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 노력의 아이콘
#황목
특이한 이름이다. 일본인 할아버지가 제주도 여자와 사랑에 빠져 제주도에 정착했다. 할아버지의 성은 아라키였고, 이를 한문으로 표기하면 황목이었다. 이렇게 그는 제주 황목씨의 시조가 된다.
치승의 아버지는 제주도에 살면서 한국국적을 취득하게 되고, 치승도 그렇게 한국인이 된다.
#유년기
제주제일중학교라는 신생중학교에서 야구를 하던 치승은 뛰어난 실력으로 청소년 국대에 발탁되고, 아시아 대회에서 6전 전승으로 우승을 한다.
제주라는 야구 불모지 신생학교 선수가 뽑힌걸 보면 당시엔 슈퍼 유망주였을듯.
아마 나처럼 어릴때 키가 지금 키일수도...
그렇게 그는 교토국제고 감독의 눈에 띄게 되고 야구 유학을 떠나게 된다.
#방황기
일본 아세아대학 시절 십자인대와 후방인대가 끊어져서 2년간 재활에만 전념하는데, 운동선수에게 학생때 2년을 재활만 하는건 결정적인 공백이다.
결국 사회인 야구팀 세가사미에서 4년간 선수로 생활하지만,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지속적인 부상과 부진으로 11년 한국으로 돌아온다.
치승은 군대를 가려했으나, 부상으로 이또한 좌절되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당구장 알바 or 죽돌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재도약
그러던 12년 어느날 생활체육 국제 야구대회를 준비중이던, 제주 삼다수팀은 선출인 치승을 꼬셔 대회에 출전한다.
그런데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야구에 대한 열정이 다시 타오르게 되고..
결국 12년 가을 고양 원더스에 입단하게 된다.
그리고 노오력~의 결과 프로의 문을 다시 두드리기 시작하는데, 첫 시도는 14년 신인 드레프트 참가였다.
결과는 드레프트에 뽑히지는 못했으나 같은해 10월 LG의 요청으로 신고선수로 입단하면서, 치승 인생의 첫 정식 프로선수가 된다.
#역사의 장면 1
2017년 7월 26일 LG vs. 넥센 9회말 2아웃
1:3으로 지면서 시작한 9회는 2:3으로 따란 상황에서 2사 2루 이형종 타석에 치승은 대주자로 나간다.
치승은 수비는 내야 전 포지션 Back-up이 가능한 선수이나, 대주자로서의 가치는 애매하다.
걸음이 느리진 않지만, 타팀의 이대형, 김상수 등 수십개의 도루를 할 수 있는 주력을 가지진 않았다.
이런 선수가 첫번째 대주자 옵션이라는 건 현재 LG의 타자 구성의 어쩔 수 없는 애매한을 나타낸다.
이형종은 마무리 김세현의 공을 받아쳐 우익수 이정후 앞에 떨구고, 이정후는 베컴의 프리킥처럼 정확한 택배를 박동원에게 전달한다.
화면상 황목치승은 3박자 앞에서 아웃이고, 비디오판독 요청도 밑져야 본전인 느낌으로 마지 못해 한 요청 같았다.
넥센선수들도 승리를 확신하며 들어왔고, 나는 팀은 뛰는 야구를 표방하나, 단독 도루가 가능한 선수가 거의 없고, 치승이 대주자로 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개탄하고 있었다.
하지만 5분이 지나서 내린 판정은 그의 노력을 내가 폄하시킨듯 해서 미안했다.
아마도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투혼의 슬라이딩이 될 것이다.
#역사의 장면 2
2017년 7월 28일 LG vs. 한화
이런 투혼은 우리 삶에서 쉽사리 느끼기 어려움이다. 진심이 가득한 절실함은 어디서나 감동을 준다.
#평범함 속에 간절함
치승은 상시 주전이라 하기에는 부족한 타격과 애매한 주력을 가지고 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그가 1군에 남을 수 있는 건, 내야전부를 커버할 수 있는 수비력이다.
전설적인 움직임을 보여줬지만, 아마도 풀타임 주전이 되긴 쉽지 않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이...
그러면 어떤가.
우리 모두가 1군 주전 선수는 아니지 않는가.
또한 수많은 선수중에 수비력 많으로, 1군에 있는 선수도 충분히 멋진 거 아닌가.
나도 평범한 삶이지만, 간절하게 살면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간절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삶이라도, 평범속에 간절함이 더해지면 그것 만으로도 수퍼스타가 될 것 같다.