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도시, 빈(Wien)에서 오페라 싸게 보는 법

- 15년 전 이야기

by 리즈







옛 폴더를 뒤적이다가
15년 전에 기록해 두었던 빈(Wien) 여행기를 읽어보게 되었다.
옛날이야기에 누구라도 격세지감을 느낄 것이다.
빛바랜 사진, 유로화의 엄청난 차이는 물론이고, 그땐 나도 쪼끔 젊었고, 또한 비엔나커피라니~
게다가 문투(文套)도 참... 부끄럽게 유치하고,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되살려주는 기억은 새롭다.
내게도 추억을 불러오는 글이 이렇게 있다는 사실을 되짚으며 케케묵은 창고에서 문득 옮겨와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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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중앙 묘지의 슈베르트, 베토벤, 요한 슈트라우스.. 의 묘지




찻잔을 살짝 들어 입술에 갖다 대면 하얀 거품이 윗입술에 묻으며 귀엽게 웃는 모습,
광고에서나 볼 수 있던 비엔나커피 마시는 모습이다. 그러나 비엔나에는 비엔나커피가 없다?? 그저 이름만 비엔나커피다.

그렇지만 그곳에는 누가 뭐래도 음악이 있다.
오스트리아 항공에 오르면서부터 들려오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그걸 예감하게 한다.

빈을 여행하다 보면 볼 만한 것이 끝없지만 그중의 한 가지!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아니, 그건 틀린 말이다. 볼 만한 것들이 거의 다 음악과 관계가 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곳에 가면 음악회를 꼭 가보고 싶었다.
비록 음악을 잘 이해하지는 못하는 비문화인이긴 하지만 속이 허한 탓인지 억지춘향의 비타민이라도 목구멍 너머로 넘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분수에 맞지 않는 입장권 값이 어쩔 수 없이 포기하게 만든다. 게다가 모두 한 달 전에 예매가 끝난 상태라는데? Oops~

하지만 예서 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
우리들의 거실에, 또 이방 저 방에 걸려있는 달력처럼 비엔나 사람들에게는 음악회 달력이 있더란 말이다.
그 달력에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 달치의 음악회 일정과 포스터 그림이 소개되어 있다. 헉~

이처럼 음악을 신봉하고 사랑하는 비엔나 사람들 못지않게 이 곳의 행정가들도 역시 멋지다. 빈을 찾는 여행객이나 가난한 유학생, 또는 미처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당일 <특. 별!!^^매표>가 있었으니,
6시 30분 공연보다 두 시간 전쯤에 오페라하우스로 가면 살 수 있다는 정보를 우리는 입수했다는 것 아닌가~

그것은 정문이 아닌 옆문에서 판다기에 4시경에 서둘러 갔더니 벌써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이미 줄을 서 있었다.
아무튼 가까스로 샀다는 사실!! 와우~~

얼마짜리 표냐고?
정상적으로 예매한 사람들의 10만원~ 그 이상으로 비싼 티켓일까? 오우~ 그럴 리가! 3.5유로... 당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4300원 정도짜리 입석표다. 사람들은 이 표를 살 수 있는 것도 큰 행운이라고 했다. 물론이지~

입석표를 산 사람들이 안으로 안내받아 들어간 곳은 객석 뒷부분의 빈 공간이었는데!! 그곳에도 자리가 있었다?? 입석 공간에 붉은 융단으로 우아하게 감싼 쇠봉이 6~7명 정도가 잡고 서 있을 수 있는 길이로 양 편에 열 줄 정도씩 세워져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융단 봉에 가로 20센티 세로 7센티 정도의 작은 티브이 화면처럼 생긴 것들이 자리마다 달려 있었다. 그 화면에는 버튼만 누르면 영어, 독일어, 불어 등의 버전으로 오페라 내용이 떠오르고 있었다. 입석표를 샀지만 관객을 위한 그들의 배려가 놀라울 지경이었다.

안내인이 영어와 독어로 번갈아가면서 말하기를 30분 후에 음악회가 시작되니 각자의 자리에 자기만의 자리 표시를 해놓고 잠깐씩 볼일을 보고 와도 좋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융단으로 감싼 쇠봉에 손수건이나 스카프 등으로 묶어놓고 나가길래 우리도 각자의 맡은 자리에 소지품으로 묶어서 표시를 했다.

그런데 울 남편은 마땅한 것이 없는지 목에 두른 머플러를 풀어서 묶어두었는데 암만 봐도 조금 걱정이 되는 이 아줌마의 못 말리는 노파심이 발동했다. 버버리 머플러 저거 비싼 건데, 잃어버린다면 아까운데, 그래서 조금 더 저렴한 내 머플러로 바꿔 놓았다.~ㅎ
(밥 먹고 문화생활만 하는 듯이 보이는 우아한 그들을 의심한 아줌마여~~ 그건 천부당만부당한 기우였으니 반성하시라~)

복도에 나가서 옷을 벗어 맡기고 (그들은 음악회는 당연히 겉옷을 벗는 건 물론이고, 어지간한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이면 옷을 벗어 맡기는 장소가 따로 있어서 정중하게 벗겨서? 번호표를 주고 보관해 준다) 복도에 나가 지친 나그네의 다리를 쉬고 있었다.

거동조차 힘들어 보이는 노부부가 정장으로 잘 차려입고 다정히 손잡고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모습, 나이 지긋해 보이는 중년의 우아한 부부들이 주로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 어찌나 부럽던지, 아름다이 나이 먹어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내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네 삶이란 것이 영혼에 비타민 하나 들이밀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거늘, 그들의 생활 자체가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는 산소와 물 한 잔을 늘 이렇게 가까이하면서 내면을 살찌우며 늙어가고 있는 모습임을 본다.
부러운지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염없이 앉아있다가 조금 늦게 우리 자리로 들어가니 이미 모든 사람들이 입석 자리에 꽉 차게 서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날 감동시킨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질서를 기대하기가 어려울 빽빽한 입석 공간에 훤하게 비어있는 네 명 몫의 자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한 치도 침입당하지 않은 우리 네 식구의 자리였다.

우아하고 고급한 문화인들 틈에 끼어 청바지 입고 선채로 손뼉 치면서 그렇게 우리는 음악의 도시 빈에서 오페라 한 편을 보았다. 휴~
2003.2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요한 슈트라우스 왈츠♬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o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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