다.


굳이 뭔가 하려고 나서는 것은 아니다. 순간 이동하듯 공기가 다른 곳에 나를 훌쩍 옮겨 놓는 것, 그리하여 잠깐이라도 숨통 트인다고 혼자 중얼거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되었다. 이렇게 가끔씩 현실감을 털어내 본다. 덕분에 평온한 자연 속에 잠시 몸 담갔던 짜릿한 시간의 약효를 한동안 간직하게 된다.


애써 '집콕'을 벗어난들 교통체증이나 사람들의 소란함을 피할 수 없다고 말들 한다. 유년기의 봄날처럼 진위천변의 길고 긴 제방둑을 거닐어 보자. 지지고 볶던 일상의 그 모든 걸 날리며 마음속에 하나씩 담고 어릴 적 살던 고향의 향수를 덤으로 얻지 않을까 싶다.


이곳에서 한나절 머물고 나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해 저물 무렵의 노을을 꼭 즐겨야만 제 맛이다. 가까이에 바다가 있고 산지 없이 너른 평야가 아름다운 노을을 만들어 내는 평택이다. 그리고 천혜의 자연이 만들어내는 붉은 노을이 세상에 탄생시킨 동요 한곡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빨갛게 노을이 타고 있어요./ 허수아비 팔 벌려 웃음 짓고/ 초가지붕 둥근 박 꿈꿀 때/ 고개 숙인 논밭의 열매/ 노랗게 익어만 가는/ 가을바람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붉게 물들어 타는 저녁놀~♪  


서해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천변에 펼쳐진 넓은 하늘, 당시 평택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이동진 선생님이 평택의 노을을 노래에 담았다. 그리고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평택의 들판과 노을 이야기를 전했다.


 "평택 바다가 가까워 노을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대추리 쪽에 들어가 보시면 정말 다른데 어디를 가봐도 거기만큼 노을이 아름다운 데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때 그 노을은 다른 어느 고장보다도 들이 넓은 평택과 잘 어울렸습니다. 또 들이 넓다 보니 노을을 오래 볼 수가 있죠. 그 노을을 도회지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었죠."


그렇게 탄생한 국민 동요 '노을'처럼 해가 질 무렵 진위천변 둑방에 올라가 붉으레 지는 해를 바라보는 시간을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다. 지역 사람들이 일상처럼 누리던 노을이 동요 덕분에 평택의 상징이 된 것이다.


"서해바다에서 시작된 노을이 소사벌 하늘에 가득한데 마치 하늘에다 빨간 참숯불을 부어놓은 듯 아름다운 정경이었습니다."라고 작사가 이동진 선생님이 말했듯이 그곳에 가면 평택의 들판과 잘 어울리는 노을을 만날 행운이 기다린다.


소풍 정원에서 한나절 노닐다가 진위천변 제방 둑에 올라서 바라보는 노을, 그뿐 아니라 혹시라도 타 지역을 여행하고 귀가할 때 서해대교를 지나고 평택 부근을 달리게 되면 망설이지 말고 일몰 시간에 맞추어 평택항 쪽으로 가볼 일이다. 폐선이 묶여있는 갯벌 위로 물이 차오르고 서서히 내리고 있는 붉은 기운의 일몰에 탄성이 절로 나올 수도 있다.  


노을의 아름다움도 살아있음의 감사도 떠나보면 알 수 있다. 이미 봄이다. 불현듯 자동차 트렁크에 간단한 텐트 장비를 싣고 떠나 하루쯤 봄바람 살랑이는 바람새 마을 소풍 정원에서 맞았던 봄날의 평온함을 기억할 것이다. 봄 새싹이 나올락 말락 하던 그곳엔 지금쯤 푸릇푸릇 잎이 돋고 보드라운 꽃잎이 봄바람에 난분분(亂紛紛)하겠다.





(한 달여 전에 써 놓았던 글 이제야 서랍에서 꺼내어 노출합니다. 계절감이 좀 떨어지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gD3ILvZwb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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